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숫자가 아니라 사람을 보라

  • 2014.08.22(금) 12:31

강원국의 '직장인의 말하기·글쓰기'(16)
숫자에 관한 회장과 직원의 동상이몽

“뭐야? 당신, 직무유기야. 숫자를 안 챙기는 것은 계기판 안 보고 비행기 조종하겠다는 심보라고. 당신 감이 그렇게 좋아?”

‘숫자에 약해서 감을 믿는다.’며 솔직함을 빙자하여 자랑질을 시도한 사장에게 회장이 쏘아붙인 말이다.

여러 사람 앞에서 무안당한 사장은 만회의 기회를 엿본다.

“회장님, 수치는 본다고 달라지는 게 아니지 않습니까. 이미 지나간 과거의 것이고요.”

“누가 숫자를 보고만 있으래? 분석하고 독려해야지. 왜 이런 숫자가 나왔는지, 반성할 것은 무엇인지, 더 잘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따져봐야지. 그리고 과거의 것이라고? 숫자는 위험을 방지하고 나아갈 방향을 보여주는 등대 같은 거야. 도대체 당신, 경영할 생각은 있는 거야!”

본전도 못 건졌다.

숫자에 관한 회장과 직원의 생각은 다르다.

회장은 기본적으로 계량화하는 걸 좋아한다. 주먹구구는 싫다. 직원들을 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숫자에 매달린다. 숫자를 믿고 신봉한다. 모든 가치는 수치로 따진다. 그러면서 피터 드러커를 갖다 댄다. ‘측정되지 않는 것은 관리되지 않는다.’

이에 반해 직원들에게 숫자는 스트레스다. 벗어나고 싶은 감옥이다. ‘어린 왕자’처럼 “왜 회장은 숫자를 좋아하느냐.”고 따지고 싶다. 회장은 피터 드러커만 알지, 더 유명한 알버트 아인슈타인의 말은 모르는가. “숫자로 셀 수 있는 모든 것이 다 소중한 것은 아니며, 소중한 모든 것이 숫자로 셀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결국 회장은 숫자로 숨통을 조이고, 직원들은 숫자 맞추기에 허덕이는 게 경영이고 회사생활이다.

숫자에는 마력이 있다. 심리학에 ‘프레이밍 효과(Framming effect)’라는 게 있다. 같은 사안도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달리 보인다는 것이다. 그런데 ‘어떻게 보느냐’를 좌우할 수 있는 게 바로 숫자다.

 

예를 들어보자. 300명이 위험에 처해 있다. A라는 방법을 쓰면 100명이 살 수 있다. B라는 방법으로는 300명이 다 살 확률이 1/3, 아무도 못 살 확률이 2/3라고 할 때, 당신은 어느 쪽을 택할 것인가? 결과는 똑같다. 그런데 사람들 대부분은 A를 선택했다. B는 왠지 불확실해 보였기 때문이다.

숫자는 만드는 사람의 의도나 목적에 따라 의미가 달라진다. 질적으로 나빠진 것도 양적으로는 얼마든지 늘이거나 올릴 수 있다. 일명 숫자놀음이 가능하다. 판단의 근거로서 숫자만큼 들이밀기 좋은 것도 없다. 객관적이라고 우길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숫자를 장악하고 있는 부서가 힘을 쓴다.

숫자, 피할 수 없다면 즐기자. 어차피 경영은 수치다. 매출액, 순이익, 점유율 모든 것이 숫자다. 세상엔 숫자로 판단할 수 없는 게 많다고 항변해봤자 소용없다.

느낌으로 말하지 말고 숫자로 말하자. 뜬구름 잡는 소리 쓰지 말고 수치가 많은 글을 쓰자. 그래야 디테일에 강하다는 소리를 듣는다. 목표의식이 분명하다고 칭찬받는다. 찾아보면 유리한 숫자는 얼마든지 있다. 불리한 숫자는 굳이 쓸 필요 없다. 화장과 덧칠, 왜곡과 과장이 가능한 게 숫자다.

회장도 숫자만 보면 실패한다. 숫자는 경영의 출발점일 뿐이다. 목적지는 사람이다. 숫자는 본질이 아니다. 숫자 뒤에 숨어 있는 피눈물을 봐야 한다. 숫자에 울고 웃는 사람을 봐야 한다. 사람의 창의와 꿈은 숫자로 파악할 수 없다. 감정과 정서는 숫자로 나타나지 않는다. 무엇보다 숫자는 가치를 반영하지 못한다.

숫자에 질식해 죽어가고 있는 사람, 그 사람을 보는 것이 진짜 경영이고, 회사가 사는 길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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