⑧드론·로봇, 무인시대의 주역

  • 2016.05.26(목) 14:26

[창간3주년 특별기획 : 산업혁명 4.0]
<2부 삶이 변한다> 심현철 교수 인터뷰
'인간만의 영역'에도 들어온 미래 기기들
'편리성과 인간존엄성의 충돌' 과제 대두

지난 20일 오후 대전시 카이스트 대덕캠퍼스에 위치한 KI빌딩 3층 로보틱스 연구소. 비행기 조종석과 비슷한 계기판 앞에 사람의 팔다리 모양을 본 뜬 로봇 한대가 놓여있다. 심현철 카이스트대 항공우주공학과 교수는 "사람을 대신해 비행기를 조종하는 로봇"이라며 "다음달 중국 톈진에서 열리는 세계경제포럼(하계 다보스포럼)의 초청을 받아 시연을 앞두고 있다"고 말했다.

파이봇(PIBOT·파일럿과 로봇의 합성어)이라는 이름이 붙은 이 로봇은 조종석에 앉아 비행기의 엔진을 켜고, 활주로를 달려 하늘로 날아오르며, 목적지에 착륙하기까지 그간 사람이 해왔던 일을 대신하는 역할을 맡는다. 아직은 연구개발 단계지만, 상용화되면 막대한 비용과 시간을 들여 조종사를 양성하는 것보다 파이봇 한대를 들여놓는게 항공사 입장에선 경제적일 수 있다.

생명의 위험이 따르는 신형 항공기 개발이나 적진 속 군사작전, 사람을 투입하기 어려운 재해재난 상황에서 파이봇은 사람을 대신해 조종칸을 잡는다. 실제 프랑스의 항공기 제작사인 에어버스는 심 교수 연구팀에 자사가 개발한 소형 전기동력 항공기(E-fan) 시험 비행에 이 로봇을 사용할 수 있는지 문의하기도 했다.

심 교수는 "지금은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일도 미래에는 사람이 답이 아닐 수 있다"고 말했다.

 

▲ 국내 드론 1세대 연구자로 꼽히는 심현철 카이스트 교수는 내달 중국 톈진에서 열리는 세계경제포럼에서 비행기를 조종하는 로봇인 '파이봇'을 선보일 예정이다.

 

◇ 5년만에 결실맺은 드론

심 교수는 1990년대 초반부터 드론을 연구한 국내 1세대 드론 연구자다. 그의 관심은 드론을 거쳐 자율주행차로, 비행기를 조종하는 로봇으로 확대돼왔다. 심 교수는 "혼자 움직이는 모든 것이 연구대상"이라고 했다. 국내에선 드론이라는 개념조차 생소하던 2011년 말 그는 정부에 무인기를 활용한 택배 시스템을 도입하자는 당시로선 파격적인 제안을 했다. 드론 택배가 기술적으로 가능한지 여부를 떠나 드론에 대한 근거 규정조차 없던 때다.

그로부터 5년여가 흐른 지난 16일 정부는 청와대에서 규제개혁 장관회의를 열고 '드론 및 자율주행차 규제혁신' 방안을 발표했다. 언론사들이 '드론, 택배시대 열렸다'는 제목을 뽑아 기사를 냈던 바로 그 회의다. 고층 아파트가 즐비하고 동네마다 전깃줄이 거미줄처럼 얽힌 우리나라 도심에서 드론 택배가 가능하냐는 뜨거운 논란을 낳기도 했지만, 정부의 대책을 바라보는 심 교수의 감회는 남달랐다.

그는 "드론이 많아지면 필연적으로 드론에 대한 관제를 어떻게 하느냐의 문제가 발생한다"며 "미국 나사(NASA)도 수십억원을 투자하는 사업에 정부가 수백억원을 투자하겠다는 건 그만큼 드론 시대에 선제대응하겠다는 의지가 강하다는 얘기"라고 말했다.

나사는 드론의 관제, 감시 등을 위해 2년전부터 '무인기 항공교통관리' 시스템을 개발 중이다. 이 사업에는 구글과 버라이즌 등 IT기업과 통신회사들이 참여했다. 땅위에 도로와 신호등, CCTV가 있듯 하늘에도 이와 비슷한 것을 만들어 드론 시대를 대비하겠다는 포석이다.

◇ 드론 택시도 성큼, 땅 위엔 무인차

흔히 드론을 사람이 안타는 비행기로 알고 있지만 이 공식은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현재 나온 대부분의 드론은 무인기다. 하지만 중국과 독일에선 사람이 타는 드론이 등장했다.

올해 1월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국제전자제품박람회(CES)에서 중국 드론업체 이항은 태블릿PC로 목적지만 입력하면 자동으로 이륙해 위성항법장치(GPS)를 따라 비행하는 드론을 선보였다. 드론이라기보다 헬리콥터라고 부르는 게 나을 법한 이 비행체는 숙련된 조종사가 기내에 동반할 필요가 없다는 게 특징이다. 조종사도 필요없고 사람은 타기만 하면 되면 된다. 이런 드론이 상용화되면 머리 위로 드론 택시가 날아다니는 시대가 도래할 수 있다.



시중에 나와있는 드론은 사람이 밖에서 조종하는 것들이지만, 기술적으로는 미리 프로그램을 해두면 드론은 외부 조종 없이 자율비행이 가능하다. 드론의 자율주행, 자율비행은 다른 분야에도 폭넓게 이용될 수 있다.

대표적인 분야가 자율주행차, 이른바 무인차다. 드론 연구자인 심 교수도 자율주행차를 개발했다. 그는 "혼자서 움직이는 기계가 하늘을 날면 드론이고, 도로를 다니면 무인차가 되는 것"이라고 했다. 실제 로보틱스 연구소에는 하늘을 날고 땅 위를 달리는 바퀴 달린 드롯이 놓여있었다.

드론보다 뒤늦게 관심을 받긴 했지만 자율주행차의 시장규모는 드론보다 더욱 클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정부가 규제개혁 장관회의에서 내놓은 향후 10년간 자율주행차의 경제적 파급효과는 23조원에 달한다. 드론(12조7000억원)보다 높게 잡았다. 고용효과도 자율주행차는 8만8000명으로 드론(3만1000명)을 앞설 것으로 내다봤다.

◇ '전격Z작전' 꿈 아닌 현실로

카이스트 연구팀은 스마트폰으로 자율주행차를 자신의 위치까지 스스로 오게 할 수 있는 기술도 확보했다. 이를 스마트워치에 적용하면 1980년대 방영된 TV프로그램 '전격Z작전'에 나오는 차량 '키트'가 현실세계에 등장하는 날이 머지 않아 찾아올 수 있다.

하지만 자율주행차를 생활 속에서 접하기까지는 여러 관문을 넘어야 한다. 당장 기술력이 문제다. 지난해 11월 정부는 서울 영동대교에서 코엑스까지 자율주행차 도로주행 시연행사를 열었다. 자율주행차의 도심속 도로주행이라는 의미있는 행사였지만 당시 정부는 안전문제 등을 고려해 일반 차량의 통행을 차단한 채 행사를 진행했다. 주변의 사람과 차량을 인식하고 예측해 주행하는 게 자율주행차의 핵심기술인데 아직은 일반 차량과 함께 도로를 다닐 만큼 자율주행차의 기술이 무르익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심 교수는 "자율주행차는 고속도로를 달리는 것보다 불확실성이 많은 시내를 달리는게 더 어렵다"며 "규제 때문에 시내주행을 못한다는 얘기가 있지만 사실 시내에 끌고나갈 만큼 기술력을 확보하지 못한 탓이 더 크다"고 말했다.

심 교수는 기업들의 연구관행도 바뀌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해외기업들은 외부의 첨단기술을 익히기 위해 유망기업을 인수하거나 기술 자체를 통째로 사오는데 비해 국내기업들은 몇몇 연구인력만 빼오거나 오픈소스를 가져다 다시 개발하는 식으로 연구를 진행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그는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한 '알파고'도 구글이 아닌 구글이 2014년 인수한 회사인 '딥마인드'가 만들었다"며 "국내기업들은 외부의 우수 기술이 있음에도 자체 개발에만 매달리다보니 외국과 기술격차가 점점 벌어지는 것"이라고 말했다.

◇ 무인(無人)시대가 던진 숙제

하늘엔 드론이 날고, 도로에는 자율주행차가 다니는 미래는 생활의 편리함 못지않게 인간의 존재 자체에 대한 근본적 물음을 던질 수 있다. 알파고만 해도 바둑은 사람이 두는 것이라는 상식을 송두리째 바꿔버렸다. 드론과 자율주행차도 비슷한 문제에 직면할 가능성이 있다는 게 심 교수의 관측이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자율주행차가 주행 중 탑승자와 보행자 가운데 누군가를 죽이고, 누군가를 살려야하는 순간에 맞닥뜨린다면 과연 어떤 선택을 해야 옳은가? 선택에 따른 책임은 누가 져야하는가?'

심 교수는 "자율의지를 갖고 있는 유일한 존재가 사람이고, 그렇기에 잘못한 사람을 처벌하는 게 지금까지 당연한 상식이었지만, 자율기계가 우월해질수록 이 상식은 깨질 수밖에 없다"며 "컴퓨터가 잘못했다고 컴퓨터를 감옥에 넣을 순 없는 것 아닌가. 이런 식의 법적, 철학적 문제가 끊임없이 나오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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