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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즈人워치]초코파이에 새로운 '정(情)'을 더하다

  • 2018.05.31(목) 10:09

서명희 오리온 신규사업 마케팅팀장 인터뷰
'초코파이 하우스' 통해 프리미엄으로 진화
'K-디저트'로 글로벌 시장 공략 채비 박차

매주 일요일 아침마다 말년 병장은 고민을 거듭했다. 주제는 한결같다. 이번 주는 어디로 갈 것인가다. 지난주에는 어디서 무엇을 줬다더라는 소문을 근거로 이번 주 행선지를 결정한다. 한참을 고민한 그는 "좋았어. 이번 주는 성당이다"라고 외쳤다. 제대가 얼마 남지 않은 만큼 바깥바람을 쐬며 사회에 적응해야 한다고 했다. 성당은 외부에 있었다. 그래서 읍내까지 트럭을 타고 나가야 했다.

말년 병장은 내무실을 죽 둘러봤다. 같이 가자는 신호다. 하지만 우리는 미동도 하지 않았다. 애써 그의 시선을 피했다. 우리의 마음은 이미 정해져 있었기 때문이다. 교회다. 심지어 부대 안에 있는 교회다. 사실 바깥바람도 쐬고 싶다. 하지만 그보다 더 우리를 강하게 끌어당기는 것이 있었다. 바로 예배가 끝나고 나눠주는 오리온 초코파이다. 바깥바람은 먹지 못한다. 그러나 초코파이는 먹을 수 있다. 심지어 달다.

무미건조한 군 생활에서 오리온 초코파이는 신선한 활력소였다. 가끔 오리온 초코파이가 아닌 유사제품이 나오는 날도 있었다. 그럴 때면 그날 내무실 막내의 관물대는 오리온 초코파이 유사제품으로 가득 차곤 했다. 장병들의 오리온 초코파이에 대한 로열티는 그만큼 대단했다. 겨울에는 더 인기였다. 쓸어도 쓸어도 끝이 보이지 않는 눈쓸기 후 보급으로 나온 차가운 우유와 먹는 오리온 초코파이는 가히 천하일미였다. 

 

▲ 서명희 오리온 신규사업부문 마케팅팀장 (사진=이명근 기자/qwe123@)

오리온 초코파이는 1974년 첫선을 보였다. 이후 국민 간식으로 자리 잡으며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지금도 '오리온=초코파이'라는 등식이 성립할 만큼 확실한 효자 브랜드로 자리 잡았다. 국내는 물론 중국과 베트남, 러시아에서도 큰 인기다. 심지어 베트남에서는 제사상에 오를 만큼 오리온 초코파이의 명성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오리온 초코파이는 이제 '말하지 않아도 아는' 브랜드로 우뚝 섰다.

그런 초코파이가 최근 파격적인 변신을 시도했다. 칠흑 같았던 암흑의 군 생활을 견디게 해줬던, 국민 간식으로 누구나 쉽게 맛볼 수 있었던 초코파이가 이제는 '프리미엄 디저트'로 거듭났다. 가격도 크게 올랐다. 한 개에 2000~2500원씩 한다. 동네 구멍가게에서 언제나 손쉽게 집어 들었던 그런 초코파이가 아니다. 왠지 서운했다. 억울한 생각도 들었다. 마치 오랜 친구를 빼앗긴 마냥 화도 났다.

지난 29일 서울 강남구 도곡동에 위치한 마켓오에서 서명희 오리온 신규사업부문 마케팅팀장을 만났다. 추억의 오리온 초코파이를 빼앗아간 이유를 물어보고 싶어서였다. 늘 곁에 있는 '정(情)' 많은 친구 같았던 초코파이를 왜 이렇게 변신시켰는지 따져 물어야겠다는 심산이었다. 약속 시간보다 일찍 도착해 마음을 가다듬었다. 원래 인터뷰에 개인적인 감정을 넣어서는 안 된다. 하지만 이번만큼은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약속 시간에 맞춰 등장한 서 팀장은 매우 조심스러웠다. 탐색전이다. 이럴 때는 함부로 패를 까서는 안된다. 누구나 예상 가능한 질문으로 워밍업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때까지만 해도 나는 충분히 전투적인 자세를 견지했다고 자부한다. 하지만 서 팀장과의 인터뷰가 진행되면서 나의 전투적 자세는 자연스럽게 무장해제됐다. 오리온이 초코파이를 변신시킨 이유를 충분히 수긍할만했기 때문이다.
 

서 팀장은 "일본에는 도쿄 바나나, 대만에는 펑리수와 같은 대표적인 디저트 상품이 있고 이 상품을 사려고 직접 현지를 방문한다"며 "하지만 우리나라에는 그런 대표적인 디저트 브랜드가 없다는 점에 착안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초코파이라는 브랜드는 오리온이 가지고 있는 파워 브랜드이자 국민 브랜드"라면서 "K-POP과 K-푸드와 같이 초코파이를 K-디저트로 만들어보자는 생각에서 시작했다"고 말했다.
 
서 팀장의 설명을 듣고 보니 저절로 고개가 끄덕여졌다. 실제로 일본과 대만을 여행한 사람들의 SNS에는 언제나 도쿄 바나나와 펑리수가 등장한다. 이들 제품이 그만큼 세계 시장에서 통했다는 의미다. 우리는 왜 그동안 이런 점들을 간과했을까. 왜 우리는 만들지 않았을까 궁금했다.

그는 "오리온은 창립 60주년을 맞아 글로벌 종합 식품회사로 도약하겠다는 비전을 선포했다"며 "초코파이의 변신은 이런 글로벌 전략의 일환"이라고 소개했다. 서 팀장은 "최근 디저트 시장을 살펴보면 너무 낯선 제품보다 기존의 익숙한 제품을 약간 바꾸거나 재해석한 제품에 소비자들이 반응하고 있다"면서 "믿고 안심할 수 있는 제품을 재해석해 보자고 생각했고 초코파이가 가장 적합하다는 결론을 얻었다"고 밝혔다.

이에 오리온은 초코파이를 선물로도 줄 수 있고 디저트로도 먹을 수 있는 제품으로 재해석하기로 했다. 이 시도는 작년 3월 정식으로 경영진에 보고가 됐고, 그 결과 작년 12월에 초코파이 하우스를 오픈했다. 초코파이 하우스에선 프리미엄 디저트로 재해석한 초코파이를 판매한다. 지금까진 마켓오 도곡점 1층의 한쪽을 생산공장으로 삼아 제품을 공급해왔다.
 

사실 오리온도 프리미엄 초코파이가 성공할지에 대해 처음에는 반신반의했다. 하지만 기우에 불과했다. 프리미엄 초코파이는 폭발적인 인기를 끌기 시작했고, 최근에는 주문량을 따라가지 못해 전북 익산에 프리미엄 초코파이를 위한 라인을 새로 깔았을 정도로 큰 인기를 끌고 있다.

서 팀장은 "초코파이 하우스에서 선보이는 초코파이는 기존 제품과는 달리 소재를 프리미엄으로 격상했다"면서 "초코파이는 초코 코팅과 마시멜로, 비스킷의 조화가 핵심이다. 초코파이 하우스의 초코파이는 이를 유지하면서 소재를 고급스럽게 바꿨다. 유럽산 버터와 유럽산 초콜릿, 캐러멜은 수제로 직접 쑤어서 넣는 등 세심하게 신경 썼다. 마시멜로도 기존과 다르게 크리미하게 바꿨다"고 설명했다.

확 바뀐 초코파이는 4가지 맛으로 만들었다. 오리지널과 캐러멜솔트, 카카오, 레드벨벳이다. 4가지 제품 모두 각자 독특한 매력을 가지고 있다. 서 팀장은 "기존 초코파이의 정체성을 훼손하지 않으면서 어떻게 차별화를 가져갈 것인가가 가장 어려운 과제였다"며 "4가지 맛을 선보이기 위해 지난 1년 반 동안 메뉴 개발에 매진했다. 두 가지 맛을 추가로 선보일 예정인데 이미 3개월 전에 스터디에 들어간 상태"라고 설명했다.

오리온은 초코파이 하우스의 초코파이를 더욱 돋보이게 하려고 부가제품도 많이 신경 썼다. 프리미엄 초코파이 전용 커피가 대표적이다. 이 커피는 초코파이와 함께 먹었을 때 초코파이의 맛을 극대화할 수 있도록 개발했다. 여러 종류의 원두를 블렌딩해 최적의 조합을 찾았고, 초코파이만을 위한 완벽한 보조장치로 개발했다. 가격도 한잔에 2000원으로 저렴하다.
 

이뿐만이 아니다. 포장에도 큰 노력을 기울였다. 초코파이를 꺼냈을 때 손에 초콜릿이 묻지 않도록 특별한 포장 패키지를 적용했다. 아울러 선물용으로도 손색이 없도록 박스도 고급화했다. 누군가에게 선물을 받는다면 센스있는 선물이라는 칭찬을 받을 수 있도록 신경을 쓴 흔적이 역력했다.
 
서 팀장은 "현재 성과는 매우 좋다"면서 "백화점 등을 중심으로 전국에 4개 매장을 개설했는데 백화점 디저트 브랜드 중 판매 1, 2위를 다툴 만큼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고 전했다. 
 
오리온의 최고 경영진도 초코파이의 성과에 주목하고 있다. 그는 "45년 만에 이미지 변신에 성공한 초코파이에 대해 경영진도 매우 고무적이라는 반응"이라며 "초코파이를 신성장 동력으로 삼아 글로벌 진출을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초코파이의 변신을 담당했던 마케터로서 소회를 물었다. 그러자 그는 "행복하다"고 했다. "초코파이라는 국민 브랜드를 담당하는 마케터라는 사실이 정말 자랑스럽다"면서 "오래전부터 BM(브랜드 매니저)이 꿈이었다. BM은 마케팅의 꽃이다. 내가 대한민국 대표 브랜드의 BM이라는 사실이 무척 행복하다"고 강조했다.

초코파이는 이제 다른 모습의 초코파이로 진화했다. '정(情)'으로 수많은 국민과 장병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던 초코파이는 이제 또 다른 '정(情)'을 담고 글로벌 시장으로 나갈 채비를 하고 있다. 모양과 내용은 바뀌었지만 초코파이 안에 담긴 각양각색 추억은 여전히 오롯이 남아있다. 오늘 저녁 퇴근길 슈퍼에 들러 초코파이 한 박스 사들고 들어가 볼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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