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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용진의 첫 대국민 사과…정작 '알맹이'는 빠졌다

  • 2026.05.26(화) 16:21

5분 사과 후 퇴장…구체적 재발방지책 없어
직원 3명 휴대폰 제출 거부…고의성 입증 실패
매출 급감·콜옵션 리스크 속 비판 여론 여전

그래픽=비즈워치

정용진 신세계그룹 회장이 스타벅스 코리아(SCK컴퍼니)의 '탱크데이' 논란에 대해 직접 대국민 사과에 나섰다. 신세계그룹 회장이 사과 기자회견을 연 건 그룹 역사상 처음이다. 하지만 사과문 어디에도 구체적인 재발 방지 대책은 담기지 않아 '알맹이가 없었다'는 지적이 나온다.

'모든 책임 저에게'라지만

정용진 회장은 26일 오전 9시 서울 강남구 조선팰리스에서 약 5분간 직접 사과문을 낭독했다. 짙은 남색 정장 차림으로 단상에 오른 정 회장은 사과문을 낭독하는 과정에서 세 차례 허리를 깊이 숙였다. 정 회장이 공개 석상에서 대국민 사과를 한 것은 2024년 3월 회장 취임 후 이번이 처음이다. 신세계그룹 회장이 사과 기자회견을 연 것 역시 그룹 역사에 없던 일이다.

정 회장은 "이번 스타벅스 코리아의 부적절한 마케팅으로 인해 많은 분께서 깊은 아픔과 분노를 느끼셨다는 사실을 매우 무겁게 받아들이고 있다"며 사태의 심각성을 인정했다. 그는 또 "5·18 민주화운동 유가족과 박종철 열사 유가족 그리고 광주 시민과 국민 여러분께 진심으로 머리 숙여 사죄드린다"며 피해 당사자들을 일일이 호명하기도 했다.

정용진 신세계그룹 회장이 26일 오전 서울 강남구 조선팰리스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스타벅스 코리아의 '탱크데이' 마케팅 논란에 대해 사과하고 있다. / 사진=이명근 기자 qwe123@

눈에 띄는 건 현장 직원 보호를 당부하는 데 상당한 시간을 할애했다는 점이다. 정 회장은 "전국 매장에서 묵묵히 일하고 있는 파트너들과 현장 직원들은 성실한 직장인일 뿐"이라며 "책임은 조직과 저를 포함한 경영진에게 있다"고 선을 그었다. 자신의 과거 정치적 발언이 논란을 키웠다는 지적을 의식한 듯 비난의 화살을 자신에게 돌리려는 모습이었다.

하지만 정작 그 책임을 어떻게 질 것인지에 대한 구체적인 설명은 없었다. 중요한 재발 방지 대책에 대해서도 추상적인 언급을 하는 수준에 그쳤다. 정 회장은 "내부 시스템과 리스크 관리 체계를 근본부터 다시 점검하겠다"고 했지만 구체적으로 어떤 시스템을 어떻게 점검할 것인지는 밝히지 않았다. 또 "사회적 책임에 대한 기준도 더욱 높이겠다"는 다짐 역시 마찬가지였다.

제대로 조사도 못했다

정 회장은 약 5분 남짓한 시간 동안 사과문을 낭독한 후 질의응답 없이 곧바로 퇴장했다. 이번 사태에 대한 실질적인 진상조사 결과 발표는 정 회장이 아닌 전상진 신세계그룹 경영 총괄 부사장이 맡았다. 회장은 사과문만 읽고 빠져나가고 구체적 해명은 부사장에게 맡겼다는 지적이 나오는 대목이다.

전 부사장이 발표한 진상조사 결과 역시 구체성이 떨어지기는 마찬가지였다. 신세계그룹은 지난 일주일간 실무진 5명을 포함해 총 15명을 조사했지만 핵심 결론은 '고의성을 입증할 명확한 근거를 찾지 못했다'는 것이었다. 문제는 이 결론마저 제대로 된 조사 끝에 나온 게 아니라는 점이다.

정용진 신세계그룹 회장이 26일 오전 서울 강남구 조선팰리스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스타벅스 코리아의 '탱크데이' 마케팅 논란에 대해 사과하고 있다. / 사진=이명근 기자 qwe123@

이번 '탱크데이' 네이밍을 제안한 직원 등 커머스팀 팀원 3명이 휴대폰 제출을 거부하면서 조사는 처음부터 한계에 부딪혔다. 이 직원들은 '개인 사생활 보호'를 이유로 들며 휴대폰 제출을 거부했다. 5명 중 2명만 휴대폰을 제출한 상황에서 사전 모의 여부를 제대로 파악하기는 어려울 수밖에 없었다. 설상가상으로 사내 메신저 대화 기록은 1주일만 서버에 저장되는 시스템이어서 최초 기획 단계에서 이들이 어떤 대화를 나눴는지 확인조차 할 수 없었다.

양종환 신세계그룹 감사팀장(상무)은 "5명 전체에 대한 휴대폰 포렌식을 통해 교차 검증을 하고자 했지만 2명밖에 확인하지 못해 전체적인 사전 모의 여부를 다 밝힐 수 없었다"고 설명했다. 전 부사장도 "회사 차원의 조사에 법적·절차적 한계가 제약 요건으로 작용했다"며 조사의 한계를 인정했다.

휴대폰 제출에 동의한 다른 2명의 휴대폰에서는 '일상적인 사적 대화'만 확인됐다는 것이 그룹의 설명이다. 하지만 3명의 휴대폰을 확인하지 못한 상황에서 '고의성이 없었다'고 단정하기는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신세계그룹은 이 부분에 대한 판단을 경찰 수사에 맡기기로 했다.

'어떻게'는 어디로

게다가 신세계그룹은 이번 자체 조사를 통해 시스템 부실의 문제를 확인하고도 재발 방지 대책을 제대로 수립하지 못했다.

신세계그룹 조사에 따르면 이번 스타벅스 탱크데이 마케팅은 '팀장→담당→본부장→대표이사' 4단계 결재 절차를 거쳤고 7명이 합의 과정에 참여했지만 그 과정에서 단 한 명도 탱크데이 문구에 대해 지적하지 않았다. 일부 합의자는 마케팅 디자인 시안이 담긴 메일의 첨부 파일조차 열지 않고 관행적으로 승인한 것으로 확인됐다. 논란을 키운 '책상에 탁' 문구의 경우 담당 임원이나 경영진에 대한 보고도 없이 추가됐다.

정용진 스타벅

법무팀 검증 프로세스도 '마케팅의 즉시성'을 우선시하는 과정에서 작동하지 않았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담당하는 CSR팀의 합의 절차도 이번에는 배제됐다. 전 부사장은 "실무자의 과실을 넘어 스타벅스 코리아 내부의 사회적·역사적 민감성 부재를 드러냈다"며 "마케팅 검증 및 리스크 관리체계에 심각한 결함이 있다는 사실도 함께 확인했다"고 시인했다.

하지만 이 같은 임원진의 발표 역시 이 시스템을 어떻게 개선할 것인지에 대한 방안을 제시하지 못했다. 전 부사장은 "시스템적으로 어떻게 개선해야 할지 부분을 지금 논의하고 있다"며 "추후 발표를 통해 알릴 것"이라고 밝혔다. 결국 정 회장의 사과나 진상조사 결과 발표 모두 구체적인 재발 방지 대책은 내놓지 못한 셈이다.

그룹 역사상 최대 위기

정 회장이 직접 나설 수밖에 없었던 건 그만큼 이번 사태가 그룹에게 큰 위기라고 판단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지난 19일 탱크데이 논란이 벌어진 직후 이재명 대통령까지 직접 나서 비판하면서 사태가 걷잡을 수 없이 커진 상황이다. 신세계그룹은 논란 당일 손정현 스타벅스 코리아 대표를 전격 해임하는 등 강경하게 대응했지만 여론은 쉽게 진정되지 않았다.

온라인에서는 스타벅스 불매운동도 확산 중이다. '탈벅(스타벅스 탈퇴)' 인증을 하거나 스타벅스 선불카드를 환불하는 소비자도 늘고 있다. 매출 타격도 현실화되고 있다. 스타벅스는 카카오톡 교환권 선물 순위에서 7년 만에 처음으로 1위를 다른 브랜드에 내주고 5위권 밖으로 밀린 상태다.

전 부사장 역시 이날 브리핑에서 "굉장히 많은 매출 감소가 있다"고 인정하기도 했다. 스타벅스 코리아는 신세계그룹의 핵심 수익원인 만큼 불매운동 장기화 시 그룹 전체의 현금 유동성에 타격을 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한 스타벅스 매장에 사과문이 붙어있다. / 사진=정혜인 기자 hij@

시장에서는 스타벅스 본사에서 이마트의 스타벅스 사업권을 회수할 가능성도 거론되기 시작했다. 스타벅스 본사는 지난 2021년 이마트 측 귀책에 따른 계약 해지 시 이마트가 보유한 스타벅스 코리아 지분 전량을 다시 사들이는 콜옵션을 확보한 바 있다. 다만 전 부사장은 "귀책 사유에 따른 의무 불이행이 있을 경우 콜옵션을 행사할 수 있다고 계약서에 명시돼 있는 건 사실"이라면서도 "현재는 이에 해당하지 않는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며 밝혔다.

이날 대국민 사과에 대한 여론도 여전히 갈리는 중이다. 일부 소비자들 사이에서는 "직원들에게 책임을 떠넘기는 내용일 뿐 아무런 내용이 없다"는 거센 비판이 나오고 있다. 반면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은 "진정성이 있다고 본다"고 평가했다. 

신세계그룹은 후속 조치를 이어간다는 계획이다. 전 부사장은 "향후 경찰 조사에서 5·18 민주화운동을 폄훼하려는 고의성 여부가 입증될 경우 해당 임직원을 즉시 징계 조치하고 민형사상 책임까지 묻겠다"고 강조했다. 정 회장 역시 "오늘의 사과를 끝이 아닌 시작으로 삼겠다"며 "말이 아닌 행동으로 실질적인 변화를 만들어내겠다"고 약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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