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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스크림 권장가 표시…정상화? 편법 인상?

  • 2018.03.12(월) 14:33

빙과업체, 권장가 표시로 반값할인 관행 제동
"납품가도 일제히 올랐다" 소매점은 일제반발

동네 슈퍼마켓이나 아이스크림 전문점처럼 소비자들이 자주 접하는 소매점에서 판매하는 일부 아이스크림 가격이 일제히 올랐다. 이른바 '반값 할인'을 당연시하는 비정상적인 구조를 바로잡겠다며 빙과업체들이 일부 제품에 권장소비자가격을 표기하기 시작하면서다.

빙과업체들은 아이스크림이 원가 이하로 팔리면서 계속 손해를 본 만큼 권장소비자가격 표기가 정상화 과정이라고 강조한다. 반면
슈퍼마켓 점주들은 권장소비자가격 표기와 함께 아이스크림 납품가격도 일제히 올랐다면서 불만을 터뜨리고 있다. 일부에선 '담합이 아니냐'는 얘기까지 나온다.

▲ 서울의 한 슈퍼마켓에서 아이스크림을 할인해 팔고 있다. (사진=나원식 기자)

◇ 무차별 반값 할인에 '권장가 표시'

빙그레와 해태제과, 롯데제과, 롯데푸드 등 국내 빙과업체 4사는 지난달부터 순차적으로 일부 아이스크림 제품에 권장소비자가격(이하 소비자가)을 표기하기 시작했다. 소비자가를 표기한 제품은 '홈 타입' 혹은 '카톤 아이스크림'(종이컵이나 종이 상자에 포장된 제품)으로 분류되는 상품이다.

빙그레는 지난달부터 투게더와 엑설런트 제품에 각각 5500원, 6000원의 권장소비자가격을 표기해 팔고 있다. 해태제과는 베스트원에 4500원, 롯데푸드는 구구에 5000원을 각각 표기했다. 롯데제과의 경우 셀렉션과 티코 제품에 4500원을 표기하기 시작했다.

빙과업체들은 비정상적인 국내 아이스크림 시장의 구조를 바로잡으려면 소비자가 표기가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슈퍼마켓이나 아이스크림 전문점 등 소비자들이 자주 찾는 소매점들이 이른바 '반값 할인' 행사를 일상화한 탓에 팔면 팔수록 손해를 보고 있다는 게 빙과업체의 설명이다.

▲ 제품이나 납품상자에 권장소비자가격 표기 시작한 제품들.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빙그레 투게더, 해태 체리마루, 롯데제과 티코와 셀렉션.

지금은 국내 아이스크림 제품 대부분이 가격을 표기하지 않고 있다. '반값 할인'을 어필해야 하는 슈퍼마켓이나 아이스크림 전문점들이 강하게 반대하고 있어서다. 빙과업체들 역시 가격을 표기할 경우 점주들이 아예 제품을 받지 않을 수 있어 조심스러워하는 분위기가 강했다. 

그러다 보니 소비자 입장에서는 가게마다 천차만별인 아이스크림 가격에 대한 불신이 커질 수밖에 없다. 한 빙과업체 관계자는 "슈퍼마켓 점주들이 연중 내내 할인 행사로 아이스크림을 팔다 보니 가격 신뢰도는 떨어지고 마진도 줄어들 수밖에 없는 구조"라고 하소연했다.

◇ 점주들 "권장가? 납품가 올라 가격인상 불가피"

슈퍼마켓이나 아이스크림 전문점 점주들이 반발하고 있는 이유는 간단하다. 대형마트나 편의점과 비교해 거의 유일하게 가격 경쟁력이 있는 아이스크림의 할인 판매가 어려워질 수 있어서다.
서울의 한 슈퍼마켓 점주는 "결국 대형마트나 편의점과 아이스크림 가격이 비슷해진다는 얘기"라며 "그러면 안 그래도 어려운 동네 슈퍼들이 더 어려워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특히 점주들은 빙과업체들이 권장소비자가격 표기와는 별개로 대리점 등을 통해 공급하는 아이스크림 제품의 납품가격도 일제히 올렸다면서 불만을 토로하고 있다. 납품가격을 올리면 점주들은 판매가격도 인상할 수밖에 없어 결국 소비자들만 손해라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점주들의 주장을 이해하려면 국내 아이스크림 시장의 가격 구조를 먼저 알아야 한다. 아이스크림에는 크게 두 종류의 가격이 있다.

우선 아이스크림에 가격을 써놓지는 않지만 빙과업체들이 정해놓은 정가가 있다. 예를 들어 이번에 권장소비자가격을 표기한 빙그레의 투게더나 롯데제과의 티코, 셀렉션, 롯데푸드의 쿠쿠 등의 정가는 모두 6500원이다. 일선 슈퍼마켓들이 내 건 50~60%의 할인율은 이 정가를 기준으로 한다.

빙과업체들은 이번에 이 정가를 5500원 혹은 4500원으로 낮춰서 권장소비자가격으로 표기했다.

▲ 제품에 권장소비자가를 표기하기 시작한 빙그레 투게더 제품. (사진=나원식 기자)

반면 실제론 대리점이 소매점에 공급하는 가격인 납품가와 소매점이 일반 소비자에게 판매하는 판매가가 중요하다. 납품가는 소매점의 규모나 협상력에 따라 천차만별로 달라지긴 하지만 각 제품에는 나름의 납품가가 있다. 슈퍼마켓이나 아이스크림 전문점 등 소매점주들은 저마다 '파격 할인율'을 내걸고 있긴 하지만 실제로는 이 납품가에 마진을 붙여 판매가를 정한다.

점주들은 이 납품가가 일제히 오른 만큼 판매가도 올릴 수밖에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경기도의 한 아이스크림 전문점 점주의 경우 롯데제과의 티코와 셀렉션을 기존 3500원에서 4000원으로 올렸다. 롯데제과가 권장소비자가격을 4500원으로 표기한 것과는 별개로 납품가가 오른 만큼 가격 인상이 불가피했다고 설명했다. 같은 이유로 빙그레 투게더의 판매가 역시 4000원에서 5000원으로 올렸다. 투게더의 권장소비자가는 5500원이다. 

수도권 내 여러 슈퍼마켓과 할인마트 등의 사정도 비슷하다. 서울의 한 소규모 슈퍼마켓 점주는 "투게더의 경우 기존에 4800~5000원 정도에 팔았는데 납품가격이 올라 5500원으로 올려 팔고 있다"고 설명했다. 

◇ "2년 전에도 권장소비자가 표기하며 가격 인상"

일선 점주들 사이에서는 '담합 아니냐'는 얘기도 나오고 있다. 서울의 다른 슈퍼마켓 점주는 "제조업체들이 재작년에도 아이스크림에 권장소비자가격을 표기한다면서 납품가를 일제히 올려 담합 논란이 있었다"면서 "이후 오른 납품가는 그대로 둔 채 가격 표시만 없앴는데 이번에도 결국 비슷하게 돌아가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빙과업체들은 가격을 일괄적으로 올린 게 아니라 들쑥날쑥한 가격을 일정한 수준으로 맞추는 과정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공급가를 일정 수준으로 조정하다 보니 그동안 과도하게 싸게 공급한 점포의 경우 공급가가 올라갈 수 있다는 설명이다. 

한 빙과업체 관계자는 "대부분 빙과업체가 납품가(공급가)를 일괄적인 수준으로 맞추려고 하고 있다"며 "일부 가격이 오를 수 있지만 비정상적인 시장을 바로잡는 과정"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슈퍼마켓 등의 무리한 요구로 할인 폭이 과도했던 가격을 정상화하는 것인 만큼 일방적으로 가격을 올렸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덧붙였다.

공정거래위원회도 일단 담합이라고 보기는 어렵다는 견해를 내놨다. 한 공정위 관계자는 "소매점에 판매 가격을 강요한 게 아닌 데다가 비정상적인 시장을 '정상화'한다는 명분이 있는 만큼 담합으로 의심이 되지는 않는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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