
이른바 위식도 역류질환 치료제 가운데 하나인 'P-CAB(칼륨 경쟁적 위산분비 억제제)'이 치료 영역을 위궤양, 헬리코박터 파일로리 등으로 점점 확대하고 있다.
국내 P-CAB 시장을 이끌고 있는 HK이노엔과 대웅제약, 온코닉테라퓨틱스 3개사가 치료제의 처방 범위를 넓히고 복용 방법을 개선하고 있어 눈길을 끈다.
이들이 얼마나 빠르게, 얼마나 넓게 처방 범위를 넓히고 건강보험 급여을 적용시키느냐가 시장 점유율 경쟁의 핵심 변수로 부상하는 모습이다. 보험 급여가 적용되면 환자들의 비용 부담이 줄어 처방 선호도가 더 높아진다.
위 속쓰림 질환 시장 휩쓴 P-CAB이란?
가슴이 쓰리고 화끈거리는 위 속쓰림 질환은 우리나라 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 많은 사람들이 앓고 있는 대중적인 질환이다. 일반적인 소화 불량에서부터 위장관 점막 손상이나 역류성식도염 및 식도 궤양에 이르기까지 발생하는 범위가 넓다.
이러한 위식도 역류질환의 치료제는 크게 PPI와 P-CAB으로 나뉜다. 위벽에는 위산을 분비하는 프로톤 펌프라는 작은 세포가 있는데 이를 막아 위산 분비를 억제하는 방식이 PPI(양성자 펌프 억제제, Proton Pump Inhibitor) 제제이다. 이 방식은 예전부터 많이 사용됐다. 하지만 약물이 프로톤 펌프를 막는데 까지 시간이 오래 걸려 약을 먹어도 당장 낫지 않는다는 단점이 있다.
P-CAB은 프로톤 펌프와 칼륨이온이 결합해 강력하게 위산 분비를 억제하는 방식이다. PPI에 비해 약효가 빠르고 오랫 동안 지속되는 등 장점이 많다. P-CAB 제제는 PPI의 단점을 보완하며 빠르게 시장을 확대하고 있다.
HK이노엔, '케이캡정'으로 P-CAB 시장 선두
국내에서 허가 받은 P-CAB 제제로는 HK이노엔의 '케이캡', 대웅제약의 '펙수클루', 온코닉테라퓨틱스의 '자큐보정' 3개 품목이 있다.
케이캡정(성분명: 테고프라잔)은 2018년 허가를 받고 이듬해 출시됐는데 이전 세대인 PPI에서 P-CAB으로 시장 판도를 뒤바꾸고 있는 치료제다. 현재까지 국내에서 가장 많은 적응증을 확보하며 P-CAB 시장의 선두를 지키고 있다.
케이캡은 미란성(피부 점막이 염증으로 인해 손상) 및 비미란성 위식도역류질환 뿐만 아니라 위궤양, 헬리코박터 파일로리 제균 위한 항생제 병용요법 등 5개 질환의 치료제로 사용되고 있다.
이 가운데 미란성과 비미란성이란 위내시경 검사에서 식도 점막에 궤양이나 미란이 관찰됐는지 여부로 차이를 구분할 수 있다. 비미란성은 식도 점막에 궤양이나 미란이 관찰되지 않았지만 가슴쓰림, 신트림 등 위산 역류 증상이 있는 것을 말한다.
헬리코박터 파일로리는 위점막과 점액 사이에 기생하는 나선 모양의 세균이다. 대부분 감염되더라도 특별한 증상이 없지만 궤양을 동반하는 경우 심한 배에서 통증을 느낄 수 있고 위암으로도 이어질 수 있다.
HK이노엔의 케이캡은 알약을 삼키기 힘든 환자들이 물 없이도 입에서 쉽게 녹여 먹을 수 있는 이른바 구강붕해정 형태로도 판매된다.
HK이노엔은 시장 1위 자리를 유지하기 위해 케이켑정의 치료 영역 확대를 시도하고 있다. 현재 NSAID(비스테로이드성 소염진통제) 유발 위십이지장 궤양 예방요법에 대한 적응증을 확보하기 위해 임상을 진행하고 있다. NSAIDs를 장기 복용하는 환자들은 위 또는 십이지장 점막 손상(궤양)이 발생할 위험이 높다.
자큐보, '위궤양' 적응증 확보 등 후발주자도 가세
후발주자인 대웅제약과 온코닉테라퓨틱스도 각각 펙수클루와 자큐보로 빠르게 처방 범위를 늘리고 있다.
온코닉테라퓨틱스는 이달 초 자큐보정(성분명: 자스타프라잔)의 위궤양 치료에 대한 적응증을 추가로 획득했다. 자큐보정은 지난해 4월 미란성 위식도역류질환 적응증으로 첫 허가 받아 같은 해 급여 적용을 받고 10월 국내 시장에 출시됐다.

출시 8개월 만에 두 번째 허가 적응증을 추가로 확보한 것이다. 국내에서는 P-CAB 제제 중 HK이노엔의 케이캡에 이어 두 번째로 위궤양에도 사용이 가능해졌다. 보험급여가 적용되는 적응증은 아직 미란성 위식도역류질환 1개뿐이지만 회사는 이번에 허가받은 위궤양 치료에 대한 급여 확보에 속도를 낼 계획이다.
자큐보정은 현재 구강붕해정(물 없이도 입에서 쉽게 녹는 알약) 제형의 허가를 추진 중이며, NSAID(비스테로이드성 소염진통제) 유발 위궤양 예방을 위한 적응증 확보 임상도 진행하고 있다.
대웅제약의 펙수클루는 △미란성 위식도역류질환 △급성 및 만성 위염(10mg) 등 2개 증상에 대해 사용이 가능하다. 대웅제약의 경우 유일하게 위염 적응증을 확보했으며 지난 4월에는 건강보험 급여도 획득했다. 위염의 경우 위식도역류질환보다 상대적으로 광범위하게 처방이 가능해 매출 확대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대웅제약은 △NSAIDs 유발 궤양 예방 △헬리코박터 파일로리 제균 △비미란성 위식도역류질환 △내시경적 점막하 박리술(조기 위암 수술) 이후 발생한 위궤양 치료 등 다수 적응증에 대한 임상을 진행 중이다.
PPI 시장 대체 위해 '적응증·급여' 확보가 핵심
국내 P-CAB 시장을 이끌고 있는 3대 치료제의 매출은 매년 눈에 띄게 증가하고 있다. 케이캡의 매출은 2019년 305억원에서 2020년 771억원, 2021년 1107억원, 2022년 1321억원, 2023년 1582억원으로 증가하고 있다. 지난해 원외처방액(병원에서 처방받아 약국 조제)은 1969억원으로 시장 1위다.
펙수클루의 지난해 처방액은 788억원으로 전년 535억원 대비 47%나 증가했다. 지난해 10월 출시된 자큐보의 그해 4분기(10~12월) 처방액은 148억원이었다.

이들 P-CAB 제제들이 적응증과 급여 확대에 속도를 내는 이유는 3개 품목간 경쟁뿐만 아니라 기존에 소화성궤양용제 시장을 주도하고 있었던 PPI 제제들의 시장을 대체하기 위한 이유도 크다.
PPI는 위식도역류질환, 위궤양, 십이지장궤양, 헬리코박터 파일로리 제균, 스트레스 궤양, NSAIDs 유발 궤양, 졸링거-엘리슨 증후군(위산 과다 분비 질환), 위장관 출혈 등 다수 적응증과 보험급여를 통해 소화성궤양용제 시장의 약 53%를 차지하고 있다.
과거 PPI 시장 비중은 지난 2019년 60~65% 수준이었지만 P-CAB 제제 등장으로 줄어드는 추세다. P-CAB 제제 비중은 2019년 8%에서 지난해 약 21%로 대폭 확대됐다.
P-CAB 제제는 PPI 제제의 단점인 느린 약효발현, 아침식사 전 복용, 야간 위산분비 증가 등을 개선한 것이 장점이다. 이같은 장점을 내세워 시장을 빠르게 확대하기 위해서는 PPI 제제에 적용되고 있는 적응증과 보험급여를 더 빠르고 많이 확보하는 것이 관건이다.
업계 관계자는 "P-CAB 제제는 기존 PPI 제제 대비 빠른 위산 억제 효과와 우수한 약효 지속성을 갖춰 소화성 궤양 및 위식도 역류질환 치료에 혁신적인 대안으로 주목받고 있다"면서 "PPI 제제들의 시장을 대체하기 위해서는 적응증과 급여 확보가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