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장품 업계에도 친환경 바람이 불고 있다. '필(必)환경' 움직임에 맞춰 재활용이 가능하거나 폐기물 발생을 줄인 화장품 용기가 속속 등장하고 있다. 다만 화장품의 경우 제품의 품질 보존과 마케팅 등의 이유로 용기를 바꾸는 게 쉽지 않다. 화장품 용기 개선을 위한 연구개발(R&D) 등 업계의 노력이 더욱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화장품 업체들이 친환경 용기 개발에 열을 올리고 있다. 토니모리는 최근 무라벨 비건 토너인 '원더 비건 라벨 세라마이드 모찌 진정 토너'를 출시했다. 유통 업계에선 생수 제품을 중심으로 무라벨 제품 경쟁이 치열하다. 하지만 화장품 업계에선 첫 무라벨 제품이다. 토니모리 측은 "분리수거도 한번에 가능하고 100% 재활용 가능한 용기로 만든 제품"이라고 설명했다.
LF의 프리미엄 비건 뷰티 브랜드 '아떼'는 비건 뷰티 철학을 알리는 '땡큐 아떼(Thank you, ATHE)' 캠페인을 펼치고 있다. 이번 캠페인을 통해 비건 인증 화장품의 가치뿐만 아니라 지속 가능한 포장재 사용 등 친환경 실천에 대한 공감대를 형성하겠다는 구상이다. 아떼는 팝업스토어를 통해 플라스틱 폐기물을 재활용한 테라조, 나무를 베지 않고 만든 코르크 등으로 만든 제품을 공개할 계획이다.
한국콜마는 지난해 11월 국내 최초로 화장품 플라스틱 튜브를 종이로 대체한 종이 튜브를 개발했다. 플라스틱 사용이 불가피한 캡을 제외하곤 본체를 모두 종이로 만든 친환경 용기다. 한국콜마에 따르면 화장품 용기를 종이 튜브로 교체해 캡을 제외한 본체 플라스틱 사용량을 기존 대비 80% 정도 줄일 수 있다. 최근에는 배의 껍질과 과심에서 추출한 식물 원료로 미세플라스틱을 대체한 친환경 제품을 만들고 있다.
아모레퍼시픽 역시 '포장재 폐기물 절감과 재활용성 향상'을 올해 연구과제로 선정, 친환경 포장재 기술 개발에 힘을 쏟고 있다. 현재 4곳의 협력사와 손잡고 △친환경 에코 펌프 제조 기술 △플라스틱 고정재를 대체하기 위한 종이 고정재 △폴리염화비닐(PVC) 소재를 대체할 non-PVC 대체 원단 등을 개발 중이다.
그동안 화장품 용기는 '예쁜 쓰레기'라는 지적을 받아왔다. 연간 6만톤 이상이 폐기물로 나오는 반면 재활용은 어렵기 때문이다. 화장품 용기는 금속, 유리, 플라스틱 등 여러 재질을 섞어 만드는 데다 병 속에 화장품 잔여물이 남아있어 재활용이 쉽지 않다. 게다가 화장품은 제품 광고를 위해 내용물보다 부피를 크게 과대포장하는 경우가 많다.
실제 재활용률도 저조하다. 환경부는 재활용의무생산자가 재활용이 쉬운 포장재를 사용하도록 유도하기 위해 '포장재 재질·구조 등급표시제'를 실시하고 있다. 환경부가 한국환경공단 자료를 분석한 결과, 지난 4월 15일 기준 국내 출고·수입된 화장품 7983개 중 64% 이상의 제품이 '재활용 어려움' 등급을 받았다. '재활용 최우수' 등급을 받은 화장품 제품은 4개에 불과하다.
하지만 화장품 업체들은 제품 용기를 쉽게 바꿀 수 없는 실정이다. 플라스틱 용기를 대체할 수 있는 '기술력'이 부족한 탓이다. 화장품은 빛과 공기 등으로부터 밀폐 보존해야 하는 등 품질을 유지가 중요하다. 종이 용기 등의 제품을 생산하기 위해선 내구성, 빛 차단 등을 갖춘 기술을 갖춰야 한다. 또 포장재 재질을 바꾸려면 기존의 공정 과정을 완전히 바꿔야 하는 등 많은 시간과 비용이 든다.
마케팅 차원에서도 화장품 용기는 중요하다. 뷰티 제품인 만큼 브랜드의 이미지 역시 중요하다. 특히 화장품 업계에선 인기 제품을 포장까지 비슷하게 모방해 출시하는 '짝퉁 화장품' 문제가 이어지고 있다. 무라벨 용기가 늘면 비슷한 제품이 난립하는 문제가 더욱 심각해질 수 있다.
그럼에도 화장품 업계에선 용기의 재질 개선과 재활용 대책을 마련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전 세계적으로 소비 패러다임이 친환경을 넘어 '필수로 환경을 생각해야 한다'는 필환경으로 바뀌고 있어서다. 환경에 대한 관심이 늘면서 친환경 화장품 제품에 대한 수요도 증가하고 있는 추세다.
특히 최근 MZ세대를 중심으로 화장품 용기에 대한 비판이 거세지고 있다. 화장품 용기 개선을 촉구하기 위해 환경단체 등이 모인 '화장품 어택 시민행동(화장품 어택)'이 대표적이다. 이 단체는 지난 2월 2주 동안 전국에서 수거한 화장품 공병 약 8000개를 화장품 회사로 보내는 캠페인을 벌였다. 화장품 업체가 처음부터 재활용이 쉬운 제품을 내놔야 한다는 의미에서다. 지난 6월에도 2차 화장품 어택을 진행했다.
이에 따라 화장품 업계의 용기 고민은 이어질 전망이다. 화장품 업계 관계자는 "MZ세대 사이에서 가격이 비싸더라도 자신의 신념과 가치관에 따라 소비하는 미닝아웃(Meaning Out)이 트렌드로 자리 잡고 있다"며 "화장품 업계도 화장품 용기 재질을 개선하고 재활용 대책 마련하는 친환경 마케팅이 중요해지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