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우중 회고록]②금융책임론

  • 2014.08.22(금) 17:15

김우중 "IMF사태는 금융이 잘못해서 온 것"
"한국 정부가 대기업들을 부실로 몰아세워"

다음은 신장섭 싱가포르대학교 경제학과 교수가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과 대화를 통해 구성한 저서 '김우중과의 대화, 아직도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중 금융책임론 부분 발췌.

 

신장섭
1997년에 벌어진 아시아 금융위기는 한국뿐만 아니라 대우그룹에도 굉장히 큰 변곡점입니다. 과거 경제발전을 지탱해오던 한국의 모델이 IMF 구조조정 과정을 거치면서 송두리째 바뀝니다. 그리고 대우그룹은 해체의 길을 걷게 됩니다. 위기의 원인, 진행, 결과에 대해 아직까지 국내외에서 큰 시각차가 있습니다. 원인부터 짚어보지요. ‘IMF사태’, 왜 왔다고 생각하십니까?

 

김우중
IMF사태는 기본적으로 금융이 잘못해서 온 겁니다. 한국 금융기관들이 (1990년대 중반에) 해외에 막 나가서 숏텀(short-term, 단기)으로 돈을 빌려 쓰기 시작했어요. 그때는 리볼빙(revolving, 만기연장)이 잘되니까 외화를 빌려 남에게 다시 빌려주면 돈을 쉽게 벌 수 있었어요. 한국보다 금융코스트가 비싼 러시아, 동구권, 인도네시아 등에 그렇게 돈을 빌려주고 그 나라들 채권도 많이 샀어요. 그 돈이 한국에 다시 들어오기도 하고... 해외금융을 안 해보던 사람들이 갑자기 나가니까 리스크 관리가 안 된 거지요. 3개월간 빌리면 3개월간 꿔줘야 하는데 그러지 않고 장기채권을 산다든지 했으니까요.

 

신장섭
한국 정부와 IMF는 한국 금융위기가 금융과 기업의 공동 책임이라는 입장입니다. 그래서 금융 구조조정과 기업 구조조정을 동시에 시행했고요. 1997년대 초반부터 한보가 부도나고 중반에는 기아가 부도 위기에 몰리면서 국내 기업들이 어려움을 겪습니다. 정부와 IMF 측은 이러한 기업 부실 및 악화 가능성이 대외신뢰도에 악영향을 미쳤다고 주장합니다. 한국 금융위기에 기업 부문의 책임은 없다고 할 수 있을까요?

 

김우중
기업들이 투자하다가 잘못되는 것은 항상 있는 일이지요. 그렇다고 그것이 외환위기로 연결되는 건 별개의 문제예요. 기업 망한다고 은행들이 다 망하면 제대로 된 은행이라고 할 수 있나요? 자기들이 리스크 관리를 해야 하는 거지, 그거 안 하고 왜 기업을 탓합니까? IMF사태는 리저브(reserve, 외환보유액)가 갑자기 줄어들어서 벌어진 건데, 그게 다 정부가 금융기관들 도와주다가 그렇게 된 거예요. 외국인들이 금융기관에서 돈을 빼내갔지, 기업에서 돈 빼내가지 않았습니다. 한국 기업들이 갖고 있던 빚은 그대로 있었어요. 더 빌려주지는 않았어도...


알다시피 그때 금융위기는 동남아에서 먼저 왔어요. 태국부터 시작해서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로 번진 거지요. 그전에 구라파(유럽)와 미국 금융기관들이 (동남아에) 많이 들어왔어요. 돈을 직접 꿔주기보다 쿠션(cushion, 중간단계를 거쳐서) 해서 빌려줬지요. 그러다가 동남아 은행들이 전체적으로 문제가 됐어요. 그러면서 한국 금융기관들에 대한 리볼빙이 서서히 스톱(stop)됐어요. (한국 금융기관들이) 처음엔 일시적 현상인 줄 알았지요. 그러니까 (국내) 본점에서 돈을 빌리고 그게 안 되니까 본점은 정부에서 돈을 빌리고, 정부는 리저브에서 내준 거예요.

 

(중략)

 

신장섭
그러면 1997년 중반 동남아 금융위기가 벌어지고 있을 때에 한국에도 위기가 온다는 낌새를 느낀 것은 없었습니까? 대우는 어땠습니까?

 

김우중
당시 우리(대우)는 그런 것 안 느꼈어요. 우리는 오래전부터 한국은행으로부터 외화대출 한도 받아놓고 파이낸싱 하고 있었어요. 그때 국내 금융기관들이 해외에 너무 많이 나가 사방에서 숏텀으로 (돈을) 빌려 투자한다는 것은 알았지만, 그게 얼마나 되는지는 몰랐지요. 그래도 (내가 세계를) 돌아다니니까 전체적인 분위기는 알았어요. 그래서 정부 쪽 인사들을 만나면 참고하라고 (국제금융시장) 분위기를 얘기해줬어요. (금융위기 전 대우그룹은 국내 시중은행들보다 낮은 금리로 국제금융시장에서 자금을 조달할 정도로 국제 신인도가 높았다. 그래서 세계 유수 은행들이 주최하는 송년회에는 대우 임원들이 상석의 테이블로 초대되곤 했다.)

 

신장섭
1997년 11월 한국이 IMF체제에 들어갔을 때에는 대우그룹에 자금 압박이 크게 오지 않았습니까?

 

김우중
만기 돌아오는 것 중에서 일부 (연장을) 안 해주는 것들이 있었는데 다른 은행에서 (돈을) 빌릴 수 있었어요. 어떤 때는 늘려 받기도 했어요. 만기연장이 잘 안되는 것들이 조금 생겨서 내가 주요 거래 은행들을 만나러 갔어요. BOA, 홍샹(HSBC, 홍콩상하이은행) 등의 행장들도 만나고... IMF사태가 터지고 난 뒤 1년 정도까지는 전체를 연장하거나, 20% 갚고 80%는 연장하는 식으로 했어요.

 

신장섭
IMF와 한국 정부는 기업 부문이 금융위기에 책임이 있다고 얘기하면서 특히 대기업들의 부채비율이 높은 것을 문제 삼았습니다. 여기에 대해서는 어떻게 새각하십니까? (1997년 말 한국 기업들의 평균 부채 비율은 360%였고, 30대 기업의 평균은 512%였다. 정부는 기업 구조조정의 일환으로 대기업들에 이 비율을 200% 밑으로 낮추라고 요구했다. 국내외 자금시장이 경색된 상황에서 이 방침을 따르는 게 가장 현실적인 방안은 대기업들이 갖고 있는 자산을 외국투자가들에게 파는 것이었다.)

 

김우중
선진국과 우리가 시스템이 다른데 부채비율 수치만 놓고 왜 그렇게 얘기하는지 모르겠어요. 부채비율을 자꾸 문제 삼길래 전경련을 통해 국제컨설팅회사에 용역까지 줘서 국제비교를 시켰어요. 제일 큰 차이는 우리가 선진국보다 금융이 발달하지 못해서 기업이 불필요한 부채를 떠안고 있는 데에 있었어요.

 

예를 들어 자동차를 살 때 선진국에서는 개인이 할부금융을 받고, 자동차를 파는 회사는 현금을 받아갑니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당시 자동차회사가 금융기관에서 돈을 빌려서 할부판매를 했어요. 개인이 져야 될 빚을 기업이 다 끌어안고 있는 거지요. “자동차를 많이 팔수록 기업 빚이 올라가는 구조인 겁니다. 그런 식으로 선진국 시스템이면 없을 빚을 우리가 안고 있는 것이 많았어요. 그런 걸 전혀 고려하지 않고 무조건 선진국보다 부채비율이 높으면 문제가 있다고 얘기하는 것은 말이 되지 않지요.”

 

신장섭
부채비율 200% 가이드라인을 만든 이헌재 당시 금융감독위원장도 여기에 별 근거가 없다는 것을 스스로 인정합니다. “200%. 사실 정교한 계산을 통해 나온 기준은 아니었다. 해외 기업들의 평균 부채비율을 검토해 정했다. 당시 미국 기업들의 부채비율은 100%가 채 되지 않았다. 일본이 150~200% 사이였다”고 말합니다. 그러면서 이것이 “재벌을 옭아매는 담 중 하나였다”고 합리화합니다. “가장 먼저 부채비율 200%를 맞춘 삼성이 그것 때문에 나빠졌나. 오히려 좋아졌다”고 주장하기도 하고요.

 

김우중
근거도 없는 것을 그렇게 중요한 경제정책의 기준으로 어떻게 사용합니까? 우리 대기업들을 부실이라고 몰아세우려고 만든 거라는 걸 스스로 인정하는 셈밖에 되지 않지요. 삼성이야 반도체사업을 잘해서 좋아진 거지 부채비율을 낮춰서 좋아진 거라고 할 수 있나요? 자기들 편한 대로 사례를 갖다 붙이려니까 그렇게 얘기하는 것일 뿐이지요.

 

(이하 생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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