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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즈人워치] 유도선수가 '미슐랭 스타' 되다

  • 2016.11.14(월) 09:45

'미슐랭 스타'받은 보름쇠 김경수 대표
유도선수 출신..바·포차·떡볶이집 등 운영
"소 키우는 것부터 요리 시작..서빙도 모두 셰프"

"들러리 서라는 얘긴 줄 알았죠."

이달 초 김경수 ㈜흑소랑 대표의 전화 벨이 울렸다. 미슐랭(미쉐린) 가이드였다. "메일로 초청장 보냈는데 답이 없으셔서, 그날 오실 거죠?" 김 대표는 "못 간다"고 잘라 말했다. "저희가 어딘 줄 아시죠? 수상하러 오셔야 되는데" 미슐랭 가이드 담당자의 당황한 목소리였다. 김 대표는 "밥이나 먹으러 오라는 얘기인 줄 알고 거절했는데, 별을 준다기에 '벙졌죠'(당황했죠)"라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다. 개업한지 1년밖에 되지 않은 무명의 고깃집 보름쇠가 미슐랭 1스타를 받을지는. 김 대표는 "진짜 몰랐다"며 "수상이 발표되자 매장이 발칵 뒤집혔다"고 말했다. ㈜흑소랑은 제주에서 흑우 270마리(한우 포함 350마리)를 키우며, 서울(매장명 보름쇠)과 제주(흑소랑)에 식당을 운영하고 있다.

김 대표의 이력을 보면, 더 의외다. 그는 주방에서 양파 껍질부터 까는 '정식 코스'를 밟은 셰프가 아니다. 학창시절 그는 유도선수였다. 용인대 대학원에서 체육교육까지 전공했다. 대학원생 시절인 2004년 홍대에 술집(바)을 열며 처음 장사를 시작했다. 이후 포차·떡볶이집·식당 등에 도전했고, 사업수완도 뛰어났다. 김 대표는 "여러 가지 외식업을 했는데, 돈 못 벌었던 적은 없다"고 했다.

 

▲ 김경수 (주)흑소랑 대표 /이명근 기자 qwe123@

 

◇ 외식업자와 쇠테우리의 만남


그의 인생에 흑우가 나타난 것은 2013년 말이다. 중학교 시절 같이 운동했던 송동환 ㈜흑소랑 이사를 만나면서다. 송 이사는 삼대째 제주서 소를 키우는 쇠테우리(소목동 제주 방언)다. 대학 전공도 축산학과였고, 연구원으로 멸종위기 제주 흑우 복제에도 참여한 전문가이지만 흑우 키우면서 수지를 맞추긴 어려웠다. 소 팔아 사료를 살 정도였다고 한다.

김 대표는 "흑우는 누렁이와 똑같은 양의 사료를 먹여도 살이 덜 찐다"며 "원래 크기도 작은 흑우는 누렁이보다 경제성이 확 떨어진다"고 말했다. 두 사람은 2014년 제주도에 흑우를 파는 식당 흑소랑을 열었다. 테이블 10개짜리 작은 식당이었다. 이후 주식회사 흑소랑을 만들고, 2015년 서울에 보름쇠를 오픈했다.

보름쇠는 '뭍'으로 나온 지 1년 만에 미슐랭 스타에 선정될 정도로, 그 맛을 인정받았다. 맛의 비결은 뭘까. 김 대표는 "흑우라서 맛있는 것은 아니다"고 여러 차례 강조했다.

그는 맛의 비결을 자연친화적 목축과 독자적 숙성 방식을 꼽았다. 소가 마시는 물에 효소를 탔고, 특별 주문한 사료만 썼다. 도축된 고기는 진공포장하지 않고 곧바로 숙성실로 보낸다. 김 대표는 "국내에서 진공포장하지 않는 소고기는 우리가 유일할 것"이라고 말했다. 숙성과정을 거친 고기 겉면은 육포처럼 바짝 마르지만 속살은 더 부드러워진다. 겉면을 사과 깎듯이 떼어낼 때 30% 가량의 고기는 버려야한다.

숙성이 끝난 흑우는 누렁이보다 지방 소화가 더 잘되는 건강한 재료가 된다. 숙성 흑우에선 치즈 향의 풍미가 나고, 일반 소고기보다 부드러워진다. 이 맛에 미슐랭 가이드 평가원들이 반한 것이다.

 

▲ 보름쇠에 판매 중인 제주 흑우 고기. /이명근 기자 qwe123@

 

◇ "목장 위에 활주로 들어선다" 걱정

 

김 대표는 "다른 셰프들은 시장에서 산 재료를 주방에서 요리하면 되지만, 우리는 식당 위에 고기를 올리기 위해선 몇 년 전부터 소를 키워야 한다"며 "웬만한 뚝심이 없다면 힘든 과정"이라고 말했다. 흑우는 키우는데만 38개월 이상 걸린다.

하루에 팔 수 있는 소는 단 한 마리뿐이다. 절반은 제주 흑소랑에서, 나머지 절반은 서울 보름쇠에서 판다. 김 대표는 "미슐랭 스타에 뽑히니 주변에서 돈 많이 벌겠다고 하지만, 어차피 팔 수 있는 고기 물량은 정해져 있다"며 "제주 목장에서 소를 더 많이 키우기 전에 매장을 더 낼 수도 없다"고 말했다.

김 대표는 "이 모든 과정을 거쳐 보름쇠만의 흑우가 나온다"며 "우리 가게는 목장 농부부터 매장 서빙 아줌마까지 모두 셰프"라고 말했다. ㈜흑소랑이 서빙 아줌마 등 50여명의 직원을 모두 정규직으로 채용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는 "미슐랭 스타는 나 혼자 받은 것이 아니라 모든 직원이 다 함께 받은 것"이라고 덧붙였다.

걱정거리도 있다. 제주 서귀포시 성산읍에 있는 농장 부지에 제 2공항이 건설된다는 계획이 발표됐기 때문이다. 김 대표는 "목장 자리에 활주로가 들어서게 됐다"며 "보상을 얼마 받을지 모르겠지만 제주도 땅값이 워낙 올라 다른 곳을 찾기도 힘들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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