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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보영의 페북사람들]세상에 남기고픈 시 한편

  • 2020.11.23(월) 10:08

이용일 미래농업연구소장

후끈한 비닐하우스 안에선

방송팀이 한참 촬영 중이다.

이 소장은 하우스에서 자라는

시금치에 대해 조목조목

피디에게 설명한다.

"이 땅은 연작 피해가 심했죠.

같은 땅에 같은 작물을

계속 심으면 그렇게 됩니다.

비옥도가 떨어지면서

영양소가 결핍된 탓에

병해충이 심해지고

농작물 수확량도 떨어지죠.

그러다 보니 지금까지

여기에서 농사를 했던 분들이

모두 다 실패했습니다.

하우스를 관리하던 분이

시금치 싹들이 이렇게

풍성하고 많이 돋아난 건

처음 본다고 말해주셨어요.

그 이유가 뭘까요."

이 소장도 피디 출신이다.

2000년 로버트태권브이

제작을 끝으로 18년째

농업 연구에 매달리고 있다.

"옛 소련이 있던 시절에

우주농업에 관련된 논문을

우연히 읽게 되었어요.

화성을 지구의 환경처럼

만들기 위한 연구였죠.

당시 지렁이나 파리에 대해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는데

취미생활처럼 논문을 읽고

이런저런 실험을 하면서

점점 더 빠져들게 되었어요.

그러면서 본격적으로

그 길로 들어서게 되었고

농업연구 기초를 쌓게 되었죠.

2018년 100대 1의 경쟁을 뚫고

충남 세종시 창조혁신센터의

스타트기업으로 선정되었는데

15개 선정 기업 중에서

농업벤처기업으론 유일했어요."

"과학자들은 이미 20년 전

기후 변화를 예측했어요.

당시 미국 과학자들은

사막을 구경하고 싶다면

조만간 자기 집 문 앞에

사막이 펼쳐질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을 정도로

급격한 변화를 예측했죠.

남극이나 북극의 얼음이

녹던 시절도 아니었어요.

저는 그 말을 믿고

지금의 길을 걸어왔어요.

당시 아내에게 이 이야기를

자세하게 얘기했더니

정신이 이상해진 게 아니냐는

반응을 보였었죠.(웃음)

그러다 시간이 지나면서

당신 말이 맞는 것 같다면서

조금씩 믿어주기 시작했어요.

지금은 농업연구를 한다는

그 사실이 정말 다행이라면서

가장 많이 응원해 줍니다."

"가장 힘들었던 작업은

지렁이 연구였는데

12년이나 걸렸습니다.

제가 키우는 지렁이들은

약용으로 쓸 수 있습니다.

심혈관 질환을 일으키는

혈전을 녹이는 것은 물론

뇌나 신경세포가 고장 나면

재생하는 성분도 갖고 있죠.

그런 지렁이가 살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연구를 했죠.

국내에선 아직 약용 지렁이는

인정하지 않고 있어요.

폐기물을 먹이로 준 탓에

수출길이 막힌 이후로

식용 지렁이 허가가 안 나요.

미국의 경우만 하더라도

식품의약국(FDA)의 특허로

승인을 받은 연구만

140여 개나 됩니다.

그럼에도 제가 꾸준히

관심을 갖고 오랜 시간

연구하고 있는 이유는

지렁이가 모든 생명의

싹을 틔울 수 있는

초능력이 있기 때문입니다.

지구상에서 지렁이가

싹을 틔우지 못하는 씨앗은

죽은 씨앗밖에 없습니다."

"오늘 효소 지렁이 분변토

300kg을 수확했습니다.

발견된 화석으로 따져보면

지렁이가 출현한 시기가

무려 4-5억 년 전입니다.

식물과 함께 출현한 건데요.

화성을 초기의 지구처럼

만들 수 있는 생명체는

지렁이가 유일합니다.

지렁이 분변토를 이용해

농작물을 키울 수 있는

연구를 하고 있는데

그게 27종이나 됩니다.

미국에서 국제거래가격이

톤당 700만원에 달해요.

각종 농약으로 황폐해진

농촌 땅을 복원하는 게

미래농업연구소의 일입니다.

환경 복원기술을 활용해

키워낸 농작물을 먹으면

우리 건강에도 너무 좋잖아요.

18년 동안 잠을 아끼는

노력 끝에 여기까지 왔어요.

제가 생각하는 유기농은

인간에게 큰 도움이 됩니다.

가장 건강한 농작물인 거죠."

"충남 홍성군 친환경팀이

기존 오리나 우렁이농법을

대체할 수 있는 새로운 농법

연구를 부탁한 적이 있어요.

미꾸라지농법을 하기 위해

지나온 시간을 이야기하려니

벌써부터 울컥합니다.

친환경 미꾸라지농법에 대해

얘기했더니 주변 분들이

다 실패할 거라고 말했죠.

자신들도 다 해봤다고

그래서 저도 실패할 것이란

그런 논리였어요.

그런데 저는 무조건

성공할 거라고 말씀드렸고

실제로 성공했습니다.

그제야 어르신들이 말씀하셨죠.

다른 사람 말은 다 안 믿어도

자네 말은 믿을 수밖에 없다고.

그 어르신들은 대대로

농사를 짓던 집안이셨는데

외지인이 불쑥 들어와서

설친다고 생각하셨겠지요.

그동안의 마음고생은

헤아릴 수가 없습니다."

"친환경 미꾸라지농법에는

비밀이 숨겨져 있습니다.

바로 물벼룩 배양 기술이죠.

미꾸라지가 먹을 수 있도록

물벼룩 100억 마리를 배양해

논에 이식했어요.

먹이가 풍부하다 보니

작년에 배양한 미꾸라지들이

자연산 치어까지 낳으면서

크게 늘어나게 된 거죠.

화학비료를 사용하지 않고

벼와 함께 미꾸라지까지 키우는

일석이조의 농법입니다.

황폐해져가는 땅을 복원해

생태계를 살려나간다면

눈앞에 닥친 미래 식량문제도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고생을 많이 했더니

좋은 일도 많이 생겼습니다.

미꾸라지농법을 인정받아

충남 예산군 황새복원센터와

자연 습지를 복원하기로 했어요.

만평이나 되는 땅을

제가 원하는 대로 디자인해서

친환경으로 되살리는 거죠.

제 기술을 객관적으로

평가받을 수 있는 계기였죠.

황새는 무척 까다로워요.

유기농이 아니면 앉지도 않아요.

유기농 심사원들도

황새에 대해 잘 알고 있어요.

그래서 처음 왔을 땐

아예 제 말을 믿지 않았어요.

제 농장을 꼼꼼히 살피고서야

이렇게 환경을 복원한 곳은

처음 본다고 놀라워하셨어요.

18년간 연구한 결과를

외부에서 인정받는 것 같아

큰 보람을 느꼈습니다."

"18년간 연구만 하다 보니

아파트 두 채와 상가 하나를

모두 팔았습니다.

왜 사서 고생을 하냐는

분들도 많이 있습니다.

저는 우리 미래 세대에게

폐허로 남은 땅이 아닌

풍요롭고 아름다운 땅을

물려주고 싶습니다.

제 딸에게 줄 수 있는 건

저의 연구 결과뿐입니다.

어떤 것보다 더 귀합니다.

미래농업연구소를 줄이면

미농연이 되는데 거기엔

아름다운미래농업연구란

또 다른 뜻도 가지고 있죠."

이 소장은 자신을

글 못 쓰는 시인이라고 한다.

"제가 순수문학을 했어요.

18세 때 등단한 시인이죠.

박재삼 선생님이 제 스승인데

제가 마지막 제자입니다.

박재삼 선생님 위로는

여러분들이 잘 아시는

박목월 선생님이 계시죠.

제 머릿속에는 늘

순수문학이 자리하고 있어요.

스승님이 1998년 작고했는데

'나이 50살 넘어 글을 써라.

그게 너한테 좋겠구나'

이 말씀을 남겨주셨어요."

"이 세상에

아름다운 시 한편 남겨달라는

유언도 하셨어요.

제게 아름다운 시 한 편은

과연 무엇일까요.

저는 아름다운 시 한 편을

지금 쓰고 있다고 생각해요.

스승님은 저를 너무 잘 아셨죠.

처음 존재를 인정해 주신

그런 분이기도 합니다.

스승님께 용일의 시가

참 아름답구나라는

그런 칭찬을 듣고 싶어요."

세상은 보이는 것만으로

무게를 재려고 한다.

하지만 측정할 수는 없는

눈에 보이지 않는 가치가

사실 더 소중할 때가 많다.

찬바람이 제법 시린

초겨울로 접어들고 있다.

아직 남아 있는 늦가을

과연 내가 세상에 남기고픈

아름다운 시 한 편은 뭔지

고민해 보는 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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