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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쌍한 기택 씨 답답한 근혜 씨

  • 2013.04.07(일) 17:40

금융산업이라는 게 참 어렵다. 요즘처럼 글로벌 위기가 장기전으로 치닫는 상황에선 더욱 그렇다. 나라 전체적으론 금융의 역할을 다해야 하고, 산업 측면에서 스스로 돈도 벌어야 한다. 금융산업의 이런 이중적 속성은 권력자를 유혹에 빠뜨리는 경우가 많다. 조금만 눈을 감으면 내가 얻고자 하는 것을 단숨에 얻을 것 같은 그런 달콤함이다.


박근혜 정부의 첫 금융권 인사인 홍기택 산은금융지주회사 회장 내정을 놓고 말이 많다. 전문가네 아니네, 조직을 운영해 본 경험이 있네 없네, 낙하산이네 아니네…. 이런 논란이 생기는 것은 홍 내정자의 히스토리 때문이다. 냉정하게 본다면, 그런 것도 있고 아닌 측면도 있다. 한 사람을 평가하면서 과거의 어록과 연구결과를 입맛대로만 본다면 세상 아래 이런 논란에서 자유로울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박근혜 대통령(좌)과 홍기택 산은금융지주회장 내정자(우)]

그래서 국민이 선택한 대통령의 철학이 담긴 공약을 얼마나 잘 수행할 것인가가 유일한 기준인지도 모른다. 이런 기준이라면 선택의 기준은 유일하게 충성도뿐이다. 소위 박근혜 사람이냐는 얘기다. 그 사람이 과거에 어떤 철학을 가지고 어떤 주장을 했는지는 아무 의미가 없을 수도 있다는 조금은 과격한 논리다.


비록 형식적이나마 그를 추천한 신제윤 금융위원장은 “박근혜 정부와 철학이 다른 사람은 같이 갈 수 없다”며 이명박 정부 사람들의 자진 퇴임을 압박했지만, 그것 또한 크게 의미를 둘 만한 사안은 아니다. 관점은 바뀔 수도 있고, 박 대통령이 띄우는 ‘창조 경제’로도, 역사적으론 ‘흑묘백묘론’으로도 볼 수 있다. 현재로선 신 위원장의 발언은 새 사람이 들어 설 자리를 만드는데 이바지할 뿐이다.


권력자의 관점에서 보면 답답한 노릇이다. 내가 제시한 철학과 공약으로 국민으로부터 선택을 받았다. 이를 잘 수행하며 충성을 다하겠다는 사람을 앉히겠다는데, 무슨 기준이 더 필요한가? 대한민국 300명의 국회의원은 자신의 정치적 철학과 소신을 지켜왔는가? 그것을 잘 지킨 우리 정치인들이 철새로 욕을 먹었던가? 권력자에게 이런 소신은 제일 덕목인가? 이런 소신이 강했던 고(故) 노무현 대통령은 그에 맞는 평가를 받고 있는가?


이런 측면에서 홍기택 내정자를 평가하는 잣대도 조금은 달라져야 한다는데 동의한다. 과거 홍기택 내정자의 소신이 담긴 연구 자료들을 보면, 그가 금융산업을 바라보는 관점은 전임 이명박 정부가 주창했던 철학과 더 가까워 보인다. 금융과 산업이라는 어려운 함수 관계에서 산업적 관점을 더 강조해온 소신은 뚜렷했다.


그렇다면 현재 시점에서 박 대통령이 홍 내정자를 선택한 이유가 있어야 한다. 이명박 정부의 산업은행 민영화 정책을 뒤집을 사람이 홍기택 씨라면 그에 걸맞은 설명이 있어야 한다는 얘기다. 마침 7일 오후 홍 내정자는 자청해서 기자간담회를 열었다. “언론 보도에 오해가 많아 (해명이 아닌) 설명을 하겠다”며 마이크를 잡았다.


“과거(2007년 겨울) 금산 분리에 관련한 제 견해는 금산 분리가 아주 필요치 않다는 것이 아니고, 10% 이상을 보유하더라도 의결권이 4%에 불과해 보유의 실효성이 적고, 사모펀드 등을 통해 투자 가능한 외국계 자본과 역차별 문제가 있다는 것을 지적하고 개선 가능성을 모색한 것이다. 이것이 일부 받아들여져 이명박 정부 때 9%로 올렸는데도 실효성(산업자본의 은행 소유 또는 경영을 하고 싶은 유인)이 없더라. 그래서 앞으로도 (금산 분리 완화를 할) 상당한 시간이 필요하다는 게 지금의 생각이다.”


설명이건 해명이건 홍 내정자의 발언은 문제를 더 꼬이게 하는 측면이 있다. 보통 금산 분리 완화론자들은 산업자본의 욕망을 채워줄 수 있을 때까지 규제를 완화해야 한다는 논리를 펴는 게 보통이다. 그래야 우리 금융산업도 삼성처럼 글로벌 은행이 나온다는 취지다. 그런데, 해봤는데 실효성이 없어 이젠 접었다는 게 홍 내정자의 결론이다. 박근혜 정부의 생각에 뭔가 꿰맞추고자 하는 인상이 짙다. 비슷한 논리는 이어진다.

“산은 민영화 추진 당시엔 경제 및 시장 여건이 민영화 추진에 문제가 없는 것으로 보였는데, 그 후 세계 경제가 나빠지면서 민영화 여건이 악화되고 정책금융의 필요성이 확대된 상황이어서 재점검이 필요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면서 정책금융기관 개편과 산은 민영화 관련 사항은 소관부처와 협의해 추진하겠다며 멀찍이 발을 뺐다.


결국, 홍 내정자는 박 대통령이 인선 배경으로 꼽는 ‘전문가’라는 조건에도 흠집을 내고 말았다. 글로벌 금융위기는 전 세계 금융인, 금융학자들에게도 예상치 못한 충격을 준 것을 부인할 수 없다. 그러나 금산 분리와 산은 민영화 등 우리나라에선 이미 수십 년간 토론과 논란이었던 사안에 대해 불과 5~6년 전의 분석 결과를 이처럼 쉽게 뒤집는다면 그것이야말로 '금융 전문가'라는 수식어를 쓰기엔 뭔가 수상한 것은 아닐까?

오히려 당시엔 이명박 씨가 대통령이 될 것 같으니, 그에 맞춘 논리를 폈다고 하는 것이 조금은 솔직하지 않을까? 이날 홍 내정자의 설명과 해명에도 몇 가지 품었던 의문은 쉽게 가시지 않는다. 여러 논란을 다 접어두고 현재 그가 부여받은 직을 열과 성을 다해 수행할 의지가 있는지도 확인하기 어려웠다. “내정 발표 후 그동안 기자들의 전화와 방문에 응대하지 못해 미안하다”고 간담회 내내 사과했지만, 진심을 보여주기엔 뭔가 부족했다.


이런저런 인연으로 박근혜 캠프에 발을 들여놓았다가 발탁을 받고, 그저 앞으로의 명함에 좋은 스펙 하나 더 얹었다는 마음가짐이라면 좋은 인사라고 할 수 없다. 이런 과정은 이미 얼마 되지도 않은 박근혜 정부의 인사에서 반복적으로 노출되고 있다. 국무총리를 비롯해 중도탈락한 장관이 몇 명이며, 이에 대한 청와대의 17초 사과 논란, 그리고 이어진 우리 금융산업 전반에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는 산은금융지주회사 회장 인선을 보면서 걱정이 되는 이유다.


홍 내정자가 여론의 뭇매와 산업은행 노조의 반발, 그리고 며칠간의 취임 연기 등을 그저 거쳐야 할 연례행사쯤으로 생각한다면 참으로 불쌍한 것이다. 박 대통령의 측근으로서 노조에 떡고물 몇 개 던져주면서 이번 상황을 모면해 볼 생각이라면 더욱 그렇다. 박 대통령도 현재의 인사 참사 논란이 안타깝고 답답하겠지만, 지켜보는 국민은 또 어떻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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