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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이드 스토리]양치기 소년이 된 '카스'

  • 2019.10.14(월) 16:14

가격 인상 불가피하다더니…6개월 만에 원상복귀
들쑥날쑥 가격에 도매상 부글…'테라 견제용' 분석

사진=오비맥주 제공.

"출고가 인상은 2년 5개월 만이다. 주요 원부자재 가격과 제반 관리 비용 상승 등 전반적인 경영 여건을 감안할 때 출고가 조정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2019년 3월 26일, 오비맥주)

6개월 전 카스를 비롯한 주요 맥주 제품의 공장 출고가를 올리겠다면서 밝힌 오비맥주의 변은 이랬습니다. 국내 식료품 가격이 줄줄이 오르는 와중인 데다 2년 5개월 만의 가격 인상이었고, '소비자 부담을 고려해 인상폭을 최소화했다'라고 하소연하는데 쉽게 돌을 던질 수는 없었습니다.

그런데 지난 7월 24일 오비맥주가 갑작스레 카스와 발포주 제품인 필굿의 가격을 여름 성수기에 맞춰 한시적으로 인하한다고 발표했을 때는 약간 의아해졌습니다. 100여 일 만에 다시 가격을 내릴 정도로 원자재 가격이나 경영 여건이 달라졌을 리는 없을 테고요. '소비자와 소상공인에 혜택을 주기 위해 판촉 행사를 기획했다'라고 밝혔는데 과연 그럴까 하는 의구심부터 들었습니다.

오비맥주가 지난 3월 출고가를 올린 직후 시중 식당에선 맥주 한 병 가격을 5000원으로 올린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런데 출고가를 잠깐 인하한다고 해서 예전처럼 4000원으로 내리는 식당이 있을 것 같진 않았기 때문입니다. 식당에서 여름 성수기에 '한시적'으로 맥주 가격을 내릴 리 만무하죠.

편의점이나 대형마트에선 다소 가격을 내리긴 했지만 소비자가 크게 체감할 정도는 아니었다는 평이 많았습니다. 게다가 가격을 올렸다가 금세 내린 거여서 체감을 하기는 더욱 어려웠죠. 국내 맥주시장에서 편의점이나 대형마트의 비중이 그리 크지도 않습니다.

여름 한철 맥주 출고가를 내렸다가 다시 올린 오비맥주가 14일 또 다시 2020년 말까지 출고가를 인하한다고 발표했습니다. '현재가'를 고려하면 가격 인하가 맞긴 한데, 소비자 입장에서 보면 가격 인하라기보다는 '원상복귀'로 느껴질 정도로 짧은 기간에 기존 가격으로 돌아간 모양새입니다.

카스만 놓고 보면 '우여곡절' 끝에 가격을 다시 정상화한 건데요. 그러나 그 '우여곡절'이 남긴 파장은 만만치가 않아 보입니다.

우선 오비맥주가 주요 제품 출고가를 인상하면서 식당 등에서 판매하는 맥주 가격이 줄줄이 올랐습니다. 사실 경쟁 제품인 하이트진로의 '테라'나 '하이트', 롯데주류의 '피츠'의 경우 출고가를 올리지 않은 상황이었는데요. 식당에선 이 제품들의 가격을 미리 일괄적으로 올린 경우가 많았습니다.

통상 한 맥주회사가 가격을 올리면 경쟁사들도 줄줄이 따라가는 게 업계의 관례인데요. 그러니 식당에선 선제적인 '가격 인상'이 크게 문제 될 게 없어 보였습니다. 그러나 이번에는 경쟁사들이 제각각의 이유로 가격을 올리지 않았고요. 이후 카스는 6개월 만에 원래 가격으로 원상복귀했습니다. 결국 6개월 전과 비교하면 맥주제품 출고가는 그대로인데 식당 물가만 오른 셈이 됐습니다.

그렇다면 식당 맥주 가격이 다시 내려갈까요? 그러지 않을 가능성이 훨씬 큽니다. 소비자 입장에서는 분통이 터질 만한 일입니다.

/사진=이명근 기자 qwe123@

지난 6개월간 국내 맥주산업의 지형이 많이 바뀐 것도 흥미로운 대목입니다. 그간 오비맥주가 카스 가격을 올리거나 내릴 때마다 들어왔던 말은 '테라 견제용 아니냐'라는 것이었습니다. 공교롭게도(?) 시기상으로 그런 정황이 있어 보이기도 했습니다.

먼저 오비맥주가 가격 인상을 발표한 것은 경쟁사인 하이트진로가 신제품인 '테라'를 출시한 시기와 맞아떨어집니다. 당시 시장에선 오비맥주가 테라를 견제하기 위해 출고가를 기습 인상했다는 해석이 나왔습니다.

오비맥주가 카스 가격 인상을 발표하면 주류 도매상들이 실제로 가격이 오르기 전에 사재기를 시작할 테고, 그러면 도매상들의 창고엔 신제품인 테라가 들어갈 자리가 남지 않을 것이란 분석이었습니다. 실제 카스는 워낙 잘 팔리는 제품이어서 당시 사재기를 한 도매상들이 많았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지난 여름 오비맥주는 왜 다시 카스 출고가를 내린 걸까요? 오비맥주 측은 성수기를 맞아 국산 맥주 소비를 촉진하기 위해서라고 했지만 시장에서는 믿지 않는 분위기였습니다. 예상외로 테라가 잘 팔리니 부랴부랴 가격을 내리려는 것 아니냐는 분석이 많았습니다.

테라 병맥주 500㎖의 출고가는 1146.66원인데요. 테라의 경우 신제품인 탓에 카스에 맞춰 출고가를 올리기가 어려웠습니다. 출시하자마자 가격을 인상하는 경우는 없으니까요. 이에 따라 가격을 1147원에서 1203원으로 올려버린 카스의 '가격 경쟁력'이 떨어진 상황이 만들어졌습니다.

테라는 지금 말 그대로 '돌풍'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벌써 2억 병을 넘게 팔았다고 하는데요. 출시 101일 만에 1억 병을 넘게 팔았는데, 이후 59일 만에 추가로 1억 병을 팔았다고 하니 갈수록 인기가 높아지는 흐름입니다. 분위기가 이렇다면 도매상 입장에선 테라도 잘 팔리는데 굳이 출고가가 비싼 카스를 고집할 이유가 없어지는 겁니다.

/사진=이명근 기자 qwe123@

의아한 점은 한 가지 더 있습니다. 오비맥주는 이번 '가격 인하'를 내년 말까지 한시적으로 적용한다고 했습니다. 국산 맥주의 세금 부담을 덜어주는 '종량세'가 내년부터 시행되는데 맞춰 '국산 맥주 소비 진작을 위해' 가격을 내렸다는 게 오비맥주 측 설명인데요. 그렇다면 아예 가격을 내려버리면 될 텐데 왜 또 단서를 단 것일까요.

우선 이런 해석이 나옵니다. 도매상 입장에서 보면 이번 출고가 인하로 당장 창고에 쌓여 있는 카스 재고를 털어버려야 한다는 '압박감'이 생겼습니다. 비싸게 산 재고를 얼른 팔아버리고 다시 싸게 제품을 들여오는 게 나으니까요. 이후 내년 말쯤이면 도매상들은 다시 카스 가격이 오르기 전에 많이 사들여 창고에 쌓아둬야 하는 상황에 처합니다. 지난 3월 오비맥주가 가격 인상을 발표한 당시와 같은 이유에서입니다.

결국 오비맥주가 가격 조정을 '영업 전략'으로 활용하는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옵니다. 도매상들 입장에서는 오르락내리락하는 가격에 골치가 아파지니 이 역시 분통이 터질 만한 일입니다.

한 주류 업계 관계자는 이런 평을 내놓기도 했습니다. 오비맥주는 지난해 5145억원의 영업이익을 내며 사상 최대의 실적을 기록했는데요. 그만큼 견고한 시장을 가지고 있던 오비맥주가 스스로 가격을 올렸다 내렸다 하면서 마치 '위기'에 처한 듯한 모습을 연출하고 있다는 지적입니다. 당연히 의도한 건 아니겠지만 결과적으로는 그렇게 보이기도 합니다.

아울러 소비자 입장에서는 오비맥주가 가격을 조정하면서 내놓은 이유에 의심의 눈초리를 보낼 수밖에 없는 상황이 만들어지기도 했습니다. 가격 인상이 불가피하다더니 금세 내리고, 1년쯤 뒤에는 다시 올리겠다는 걸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어쨌든 경쟁사의 제품은 승승장구하고 있고, 오비맥주의 카스는 이를 방어하기 위해 다시 가격을 '정상화'했다는 게 업계의 대체적인 해석입니다. 과연 오비맥주의 이번 발표가 국내 맥주 업계에 어느 정도의 영향을 줄지 궁금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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