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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즈人워치]'마성의 맛' 팔도비빔면 소스의 비법

  • 2018.04.04(수) 15:49

강민수 팔도 연구 1팀장 인터뷰
35년 액상스프 제조 노하우…원물 함유가 핵심

팔도 비빔면은 힐링이었다. 대학 시절 여자친구와 헤어진 이후 며칠간 술로 살았다. 어느 날 새벽 전날 과음으로 쓰려져 있다 허기가 느껴져 눈을 떴다. '이대로 가다가는 죽겠구나'는 생각이 들었다. 불 꺼진 부엌으로 나가 찬장을 열어보니 팔도 비빔면 4개가 있었다. 아무 생각 없이 4개를 모두 끓였다. 빨간 소스를 넣고 쓱쓱 비벼 홀로 방에 냄비를 끼고 앉아 다 먹었다. 그 순간만큼은 이별의 헛헛함을 느끼지 못했다.

잠시나마 이별의 슬픔까지도 잊게 해준 팔도 비빔면. 비빔면의 핵심은 액상 소스다. 액상 소스를 한 방울도 놓치지 않고 짜내려면 젓가락을 사용해야 한다. 젓가락 사이에 소스 봉지를 끼우고 아래로 쭉 짜내야 손실을 최소화할 수 있다. 그리고 젓가락에 묻은 소스를 혀끝으로 훔쳐낼 때 전해지는 매콤 달콤 새콤한 맛은 비빔면을 먹기 직전 기대감을 배가시킨다. 비빔면을 대하는 나만의 루틴(routine)이다.

'마성의 맛'을 자랑하는 팔도 비빔면 소스는 이제 단일 제품으로도 선보였다. 팔도가 만우절 이벤트로 진행했다가 소비자들의 폭발적인 반응에 놀라 아예 따로 제품화했다. 편의점에서 완판 행렬이 이어질 정도로 인기다. 수많은 소비자들의 입맛을 사로잡은 데에는 분명 이유가 있을 터. 특히 액상 소스의 비밀을 알고 싶었다. 영업비밀이라 다 알려주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근처에라도 가보고 싶었다.

지난 3일 경기도 용인에 있는 한국야쿠르트 중앙연구소를 찾았다. 팔도 비빔면 소스의 비법을 꿰고 있는 강민수 팔도 연구 1팀장을 만나기 위해서다. 만나자마자 "오늘 인터뷰의 주제는 '마성의 맛' 팔도 비빔면 소스의 비법입니다"라고 아예 못 박고 들어갔다. 살짝 당황해하던 강 팀장은 웃으며 "비법이랄 것이 없는데요"라며 능숙하게 예봉을 피해갔다.


하지만 인터뷰가 진행되자 그는 하나둘씩 이야기보따리를 풀기 시작했다. 강 팀장은 팔도에서 잔뼈가 굵은 연구자다. 면에서 스프에 이르기까지 팔도의 라면 제품은 모두 그의 손을 거쳤다. 매일 라면을 10~20개씩 맛본다. 직업상 어쩔 수 없는 일이기는 하지만 기본적으로 라면을 좋아한다는 게 그의 전언이다. 강 팀장은 "퇴근해 집에 가서도 라면을 자주 끓여 먹는다"고 했다. 천직이다.

팔도 비빔면의 역사는 생각보다 길다. 1984년에 처음 나왔다. 벌써 35년째 소비자들이 꾸준히 찾는 스테디셀러다. 그는 "출시 당시 비벼 먹는 스타일의 제품이 없었다"며 "국내 최초로 액상 스프를 선보인 게 팔도 비빔면"이라고 소개했다. 팔도 비빔면은 소비자들이 비빔국수를 즐겨 찾는다는 사실에 착안해 만들었다. 처음에는 여름 한정 상품으로만 내놨다. 하지만 겨울에도 찾는 사람이 많아 이제는 1년 내내 생산한다.

여자친구와 헤어진 뒤 팔도 비빔면으로 힐링했던 이야기를 들려줬다. 그러자 그의 눈이 번뜩였다. 역시 먼저 마음을 열어야 상대도 마음을 연다. 그가 풀어놓은 팔도 비빔면 액상 스프 이야기는 무척 흥미로웠다. 그는 "비빔 소스 자체가 고추장과 비슷해 보이지만 사실 그 안에는 엄청난 기술력이 들어가 있다"면서 "액상 스프 원재료들을 생물 위주로 쓰다 보니 미생물이 자랄 수 있는데 이를 억제하는 게 기술력"이라고 말했다.

강 팀장은 "미생물 억제 기술은 당시로써는 획기적이었다"며 "지금은 기계나 설비가 좋아져 경쟁업체들도 같은 기술을 사용하지만 그래도 따라오지 못하는 게 있다. 지난 35년간 우리가 해왔던 맛의 포인트를 잡는 경험이다. 이것이 팔도 비빔면 소스의 가장 큰 비법"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팔도 비빔면의 맛 포인트로 액상 스프 원재료로 생물을 쓴다는 점을 꼽았다. 강 팀장은 "액상 스프에 양파, 사과농축액 등을 사용한다"면서 "양파나 고추의 경우 원물을 갈아 즙을 짜서 넣는다"고 말했다. 또 "비빔면의 매운맛은 일차적으로 고추 등의 매운 정도를 나타내는 스코빌 지수(Scoville scale)를 활용하고, 그 다음에 관능(맛보기)을 계속 진행해 잡는다. 비빔면의 매운맛은 첫맛에 포인트를 줬다"고 설명했다.


맛보기를 반복하면 맛에 둔감해지지 않느냐고 물었다. 그는 "생각과 달리 계속 맛을 보면 맛에 더 예민해진다"며 "연구원들은 반복적인 맛보기를 통해 맛의 밸런스를 잡는 것에 익숙해져 있다"고 밝혔다. 아울러 "팔도 비빔면의 경우 매년 미세하게 맛을 조정한다"면서 "농산물을 쓰다 보니 매년 품질이 달라지고 맛 트렌드가 변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가장 애착이 가는 액상 스프를 물었다. 한참을 고민하던 그는 "최근에 출시한 막국수"라고 밝혔다. 강 팀장은 지난해 여름부터 막국수를 준비하면서 전국의 막국수 맛집을 모두 다녀왔다. 워낙에 음식 맛보는 것을 좋아하는 터라 그 작업이 무척 즐거웠다고 했다. 강 팀장은 "맛집도 가게마다 다 맛이 다르다"면서 "우리가 추구하는 맛과 가장 비슷한 맛집의 비빔장을 연구·분석해 최적화하는 작업을 진행했다"고 말했다.

이뿐만이 아니다. 비빔면의 특성상 소스와 면의 조화도 중요하다. 소스가 얼마나 면에 잘 흡착되는지, 소스를 비볐을 때 면의 색깔과 소스의 색깔이 얼마나 조화로운지도 체크해야한다. 비빔면의 개발 과정은 생각보다 더 복잡하고 세밀했다. 그는 "액상 스프는 안전성과 안정성 확보가 생명"이라면서 "식품은 안전하지 못하면 절대 제품으로 나올 수 없다"고 강조했다.

인터뷰를 진행하는 동안 강 팀장은 줄곧 '경험'을 강조했다. 오랜 기간 쌓은 노하우는 그 어떤 최신 설비도 따라오지 못한다. 팔도 비빔면의 액상 소스에는 지난 35년간 팔도만의 노하우가 쌓여있다. 그 노하우가 맛의 비결이자 핵심이라는 것이 강 팀장의 생각이다. 

그는 "솔직히 매년 맛을 바꾸는 작업이 쉽지 않다. 굉장히 스트레스다"라며 "하지만 그동안 선배들이 쌓아온 노하우들이 있어 체득하고 제품에 반영할 수 있었다. 그 경험들이 없었다면 지금의 팔도 비빔면이나 막국수는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최근 관심사는 막국수다. 출시된 지 얼마 되지 않은 이유도 있지만 가장 심혈을 기울인 작품이어서다. 강 팀장은 "라면은 물론 과자와 음료수 등 최근 선보인 신제품은 모두 맛본다"며 "종류는 다르지만 여러 제품의 맛을 봐야 트렌드를 잡고, 우리 제품의 맛을 배합하는 데에도 도움이 된다. 비빔면도 막국수도 모두 이 과정을 통해 탄생했다"고 전했다.

노트북을 덮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더 나눴다. 그는 자신이 식품업계에 몸담은 계기로 '식품에 대한 관심'을 꼽았다. 강 팀장은 "우리가 살아가는 모든 것이 식품과 관련되어 있다"면서 "식품은 너무 재미있다"고 강조했다. 인터뷰가 끝나고 그의 작품인 막국수와 비빔면 앞에서 포즈를 취했다. 무척 어색해했다.

하지만 그 모습조차 행복해 보였다. 다들 "자식 같은 제품들"이라고 했다. 영락없는 아빠 웃음이다. 35년째 사랑받고 있는 팔도 비빔면 소스에는 그가 강조한 경험과 함께 그의 자부심도 고스란히 녹아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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