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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이드 스토리]하이트진로, 홍길동이 된 사연

  • 2018.09.12(수) 10:46

위스키인데 기타주류 등록…규정 숙지 미숙
연말까지 '위스키'로 홍보못해…재등록 추진

 
한동안 국내 위스키 시장에서 밀려나 있던 하이트진로가 오랜만에 위스키 시장에 도전장을 던졌습니다. 그 카드는 국내 최저도 '위스키'입니다. 아시다시피 최근 국내 위스키 시장은 저도 위스키가 대세입니다. 이젠 40도가 넘는 정통 위스키를 찾는 소비자는 많지 않습니다. 술자리에서 양주 폭탄주가 사라진 지도 오래됐습니다.

하이트진로는 최근 알코올 도수 33도인 '더클래스 1933(The Class 1933)'과 '더클래스 33(The Class 33)'를 출시했다고 밝혔습니다. 알코올 도수 33도는 현재 국내에 출시된 위스키 중 가장 낮은 도수라고 합니다. 순하고 부드러운 맛을 선호하는 최근 음주 트렌드를 적극 반영한 결과입니다. 더불어 위스키 시장에 대한 하이트진로의 의지를 알 수 있는 대목이기도 합니다.

하이트진로는 93년 전통의 스코틀랜드 디스텔(Distell)과 합작해 국내 위스키 최저 도수인 33도를 구현했다고 밝혔습니다. 하이트진로는 지난 4년 동안 이번 제품 개발에 매달렸습니다. 위스키 개발 및 블렌딩 과정에 디스텔의 위스키 마스터 '커스티 맥컬럼'을 비롯해 국내 최고 전현직 위스키 전문가들이 참여했다고 합니다.

하이트진로의 국내 최저도 위스키 출시는 눈길을 끌만 했습니다. 국내 위스키 시장은 현재 누가 더 알코올 도수를 내릴 수 있느냐에 사활을 걸고 있습니다. 위스키 알코올 도수를 내리는 것은 생각보다 어렵습니다. 위스키 고유의 풍미를 유지하면서도 알코올 도수를 내리는 게 쉽지 않기 때문인데요. 그만큼 높은 기술력을 요구하는 작업입니다.
 

그런데 좀 이상한 일이 생겼습니다. 하이트진로가 이번에 내놓은 제품보다 더 알코올 도수가 낮은 제품이 이미 존재한다는 점입니다. 하이트진로는 분명 국내 '최저도 위스키'라고 강조했습니다. 하지만 업계에서는 하이트진로의 이번 신제품들이 최저도 위스키가 아닐 것이라는 이야기가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하이트진로가 거짓말을 한 것일까요? 아니면 오해일까요?

실제로 롯데주류가 지난 2016년 출시한 위스키형 제품인 '블랙조커(Black Joker)' 시리즈의 알코올 도수는 25도와 30도였습니다. 당시 위스키형 제품의 알코올 도수가 20도대로 내려간 건 처음이었습니다. 그런데도 하이트진로의 더 클래스 시리즈가 국내 '최저도 위스키'라니 의아했습니다. 그래서 좀 더 알아봤습니다. 해답은 국내 위스키 제품들의 복잡한 분류법에 있었습니다.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하이트진로의 더 클래스 시리즈는 현재 시판 중인 국내 위스키 중 최저도 위스키가 맞습니다. 그렇다면 롯데주류의 블랙조커 시리즈는 어떻게 된 것일까요? 롯데주류의 블랙조커 시리즈는 국내 위스키 분류상 위스키가 아닙니다. 블랙조커는 '기타주류'로 분류됩니다. 그 차이가 무엇일까요? 이제 그 복잡한 위스키 분류의 속살이 드러날 차례입니다.

지금까지 우리가 흔히 접했던, 양주로 통용됐던 제품은 대부분 '위스키'였습니다. 물론 양주로 통칭하는 주류 카테고리에는 위스키는 물론 많은 종류의 제품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가장 자주, 쉽게 만나볼 수 있는 것은 위스키입니다. 그중에서도 가장 익숙한 것이 '스카치 위스키'입니다. 위스키에 큰 관심이 없더라도 대부분 '양주=스카치 위스키'로 알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데 아무 제품에나 스카치 위스키라는 명칭을 붙이지는 않습니다. 스카치 위스키는 스코틀랜드 스카치위스키협회(SWA)가 인정한 40도 이상 주류만 해당합니다. 반드시 스코틀랜드산(産) 위스키 원액을 포함해야 합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도수입니다. 스코틀랜드산 원액 100%를 사용했다고 하더라도 도수가 40도 아래라면 스코틀랜드에서는 스카치 위스키로 부르지 않습니다.


현재 국내에서 통용되고 있는 대부분 위스키는 스코틀랜드산 원액을 사용합니다. 하지만 라벨을 잘 살펴보면 스카치 위스키라고 씌어있는 제품은 많지 않습니다. 스코틀랜드는 자국의 위스키 산업 보호를 위해 이런 기준을 엄격히 지키는 것으로 유명합니다. 따라서 하이트진로의 이번 신제품 더 클래스 시리즈도 SWA 기준을 적용하자면 엄밀하게 이야기해서 위스키가 아닙니다.

하지만 여기에는 또 달리 적용되는 기준이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위스키를 생산하는 나라가 아닙니다. 스코틀랜드에서 원액을 수입해 국내에서 각종 첨가물 등을 섞거나 아니면 현지에서 원액에 각종 첨가물 등을 넣어 완제품으로 수입해 판매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따라서 위스키는 수입품인 셈입니다. 그러다 보니 국내법을 따라야 합니다.

국내에서는 SWA와는 조금 다른 위스키 준을 적용하고 있습니다. 주세법시행령 제2조 2항에 따르면 위스키 원액에 당분, 산분(구연산 등), 조미료, 향료, 색소 등 5가지 첨가물을 사용할 경우 위스키로 분류합니다. 다만 이 다섯가지 이외 첨가물이 들어가면 기타주류로 분류합니다. 하이트진로의 더 클래스시리즈에는 99.8%의 스코틀랜드산 원액과 0.2%의 위스키향이 첨가됐습니다. 따라서 더 클래스 시리즈는 위스키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반면 롯데주류의 블랙조커 시리즈는 이 다섯 가지 이외 다른 추출물들을 함유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블랙조커 시리즈는 기타주류로 분류됩니다. 그래서 롯데주류도 블랙조커 시리즈를 위스키로 부르지 않고 '위스키형 제품'으로 부릅니다. 위스키를 살 때 뒷면 라벨 성분표를 보면 '위스키'인지 '기타주류'인지 명시돼 있습니다. 기타주류라면 위의 다섯 가지 이외 첨가물이 들어간 제품입니다.



그렇다고 국내법상 위스키와 기타주류에 부과되는 세금 등의 차이는 없습니다. 위스키건 기타주류건 세금과 유통 측면에선 같은 기준을 적용받습니다. 다만 제품 홍보할 때는 반드시 위스키인지, 기타주류인지를 밝혀야 합니다. 하이트진로가 홍길동이 된 사연이 여기에 있습니다.

하이트진로는 이번 더 클래스 시리즈 출시를 준비하면서 제품을 '기타주류'로 등록했습니다. 스코틀랜드산 원액 99.8%에 위스키향 0.2% 첨가라면 국내법 기준상 분명 '위스키'로 등록했어야 맞습니다. 하지만 현업부서에선 "향을 첨가하면 기타주류로 분류되는 것으로 알았다"고 합니다. 그 탓에 위스키인 더 클래스 시리즈는 갑자기 기타주류가 됐습니다. 아직 기타주류임에도 국내 최저도 '위스키'로 홍보한 셈입니다.

하이트진로는 뒤늦게 이런 사실을 인지했습니다. 이미 지난 10일부터 판매에 들어간 탓에 현재 시판 중인 더 클래스 시리즈는 기타주류로 표기돼있습니다. 하이트진로는 다음 선적분이 도착하는 올해 연말쯤부터는 다시 위스키로 등록해 판매하겠다는 입장입니다. 한 위스키 업체 관계자는 "국내 위스키를 분류하는 기준이 모호한 측면이 있어 업체들마저 헷갈릴 소지가 많다"고 지적했습니다.

소비자 입장에서는 별일이 아닙니다. 위스키건 기타주류건 똑같이 위스키일 뿐입니다. 성분이 무엇인지, 첨가물은 무엇이 들어갔는지 따지지도 않습니다. 다만 하이트진로는 다릅니다. 분명 위스키임에도 올해 연말까지 '위스키를 위스키로 부르지 못하는' 홍길동이 된 겁니다. 그동안 멀어져 있던 위스키 시장에 하루라도 빨리 진입하고 싶었던 하이트진로의 조급함이 불러온 해프닝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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