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지를 더 사랑한 종금업, 동양그룹과 함께 사라진다

  • 2013.10.06(일) 08:30

동양그룹이 난리다. 그룹의 오너는 주요 계열사의 생사를 법원의 심판에 맡겼다. 그룹의 자금 창구 역할을 한 동양증권 직원들은 이제 와 자기들도 피해자라며 울분을 토한다. 한 직원은 남편과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꼬맹이 아들•딸을 남기고 세상을 등졌다. 그룹 현재현 회장에게 유서를 남기고….

지금까지 드러난 정황만으로 동양증권을 금융회사의 탈을 쓴 부도덕한 집단으로 치부할 의사는 없다. 금융상품을 팔면서 발생한 문제는 앞으로 시시비비가 가려질 것이다. 그러나 동양증권에서도 확인된 우리 금융시장의 현실은 그것대로 짚고 가야 한다.

 

동양그룹은 재계 서열 30위권이다. 우리나라 대표 그룹의 계열 금융회사도 오너의 사금고,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우리 금융시스템의 수준이 딱 여기까지라는 점이 안타깝다.

“동양 회장님, 개인 고객들에게 정말 이럴 수는 없는 거 아닌가요? 이런 일을 만들면 안 되는 거 아닌가요?” 자살한 제주지점 고 모(여•42) 씨의 싸늘한 시신과 함께 동양증권의 평판도 제주 앞바다로 떨어졌다. 어렵게 다시 건져내도 크게 달라질 것은 없어 보인다. 평판은 그래서 무섭다.

동양증권은 그룹의 다른 계열사들과는 조금 다른 길을 걸어왔다. 금융업을 그룹의 중요한 축으로 생각한 결과라고 볼 수도 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는 ‘재벌은 왜 금융회사를 갖고 싶어 하는가’라는 질문을 다시 던지게 하는 것이기에 씁쓸하다.


◇ 오너의 사금고 멍에 쓴 동양증권



동양그룹이 증권업에 진출은 것은 1984년. 동양시멘트가 당시 일국증권을 인수해 이듬해 6월 동양증권으로 새 출발 했다. 동양그룹은 투자금융업도 했다. 1973년 설립돼 1987년 대우그룹으로 넘어간 대우투자금융을 1990년에 인수했다. 이름은 동양투자금융으로 했다.

당시 투자금융업은 CMA(어음관리계좌) 업무가 주다. 우리나라 기업금융의 뿌리다. 기업의 각종 어음(CP)을 할인해 사들이고, 투자자들에게 중개하면서 수수료를 받는다. 기업은 은행에서 대출을 받기도 하지만, 이 어음시장도 상당히 많이 활용했다. 1970년대 사금융 양성화 조치로 음지에서 양지로 나온 금융업이 투자금융업이다.

동양투자금융은 1996년 7월 종합금융회사에 관한 법률에 따라 업종을 전환하고 동양종합금융으로 간판을 바꿔 달았다. 종금업은 투금의 기본 업무에다 외국에서 돈을 빌릴 수 있는 국제금융업을 얹어 준 것이다. 그런데 1997년 말 우리는 외환위기를 맞았다. 이때 무분별하게 외화차입을 일으켜 영업했던 대기업 계열 종금사들이 줄줄이 무너졌다. LG종금, 현대울산종금 등등.

당시 동양종금은 종금업 전환이 늦은 탓에 운 좋게도 외화 문제를 비켜갔다. 위기는 기회라는 말처럼 현대울산종합금융, 리젠트종합금융(옛 경수투자금융)을 잇달아 인수하며 덩치를 키웠다. 2001년 12월, 이렇게 커진 동양현대종합금융을 동양증권과 합병해 지금에 이르렀다.


이렇게 동양증권은 뼛속 깊숙이 투자금융•종합금융업의 피가 흐른다. 그것이 지금까지 동양증권의 기업금융을 키워 온 힘이기도 하다. 경쟁 증권사가 영업점에서 주식 브로커리지만을 위해 고객을 맞을 때, 그들은 기업어음도 팔았다. 주식에 투자할 여력이 있는 부자들에게 기업어음으로 보너스까지 주며 친밀도를 높였다.


◇ 독이 든 성배, 종금에서 출발한 기업금융 강점


이런 동양증권만의 강점은 오너에겐 뿌리치기 힘든 유혹이기도 하다. 사업하다 돈이 모자라면 언제든 동양증권 고객들에게 기업어음 팔아 돈을 융통할 수 있다. 고객들이 동양증권에 보내준 신뢰가 오너의 뒷배를 든든히 하는 버팀목이 되는 순간이다.

 


일부 문제 사업을 정리해야 하지만, 동양증권을 통해 돈을 며칠만 돌려쓰면 아깝게 팔지 않아도 될 것 같은 욕심이 밀려든다. 구차하게 은행에 손을 벌리지 않아도 된다는 환상에도 빠져든다. 그렇게 오너의 오판은 늘어나고 위기는 눈덩이처럼 커졌다.

현 회장은 최근 언론에 보낸 이메일에서 ‘회사를 살리기 위해 가족들의 생활비 통장까지 털어 기업어음을 샀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주요 계열사의 법정관리 직전 그룹 부회장인 부인은 동양증권 계좌에서 6억 원을 미리 빼고, 직후엔 대여금고에서 큰 가방 서너 개 분량의 돈뭉치(또는 금괴)를 꺼낸 간 것으로 전해졌다. 현 회장의 말처럼 일부 기업어음을 샀는지는 몰라도 진정성은 심각하게 훼손됐다.


현재 우리나라에선 투자금융업과 종합금융업이 사실상 자취를 감췄다. 이들 회사는 1997년 외환위기의 주범으로 몰리며 대부분 문을 닫았다. 증권사를 함께 했던 동양그룹과 메리츠금융그룹이 합병을 통해 증권사에서 라이선스를 보유한 채 영업을 해 왔다. 우리금융지주회사가 사들인 금호종금이 있으나 이도 사실상 이름만 있을 뿐이다.

아이러니하게도 동양종금의 전신인 대우종금을 소유했던 대우도 무너졌다. 이제 그 피를 받은 동양증권을 비롯한 동양그룹도 해체되는 분위기다. 사금융 양성화 조치로 음지에서 양지로 나온 어음•사채업은 이렇게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 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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