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③김승유의 서울•외환은행 주워 먹기

  • 2014.05.13(화) 09:49

27년간 두 명의 CEO만 있었던 하나은행
이단아 전환 은행? 스피드로 은행계 접수
[우리은행 민영화와 솔로몬의 지혜]③

김승유 회장(현 하나고등학교 이사장). 그의 별칭은 ‘최고 경영자가 직업인 사람’이다. 1997년 3월 하나은행장에 올라 2005년 2월까지 8년간 행장을 했다. 그해 12월부터 2012년 2월까지 6년여는 하나금융지주의 대표로 일했다. 15년간 CEO 생활을 했으니 그럴 만도 하다.

하나금융의 이런 전통 아닌 전통은 사실 전임자 때부터 그랬다. 전임 CEO 윤병철 회장도 무려 12년간 최고 경영책임자를 지냈다. 1985년 하나은행의 전신인 한국투자금융 사장에 오른 윤 회장은 1991년부터 1997년까지 하나은행장을 역임했다. 그 바통을 이어받은 것이 김승유 회장이다.

윤 회장은 올해 2월 발간한 회고록(금융은 사람이다, 까치)에서 ‘김승유 당시 전무에게 경영권을 넘겨주기 위해 2년 동안 준비했다’고 밝혔다. 김승유 전무가 당시 이인자긴 했지만, 당시엔 알려진 것이 많지 않았다. 워낙 윤 회장이 장기집권을 하는 상황이어서 이인자의 모습은 잘 보이질 않았다.


김 회장이 경영권을 넘겨받은 시점은 좋은 시절이 아니었다. 한국투자금융 때부터 정신적 지주였던 윤병철 회장의 그림자는 절대 짧지 않았다. 게다가 그가 은행장을 맡은 1997년 3월엔 여기저기서 외환위기의 전조가 울리고 있었던 시기다. 우리나라는 그해 12월 국제통화기금(IMF)에 항복 선언을 했다.

나라 전체가 나락으로 빠져들었으니 아무리 준비된 은행장 김승유라도 뾰족한 수는 많지 않다. 쓰나미에 이리저리 떠밀리는 상황에선 체력을 아끼고 안정적으로 숨 쉴 수 있도록 하는 게 상책이다. 그러나 김 회장에겐 그 기간이 그리 길지 않았다. 윤 회장이 한국투자금융의 은행 전환을 이끌며 토대를 닦았다면 김 회장은 그 양분으로 꽃을 피울 준비가 충분했던 셈이다.

운도 따랐다. 시중은행이지만 서울권역에 치우친 하나은행에 외환위기는 그야말로 위기가 아닌 기회였다. 부실은행을 정리해야 했던 정부로선 그나마 사정이 나은 은행들에 손을 벌렸다. 경제적으로 어려운 시기에 부실은행을 떠안는다는 것은 쉬운 결정이 아니다. 그러나 김 회장은 정부로부터 충청은행을 불하받고, 같은 처지에 놓인 보람은행까지 도모했다.


외환위기가 터지고 1년여 만에 모든 것이 일사천리로 끝났다. 1999년부턴 3개 은행을 합친 합병은행으로 새 출발했다. 이때까지도 김승유 행장의 진가를 제대로 확인하진 못했다. 충청과 보람은행 모두 사이즈가 크지 않은 데다, 구조조정 대상 은행을 떠안은 측면이 강했다. 은행으로 전환한 투자금융이 본격적으로 은행을 집어삼키기 시작했지만, 그 의미를 알기까진 시간이 꽤 걸렸다.

온 나라가 월드컵 4강에 신화에 취해있을 때 하나은행은 역시 정부의 구조조정 대상 은행이었던 서울은행마저 인수•합병했다. 충청•보람은행과 합병한 지 3년을 갓 넘긴 시점이다. 모두 구조조정 은행이다. 외환위기를 내수 진작용 신용카드로 틀어막았지만, 그 부작용으로 다시 위기가 커질 무렵 김승유 행장은 과감히 M&A로 성장의 모멘텀을 삼는 수완을 발휘했다.

NICE신용평가 이혁준 평가전문위원은 “하나•서울은행의 합병은 수익성과 생산 효율성 측면에서 시너지 창출은 크지 않았다”면서도 “두 은행은 합병을 통해 시장 지위를 충분히 높였다”고 평가한다. 당시 자산 40조 원인 하나은행이 20조 원의 서울은행을 싸게 사들여 얹는 구조다. 마치 부실채권(NPL)을 싸게 사들인 후 나름의 구조조정을 거쳐 보기 좋은 떡을 만드는 것과 비슷하다.


이슈 메이커로 빠르게 치고 올라온 김승유 행장. 2003년 3월 한국판 엔론 사태라는 SK글로벌(현 SK네트웍스) 분식회계 사건과 이어진 SK그룹 구조조정은 그의 능력을 보여줄 잔칫상과도 같았다. 서울은행마저 삼킨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은행 자체의 현안도 산더미일 때 김승유 행장은 엄청난 규모인 SK그룹 구조조정을 지휘하게 됐다.

당시 은행권에선 하나은행을 투자금융의 은행 전환 혜택(?)을 받은 신출내기로 보는 시각이 있었다. 김승유 행장에 대해서도 여전히 투자금융회사 사장쯤으로 보는 경향이 강했다. 주류 은행과는 다른 그 무엇으로 보고 보이는 상황에서, 쟁쟁한 대형 시중은행들을 설득하며 끌고 가는 구조조정이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분식 규모만 1조 5000억 원, 구조조정촉진법 적용 금융회사의 국내 채권 금액이 6조 6000억 원에 이르는 엄청난 규모의 구조조정이다. 이 대형 구조조정을 이끌어 그룹을 정상화시키자, 김 행장을 얕잡아보던 시선도 쑥 들어갔다. 우여곡절 없는 구조조정이 어디 있겠느냐마는, 결과는 더없이 좋았다.


기업금융에 강했던 투자금융의 피가 흐르는 김승유 행장에게 기업을 상대하는 게임은 오히려 쉬웠는지도 모른다. 윤병철 회장은 회고록에서 한국투자금융 시절 김승유 상무를 이렇게 적었다. “그는 아이디어가 많았다. 당시로선 새로운 개념이었던 CMA(어음관리계좌)라든지 어카운트매니저(AM:기업담당자) 제도를 도입해 정착하는데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

한국의 엔론 사태로 비유하는 SK글로벌 분식회계 사건은 그렇게 김승유를 스타 경영인으로 만들었다. 그러나 이것도 시작에 불과했다. 김 회장은 다시 국내 은행의 마지막 매물로 평가하던 외환은행을 론스타로부터 사들이는 데 성공했다. 2010년이다. 의지는 대단했다. 들인 돈도 돈이거니와 양 은행의 합병 시기를 5년이나 늦추는 결단을 내리면서까지 공을 들였다.

이 합병의 효과는 아직 평가하기 이르다. 그러나 기대치는 국내 은행의 다른 합병 사례보다 높다. 중요한 것은 숨돌린 틈도 없이 추진한 M&A를 통해 금융그룹 기준으로 2~3위권의 시장 지위를 이미 확실히 했다는 점이다. 구조조정으로 나온 매물을 거의 돈 들이지 않고 턱턱 사더니 이번엔 외환은행을 잽싸게 낚아채는 모습도 보였다.


1991년 7월에 창립한 하나은행의 역사는 길지 않다. 그러나 우리나라 은행 합병의 역사 대부분이 녹아 있다. 하나은행은 설립 때 만든 심벌마크를 아직 한 번도 바꾸지 않았다. 윤병철 회장이 1996년에 낸 ‘하나가 없으면 둘도 없다’는 책 제목처럼, 창립 정신을 지키고 있는지도 모른다.

네 개의 은행을 합친 10여 년 동안 오롯이 ‘하나’를 외치고 있는 힘은 ‘김승유’라는 걸출한 이름 석 자의 영향이 적지 않다. 무엇보다 ‘단 한 사람’의 오랜 지휘였기에 가능하지 않았을까?

[글 싣는 순서]
①불완전변태 한빛은행의 탄생
②장사꾼 故 김정태의 ‘국민+주택’ 합병
③김승유의 서울•외환은행 주워 먹기
④라응찬의 세력 바둑 조흥과 LG카드
⑤한국의 CA 꿈꾸는 농협의 민간 체험
⑥M&A로 만들어진 한국 신 Big4 금융
⑦재미없어진 마지막 승부 우리은행 매각
⑧금산분리 규제에 덧씌워진 오너리스크
⑨虛虛實實 희망수량 매각 방식의 승자는?
⑩경영권 매각을 배제한 어떤 것도 꼼수다<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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