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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보영의 페북사람들]그리움만 쌓이네

  • 2020.09.30(수) 10:00

올해 한가위는

반가움보단 그리움만

쌓이는 명절이 될 것 같다.

큰 명절이 되면 으레

고향집 부모님을 찾아뵙고

형제자매 일가친척들과

즐거움을 나누기 마련인데

올해는 코로나19 탓에

모든 게 달라졌다.

이 기다림과 그리움을

70년간 간직한 섬이 있다.

며칠 뒤면 볼 수 있겠지라던

세월이 어느덧 훌쩍

그렇게 흐르고 흘렀다.

섬 아닌 섬 강화 교동도다.  

교동사랑회 임충식 대표는

주말을 맞아 교동도를 찾은

관광객을 안내하는 일을 한다.

"교동에는 한국전쟁 때

주로 황해도 연백에서

피난 오신 분들이 많아요.

교동이 강화군에 속해 있지만

한국전쟁 전까지만 해도

연백과 더 교류가 많았죠.

배를 타고 장터에 가는 등

왕래가 잦은 곳이었기에

전쟁이 터진 와중에도

잠깐 그러다 말겠지

2~3일 후면 돌아갈 수 있겠지

이 마음으로 잠시 머문 게

70년이란 시간이 흐른 거죠."

"시간이 많이 흐르다 보니

이젠 남아 있는 실향민들도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예요.

철조망 넘어 바로 지척인

북녘 고향 땅을 바라보면서

오늘도 끝이 보이지 않는

기다림의 시간을 보내고 있죠.

눈만 뜨면 눈앞에 펼쳐지는

고향 땅을 바라보시느라

교동을 떠나지 못하십니다.

내일이면 끝나겠지 생각하던

전쟁이 3년간 계속 이어졌고

그 포성이 멎은 지

어언 70년이 지났지만

그저 바라볼 수밖에 없는

고향 땅이 되어버린 거죠.

그럴 수 있는 것만으로도

교동을 떠날 수 없는

이유가 되었던 겁니다."

"저는 20년 전 교동향교의

석전제 소식을 전해 듣고

처음으로 교동도에 왔어요.

강화의 부속 섬으로만

막연히 알고 있었는데  

강화도와는 묘하게 다른

기질과 정서가 느껴졌죠.

외지인의 발길이 닿지 않은

고립되고 단절된 섬이었지만

사람 사는 냄새가

물씬 풍겨나는 곳이었죠.

당시 교동향교 전교였던

고 전표두 님의 제의로

'교동의 유사적' 안내집을 내며

점점 교동에 매료되어 갔죠.

2001년 출향인들과 뜻을 모아

교동을 사랑하는 이들의 모임인

'교동사랑회'를 발족했습니다."

"당시 교동 마을 곳곳에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은

유사적지가 방치되어 있었죠.

해상교통의 요충지이면서도

왕족의 유배지이기도 했던 

교동은 아름답고도 슬픈

그런 섬으로 제게 다가왔어요."

"교동은 서해의

버려진 작은 낙도였어요.

민통선 지역이다 보니

외지인의 출입이 통제됐죠.

굳이 이곳에 올 일도 없었죠.

강화군 주민들조차

교동도를 잘 알지 못하는

사람이 많았을 정도였어요.

그러다가 2014년

연륙교가 개통된 후에

낙후된 마을 모습이 알려졌고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오랜 과거로 떠나는듯한

여행지로 자리매김했죠. 

주말이면 관광객들의

발길이 끓이질 않았어요.

반면 관광 인프라는

거의 전무한 상황이었어요.

또 대룡시장만 부각되는 게

안타까워 2015년부터 주말에

안내소를 운영하게 되었어요."

"20년 전 교동은

외지인의 발길이 끓긴

강화에 딸린 작은 섬이었죠.

그저 소박하기만 했던 농부들

농사 외엔 아무것도

할 줄 몰랐던 사람들이었어요."

"교동사랑회를 이끌어온 지

어언 20년의 세월이 흘렀고

섬이던 교동엔 다리가 놓였죠.

이젠 섬이 아닌 섬이 되었어요.

경운기와 오토바이가 다니던

농로에는 자가용이 다니고

나루터에서 손을 흔들며

집 방향으로 가는 차를

얻어 타던 시대는 지났어요.

그래도 아직 섬 주민 대부분은

농사밖에 할 줄 아는 게 없죠.

상업화된 대룡시장 상인들이

점점 낯설게 느껴지기도 해요.

젠트리피케이션의 조짐이

대룡시장서도 일어나고 있죠."

"주말이면 1960~70년대

풍경을 보려는 이들이 넘쳐나요.

교동을 방문하는 손님들을 위해

새롭게 도로를 포장하고

방부목에 덧칠을 합니다.

농지를 메워 주차장을 만들고

농기구를 팔던 점포들이

새 단장과 함께 커피를 팔죠.

어느 날 갑자기 꽈배기가

교동의 특산물로 둔갑하고

정체를 알 수 없는 떡이

이북식으로 팔리기도 하죠.

교동의 정체성이 흔들리고

교동민국이 사라지는 듯해

개인적으론 안타깝습니다.

또 하나의 섬이

그렇게 사라져가는 거죠."

"교동섬은 실향민의 상처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어요.

고향 땅이 지척에 보이는

지석리 망향대에서는

매년 추석과 설 명절에

연백군민회에서 제를 지내요.

실향민들은 고향을 그리며

고향 땅이 잘 보이도록

이북 방향으로 집을 지었죠.

또 북녘땅이 보이도록

북쪽 방향으로 나란히 선

줄무덤도 많았다고 합니다.

죽어서도 고향을 보고 싶은

애틋한 마음이 담겨있어요.

하지만 이제 실향민 1세들은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예요.

오래된 기억들은 물론

명절의 풍경마저도

점점 희미해져 갑니다."

"섬은 섬일 때가

가장 아름답습니다.

섬에 다리가 놓이면

그때부터 섬의 가치를

잃어갈 수밖에 없어요.

'시간이 멈춰진 섬'이니

나름의 다양한 수식어로

교동을 이야기하지만

주민들은 훨씬 이전부터

'평화로운 섬'으로

교동을 알고 있었다고 해요. 

정작 '시간이 멈춰진 섬'으로

불리는 바로 그 순간

교동도의 시계가

돌아가기 시작했습니다.

'교동민국'이란 말이 있어요.

전쟁의 아픈 상처를

드러내는 말일 수도 있으나

교동인이 가진 특유의 정서

교동의 분명한 정체성을

잃어버려서는 안 된다는

숨은 뜻이 있는 거죠."

'2014년 10월 교동도로

마지막 배가 들어갔다.'

임 대표는 섬이던 교동에

다리가 생겨난 후에

점차 사라지고 잊혀가는

우리 문화를 발굴하고

또 보존 계승하기 위해

주민 10여 명과 뜻을 모아

교동향토문화연구소를 만들었다.

올해 한가위 풍경은

사뭇 달라질 듯하다.

때때로 불편하게만 생각하던

우리 명절의 의미를 되새기며

그 어느 명절보다

마음만은 더 풍성하게

서로를 생각하고 정을 나누는

따뜻한 날이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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