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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53편 방영취소"..한한령은 거기 있었다

  • 2017.02.17(금) 17:16

[리셋 차이니즘]⑩중국 베이징 르포
'실체없는 두려움' 확산..눈치보는 韓기업 늘어

▲  지난 14일 오전 중국 베이징시 조양구 지역에서 바라본 시내에 짙은 미세먼지가 몰려와 도심을 덮치고 있다. /베이징=이명근 기자 qwe123@

 

[베이징=안준형 기자] 한한령(限韓令·한류 제한 명령)이라는 '유령'이 베이징을 배회하고 있었다. 유령을 봤다는 목격자도 있고, 실체 없는 소문일 뿐이라고 치부하는 이들도 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모두가 '유령'을 두려워하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 14일 베이징에서 만난 중국인 사업가 A씨는 "광전총국(라디오·TV·영화 등을 관리감독 하는 중국 정부기관)에 신청해도 방송 못 할 수 있으니까…'라며 말끝을 흐렸다. A씨는 한국 드라마 등 판권을 사서 중국에서 리메이크하는 회사를 운영하고 있다. 그는 최근 한국에서 신드롬을 일으킨 한 드라마의 판권을 사려다 중단했다. 거액을 들여 한국 원작의 드라마를 만들어도 중국 방송국에서 틀어주지 않을 수 있다는 걱정 때문이다. A씨는 그의 이름과 드라마 제목에 대해 익명을 요구했다.

작년 7월 우리 정부가 사드(THAAD·고고도 미사일방어체계) 배치를 결정한 후 한한령 피해 사례는 늘고 있지만, 아직 실체는 없다. 중국 정부는 공식적으로 한류에 대해 제재를 인정하지 않고 있다. A씨는 "한한령 관련해 정부로부터 어떤 문서도 받은 적이 없다. 한한령의 실제성이 몇 퍼센트가 되는지는 모르겠다"면서도 "지금은 중국에서 한국 원작 드라마를 제작할 수 없다"고 말했다.

 

◇ "한국과 어떤 협의도 하지 마라"


한한령의 실체는 없지만 목격담은 이어지고 있다. 중국에서 드라마를 제작하고 있는 강형섭 블루씨티 엔터테인먼트 공동대표는 "최근 중국 광전총국에서 메이저급 제작사를 불러 한국과 어떤 협의도 하지 말라고 지시한 것으로 전해 들었다"며 "상황이 생각보다 심각하다"고 말했다.

 

한국 엔터테인먼트 회사의 베이징 법인에 근무하고 있는 B씨는 "지난해 중국에서 방영 예정이었던 한국 드라마나 한국 배우가 출연하는 중국 드라마 53편의 방송이 취소됐다"며 "올해는 정도가 더 심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주재원 C씨는 "중국 정부가 구두지침을 내려보내면, 중국 기업들이 알아서 기고 있다"고 말했다.


최근 코트라는 "한류 콘텐츠 제한, 특정기업 대상 세무조사, 여행제한 등 사드 보복으로 의심되는 상황이 발생하고 있다"며 한한령 피해 현황을 파악했다. 코트라 베이징 무역관 김윤희 차장은 "한국 기업인들 사이에서 중국에서 사업하기 빡빡해졌다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며 "한국 중소기업들은 수출 상담까지는 잘 됐는데, 계약까지 시간이 오래 걸리거나 취소되는 사례가 늘고 있다"고 말했다.

 

▲ 베이징 시내의 한 건물에 배우 전지현이 모델로 등장한 광고판이 걸려있다./베이징=이명근 기자 qwe123@


◇ "韓 눈치 볼수록 中 한한령 활용"


실체가 드러나지 않는 한한령에 대한 두려움은 커지고 있다. '문화 분야에서 산업 전반으로 한한령이 확산되지 않을까'하는 걱정이다. C씨는 "최근 들어 중국 내 법규를 잘 지키고 있는지 엄격한 내부 단속에 나서고 있다"고 토로했다. 연내 사드가 실전 배치되고 나면 한한령이 더 거세질 것이란 전망도 힘을 얻고 있다.

한국 언론이 한한령에 너무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는 우려도 나왔다. 코트라 베이징무역관 김 차장은 "한국 언론에서 한한령 보도가 나가면, 중국 언론은 한국 언론이 사실을 객관적으로 보도하지 않는다고 지적하는 동시에 이 기사를 번역해서 뉴스로 만들고 있다"며 "한국 기업들에게 부담"이라고 말했다. 중국에서 20년간 일한 주재원 D씨는 "사드 영향으로 분위기가 좋지 않지만, 한국 언론이 너무 민감하게 대응하는 것은 기업 입장에서 마이너스"라며 "추측성 보도는 자제해달라"고 호소했다.

 

주재원들은 '한한령 공포에 휘둘리지 않아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D주재원은 "그간 중국에서 한국 기업들이 한류를 등에 업고 편하게 사업해 온 측면이 있다"며 "이번 기회로 중국 법을 정확히 지키고 소비자를 제대로 파악해야 한다. 한한령 핑계만 대고 있을 수 없다"고 말했다. C주재원은 "무역 문제는 무역으로 해결해야 한다"며 "사드 눈치볼 필요 없다. 우리가 한한령 눈치를 볼수록 중국 정부가 한한령을 활용하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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