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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즈人워치]'17.2도' 참이슬에 숨겨진 이야기들

  • 2018.04.18(수) 15:03

김경훈 하이트진로 소주브랜드 팀장 인터뷰
2년간 3000명 대상 테스트…최적 도수 찾아

몸이 휘청거렸다. 분명 시선은 정면을 향하고 있는데 발걸음은 아니었다. 제대로 걷고 있지 않다는 것을 분명히 느낄 수 있었다. 어떻게든 집에 가야 한다는 생각밖에 없었다. 겨우 도착해 안방문을 열고 들어가 아버지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아 헤벌쭉 웃었다. "아버지, 저 처음으로 소주 먹었습니다". 아버지는 웃으셨다.

26년 전 처음으로 소주를 마셨다. 대학 합격 소식을 듣고 아버지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아 맥주로 술을 배운지 딱 이틀이 지났을 때였다. 처음 마셔본 소주의 맛은 강렬했다. 맥주와는 차원이 달랐다. 그때 소주는 오프너로 따야 했다. 재수를 결심한 친구와 양재동 포장마차에서 호기롭게 각 1병씩 비웠다. 안주는 기억나지 않는다. 하지만 내 생애 첫 소주였던 빨간 딱지의 진로는 아직도 기억 속에 뿌리 깊게 박혀 있다.

그때의 진로 소주는 25도였다. 어른들이 왜 소주를 삼키시며 "캬~!"하는 소리를 내는지 그제야 알 수 있었다. "캬~!"하고 뱉어내지 않고는 목구멍에 남아있는 알코올 기운을 밖으로 빼낼 수 없었다. 조건반사였던 셈이다. 소주 한 모금에 내 식도의 위치를 알 수 있을 만큼 당시 진로 소주는 독했다.

세월이 지나면서 독했던 진로 소주는 조금씩 순해졌다. 최근에는 17.2도까지 떨어졌다. 하이트진로는 참이슬 후레쉬의 알코올 도수를 17.2도까지 내렸다. 2014년 도수 조정 이후 지난 4년간 아무런 움직임이 없던 하이트진로다. 주류업체가 주력제품의 도수를 낮춘다는 것은 흔한 일이 아니다. 판매가 부진해 변화가 필요했다면 수긍할 수 있다. 하지만 참이슬 후레쉬의 판매는 고공행진 중이다. 작년 기준 시장 점유율이 50%를 웃돈다.

▲ 김경훈 하이트진로 소주브랜드 팀장. (사진=이명근 기자/qwe123@)

그렇다면 왜일까. 그 이유가 궁금했다. 지난 17일 서울 강남구 청담동에 위치한 하이트진로 사옥을 찾았다. 이번 참이슬 후레쉬의 도수 조정을 담당했던 김경훈 소주 브랜드 팀장을 만나기 위해서다. 그는 하이트진로가 생산하는 소주 제품의 브랜드 마케팅을 현장에서 진두지휘한다. 그런 만큼 17.2도 참이슬의 비하인드 스토리를 잘 이야기해줄 것으로 생각했다.

얼굴을 마주한 김 팀장은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다. 얼굴에 어색함이 묻어났다. 흔히 있는 일이다. 인터뷰이(interviewee)들은 대부분 첫 만남에서 비슷한 반응을 보인다. 어색함을 풀기 위해서는 '닥치고 질문'이 특효다. 본인이 잘 아는 분야의 이야기인 만큼 쉽게 입을 뗀다. 그래서 물었다. "왜 내렸나요?". 그가 입을 열기 시작했다. 역시 '닥질'은 효과만점이다.

김 팀장은 "참이슬 오리지날은 소주의 본질을 유지하고, 참이슬 후레쉬는 시대의 트렌드에 맞게 계속 바꾼다는 콘셉트를 가져가고 있다"며 "참이슬 후레쉬의 도수를 낮춘 것도 이런 콘셉트에 따라 이뤄진 것"이라고 말했다. 참이슬 후레쉬의 도수 조정은 최근 국내 주류시장에 불고 있는 '저도주(低度酒)' 트렌드와 연관이 있다. 소비자들이 점점 더 낮은 도수의 주류를 찾는 것이 참이슬 후레쉬의 도수 조정 이유라는 설명이다.

그는 "이번 도수 조정을 위해 지난 2년간 꾸준히 참이슬 후레쉬의 주질과 관련한 서베이를 해왔다"면서 "시작은 소비자들의 반응이다. 매달 서베이(survey)를 진행하는데 대부분 항목에서는 만족할만한 결과가 나왔지만 음용감 즉 목넘김 부분에서는 내부적으로 만족스러운 결과를 받지 못했다. 이것이 도수 조정을 고민하게 된 계기"라고 소개했다.

이에 따라 하이트진로는 다양한 연령대와 계층의 소비자들을 대상으로 광범위한 서베이에 나섰다. 대표적인 질문이 "당신이 생각하는 소주는 몇도 인가?"다. 매년 같은 질문을 불특정 다수의 소비자에게 던진다. 김 팀장은 그 결과를 받아보며 하나의 공통점을 찾았다고 했다. 바로 소비자들이 생각하는 소주의 도수가 매년 내려가고 있다는 점이다. 저도주 트렌드가 소비자들 사이에 확실히 자리 잡았다는 증거였다.


김 팀장은 "참이슬 후레쉬의 도수 조정을 위해 2년간 3000여 명의 소비자를 대상으로 조사를 진행했다"며 "주질은 같으면서 도수를 내리는 건 무척 힘든 일이다. 기술력이 없으면 절대 만들어낼 수 없다. 내부적으로 많은 고민을 했고 소비자들이 원하는 적정 지점이 17.2도였다. 그래서 여기에 맞췄다"고 설명했다.

하이트진로는 권역별 임원들부터 시작해 그 임원들의 지인 심지어 도매상과 도매상 중에서 술을 좀 마신다는 사람들까지 테스트에 참여시켰다. 도수는 낮추되 소주 본연의 맛을 유지하는 마지노선을 찾기 위해서다. 그 결과물이 17.2도였다. 그는 "17.2도에 많은 사람이 고개를 끄덕였다"고 했다. 그들의 입맛이 참이슬 후레쉬의 적정 도수를 17.2도로 결정한 셈이다.

참이슬 후레쉬의 도수 조정에 대해 내부 반발은 없었는지 물었다. 김 팀장은 "내부에서도 반발이 상당했다"고 전했다. 하이트진로 내부에서도 참이슬이 잘 팔리고 있는데 굳이 도수를 조정할 필요가 있느냐는 의견이 많았다. 자칫 도수 조정과 함께 기존 고객이 이탈할 수 있다는 우려였다. 하지만 김 팀장은 서베이 결과를 바탕으로 내부 반발을 무마했다. 소비자들의 선택을 믿었다. 소비자가 원한다는데 무슨 말이 필요하랴.

그는 "참이슬 후레쉬의 도수 조정은 20대를 타깃으로 했다"면서 "20대는 이유만 확실하면 언제든 변화를 받아들일 준비가 돼 있는 세대다. 따라서 17.2도의 참이슬 후레쉬를 통해 20대의 입맛을 잡으면 이들이 30대, 40대가 되더라도 꾸준히 우리의 고객이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앞으로도 참이슬 후레쉬의 도수를 계속 조정할 것인지 물었다. 또 도수를 조정한다면 어디까지를 마지노선으로 보고 있는지도 함께 물어봤다. 김 팀장은 "지금은 16도 정도까지 생각하고 있다"며 "참나무통 맑은소주가 16도인데 반응이 좋다. 와인이 14도인 만큼 그보다는 높아야 한다. 그래야만 소주 본연의 맛을 잃어버리지 않을 수 있다"고 말했다.

또 "도수 조정만이 능사가 아니다. 블렌딩 기술이 있어야 한다. 하이트진로가 도수를 조정하고도 소주 본연의 맛을 유지할 수 있는 건 90년이 넘는 소주 제조 기술을 가지고 있어서 가능한 일"이라고 강조했다.

이번 참이슬 후레쉬 도수 조정은 일종의 모험이었다. 김 팀장도 인정했다. 그는 "내부의 극심한 반대를 무릅쓰고 도수 조정을 할 수 있었던 건 우리가 가진 기술력에 대한 믿음 때문이었다"면서 "소주 시장의 트렌드 세터로서 소비자 니즈를 파악하고 이를 제품에 잘 반영하는 것이 우리의 몫이다. 서베이를 통해 소비자들이 원하는 바를 파악할 수 있었기에 과감히 모험에 나설 수 있었다"고 밝혔다.

김 팀장은 2010년 하이트진로에 합류했다. 그 전에는 광고회사에서 마케팅 업무를 했다. 그는 "주류회사에 다니다 보니 주량이 예전보다 늘었다"면서 "요즘은 평소 술을 즐기지 않는 아내도 가끔 반주를 하기도 한다"며 웃었다. 그의 주량은 소주 2병이다. 문제는 거의 매일 마신다는 점이다. 김 팀장은 "아무래도 하는 일이 소주와 관련된 일이다 보니…"라며 수줍게 웃었다.

김 팀장의 말대로 하이트진로는 과감한 모험을 택했다. 현실에 안주할 수도 있었지만 평탄한 길보다는 좀 더 험한 길을 택했다. 하이트진로가 모험을 선택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지속적으로 확인한 소비자들의 니즈와 오랜 기간 쌓아온 하이트진로만의 기술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하이트진로의 모험이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무척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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