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해성사로 드러난 동양의 사기 CP 발행 증거들

  • 2013.10.17(목) 14:54

동양네트웍스 김철 대표 “CP 받는 모험을 할 수 없었다”
이승국 前 사장, 현 회장 참석 이사회서 “증권 고객 피해 우려”

▲ 17일 국회 정무위의 금융위원회 국정감사장에 앉아 고개를 떨구고 있는 현재현 회장.

 

동양그룹 계열사들의 기업어음(CP) 사기 발행 여부가 그룹 내부자들의 고백으로 심증을 굳혀가고 있다. 그룹 내 신•구 세력(현재현 회장 측근 vs 이혜경 부회장 측근 또는 제조업 계열 vs 금융 계열)의 권력 투쟁으로 구조조정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는 얘기도 흘러나오고 있어 이런 고백이 더욱 주목받고 있다.

지난 15일 동양그룹의 숨은 실세로 알려진 김철 동양네트웍스 대표가 장문의 해명서를 내놨다. 언론의 여러 의혹을 부인하고 나선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 관심을 끈 것은 해명과 함께 써내려 간 ‘이번 사태에 대한 의견’ 대목이다. 일종의 고해성사 같다.

◇ 김철 대표 “그룹 자금 사정 수년 전부터 이미 최악”

여기서 김철 대표는 “이번 사태는 수년 전부터 예고됐다. 그룹의 모든 자금 담당자들은 이미 수년 전부터 각오하고 있었을 것이다. 수년 동안 정말 피를 말리는 하루하루를 넘겨온 걸 지켜봤다. 수년간 거의 매달 부도를 염려하고 있었다”고 적었다. 그룹 주요 계열사의 자금 사정이 이미 수년 전부터 최악의 상황이었다는 회고다.

이처럼 자금 사정이 좋지 않은 상황에서 금융회사인 동양증권을 통해 시장성 자금을 늘린 것은 김철 대표의 말처럼 자산 매각 등 구조조정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불가피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애초부터 감시가 심한 은행권을 피해 제2금융권을 주로 활용했다고 볼 수도 있다.

일종의 ‘미필적 고의’다. 이를 김 대표도 어느 정도 인정하고 있다.

“2011년 하반기 동양캐피탈은 …… 6000억 원에 달하는 CP와 각종 부채로 연말을 넘기기 힘든 상황이었다.”
“애초 각 사의 요구는 CP를 매입해 달라는 것이었지만, 대여금으로 엄청난 금액의 CP를 받는 모험을 할 수 없었다. 동양네트웍스가 그룹의 주요 자산을 사 모은 것이 아니라, 자금이 필요한 계열사에 CP 대신 자산을 인수해주는 방식을 택할 수밖에 없었다.”
“CP 발행의 당사자인 동양레저, 동양인터내셔널, ㈜동양의 대표들은 그분들이 취임하기 훨씬 전부터 이미 회사가 수천억 원의 CP 문제를 안고 있었다. CP를 산 계열사들도 마찬가지다. 언제 CP를 산지도 모른다. 합병법인(동양네트웍스)에 이미 사둔 CP가 200여억 원 가까이 있었다.”


▲ 17일 국회 정무위의 금융위원회 국정감사에서 답변하고 이는 현재현 회장.

◇ 동양네트웍스 대표도 위험해서 살 수 없었던 CP

이 해명들은 동양그룹이 오래전부터 CP를 활용해 그룹의 자금을 맞춰 왔다는 사실을 방증하고 있다. 김 대표의 “CP는 모험이어서 대신 자산을 인수했다”는 말이 사실이라면, 그룹의 계열사 사장들은 대부분 배임의 혐의를 안게 된다. 회사 대표로서 회사에 손해를 끼칠 수 있는 CP를 수시로 받아줬기 때문이다.

이 문제는 다시 동양증권이 일반 고객에게 팔거나 특정금전신탁에 편입한 CP로 연결된다. 그룹의 핵심 계열사인 동양네트웍스 대표로서 감수할 수 없을 정도로 위험했던 CP를 동양증권은 일반 고객에게 이런 위험을 제대로 알렸을 가능성은 매우 적은 셈이다.

◇ 동양증권 1년 전 이사회서 이미 “증권 고객 피해” 인지·공유

17일 열린 국회 정무위원회의 금융위원회 국정감사에서도 새로운 증거가 제시됐다. 지난해 10월 18일 동양증권 이사회. 이 이사회에서 동양증권은 ㈜동양 관련 부동산 자산 1013억 원어치를 사주기로 했다. 이날 이사회에는 현재현 회장도 동양증권의 이사 자격으로 참석했다.

김영주(민주당) 의원이 제시한 자료를 보면, 당시 이승국 동양증권 사장은 “㈜동양의 재무적 어려움으로 문제가 발생하면 ㈜동양 관련 당사(동양증권) 금융상품(CP 등) 고객들의 피해가 예상된다”고 말했다. “고객의 피해가 생기면 (동양증권의) 평판 하락으로 측정 불가능할 정도의 피해가 예상되므로 회사와 고객, 주주들을 보호하는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고도 했다.
 
▲ 17일 국회 정무위원회의 금융위원회 국정감사에서 답변하고 있는 현재현(사진 왼쪽) 동양그룹 회장과 김철(사진 오른쪽) 동양네트웍스 대표.
 
이사회 안건이 ‘자산 매입’이고 그룹 회장이 참석한 이사회라면 ‘㈜동양의 재무적 어려움을 해결해야 한다’는 취지의 발언일 수도 있다. 현 회장도 ‘그룹이 어렵다’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 그리고 이날 동양증권 이사회는 ㈜동양의 자산을 사주기로 결정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위험 고지’다. 그룹의 최고 의사결정권자에게 금융상품을 산 고객과 관련한 위험 고지가 분명히 이뤄졌다. 그룹의 총수는 이렇게라도 해서 그룹을 살려야 한다고 생각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런 위험을 고객들에게 제대로 알렸다면 자금조달이 제대로 되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다. 그룹의 자금난을 스스로 까발렸는데 자금 조달이 순탄할 수는 없다.

선택의 여지가 없었는지는 몰라도 CP의 불완전(사기) 판매는 모두 인지했다고 봐야 할 듯하다. 이날 국회 국정감사에서 신제윤 금융위원장은 김영환(민주당) 의원의 동양그룹 계열사의 사기성 CP 발행 여부에 관한 질의에 “검찰이 수사하고는 있으나, 심증은 갑니다”라고 답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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