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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이트너의 교훈과 '금융위기의 역설'

  • 2015.07.22(수) 15:06

'스트레스 테스트' 위기 상황에서 역발상 강조
정부의 가치와 공무원의 역할에 대해서도 역설

한국 경제가 또 한 번 고비에 섰다. 그동안 한국 경제를 지탱해오던 수출 전선에 적신호가 켜진 데다, 메르스 사태로 소비마저 움츠러들면서 위기감이 높아지고 있다. 성장 엔진이 식어가면서 저성장이 고착화할 수 있다는 비관론도 팽배하다.

일부에선 위기설도 불거지고 있다. 특히 1100조 원에 달하는 가계부채는 한국 경제의 최대 뇌관이다. 미국이 본격적으로 금리 인상에 나서면 곧바로 위기의 도화선이 될 수도 있다. 중국의 경기 부진과 그렉시트 우려까지 대외 여건도 온통 지뢰밭이다.

◇ 살아 있는 금융위기 교과서

 


미국 오바마 행정부의 초대 재무장관을 지낸 티모시 가이트너 전 장관이 쓴 ‘스트레스 테스트’는 일상화된 위기의 시대에 서 있는 한국 경제를 위한 살아있는 교과서다.

 

가이트너는 2008년 서브프라임 사태로 대공황 이후 최악의 위기를 맞았던 미국 경제를 구한 장본인이다. 숱한 논란 가운데서도 대규모 구제금융을 집행하고, 경기회복 과정을 진두지휘했다. 그런 면에서 ‘스트레스 테스트’는 금융위기 탈출의 경제역사서라고 할 수 있다.

가이트너가 던지는 가장 큰 교훈은 역발상이다. 가이트너는 심각한 위기 상황에선 직관적인 대응보다는 전혀 다른 접근법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이른바 금융위기의 역설이다.

가령 미국의 금융위기는 탐욕에 눈먼 월가의 무모한 위험 추구 그리고 이에 따른 과다한 부채와 신용거품이 터지면서 발생했다. 그렇다면 해법은 분명하다. 고위험 투자를 금지하고, 과도한 부채를 줄여야 한다. 당시 미국 정부 역시 천문학적인 재정 적자에 허덕이고 있었던 만큼 재정 긴축도 필수불가결한 선택이었다.

◇ 금융위기의 역설

반면 가이트너의 선택은 정반대였다. 오히려 민간 신용을 더 확대하고, 정부 차입을 더 늘렸다. ‘헬리콥터 벤’으로 불렸던 벤 버냉키 연방준비제도 전 의장은 말 그대로 하늘에서 돈을 쏟아부었다.

 

특히 금융위기의 주범으로 꼽히던 월가의 문제아들을 구한 경위는 한 편의 드라마 같았다. 당연히 성난 국민은 이해하지 못했다. 세금을 투입해 미국 경제에 불을 지른 탐욕스러운 금융 자본을 살리자는 주장은 도저히 용납할 수 없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가이트너가 옳았다. 가이트너 덕분에 리먼 브러더스에 이어 파산의 위기를 넘나들던 AIG와 4대 금융 폭탄으로 꼽히던 씨티그룹, 뱅크오브아메리카(BOA), 프레디맥, 페니메이 등이 간신히 살아남았고, 금융위기는 거기서 멈췄다.

 

가이트너에게 금융시스템의 안정은 그만큼 절체절명의 과제였다. 금융시스템이 무너지면 제2의 대공황이 온다고 확신했다. 그러다 보니 월스트리트의 대변자라는 낙인을 감수하면서도 월가 구하기에 뛰어들었고, 덕분에 미국 경제 아니 세계 경제는 파국을 면할 수 있었다.

가이트너의 메시지는 분명하다. 심각한 위기에선 평상시와는 다른 접근법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심각한 위기 상황에선 평상시 적절하고, 공정하다고 느끼는 접근법이 독이 될 수 있으며, 적절하고 공정한 결과를 위해선 정반대 선택이 필요할 수도 있다는 얘기다.

가이트너의 선택은 한국 경제에도 그대로 적용할 수 있다. 위기 국면에선 섣부른 구조조정이 오히려 위기를 더 부추길 수도 있는 만큼 금리를 더 내리고 돈을 더 풀어 시스템을 지키면서 일단 위기에서 벗어나는 게 중요하다는 메시지를 던진다.

◇ 정부의 가치와 공무원의 역할

가이트너는 정부의 가치와 공무원의 역할에 대해서도 역설했다. 그는 미국의 금융위기가 정부의 가치와 능력 있는 공무원을 재평가하는 계기가 되길 희망했다. 정부와 중앙은행만이 위기를 감당할 힘을 가지고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가이트너는 정부의 강력한 법체계와 감독시스템 그리고 이 시스템을 제대로 운영할 수 있는 재능 있는 인재를 발굴하지 않으면 일상화된 위기에 대처하고, 이에 따른 손실을 최소화할 방법이 사실상 없다고 단언한다.

가이트너의 메시지는 청와대가 만기친람으로 인사권을 휘두르면서 공무원을 불신하고 있는 박근혜 정부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공무원을 믿지 않은 대가는 최근 메르스 사태 대응 과정에서 여실히 드러났다.

아시아 외환위기 직후 일본이 국제통화기금(IMF)과 비슷한 아시아통화기금(AMF) 설립을 추진했다는 사실도 흥미롭다. 당시 미국은 일본에 대한 다른 아시아 국가들의 이중적인 감정과 대출 과정에서 공정성 문제를 이유로 반대 견해를 밝혔다. 여기엔 아시아 국가들에 대한 영향력이 약화할 수 있다는 우려도 작용했다.

 

결국 아시아통화기금 설립은 무산으로 돌아갔다. 반면 최근 중국이 주도하는 아시아 인프라 투자은행(AIIB)이 세를 확대하면서 미국의 입장에선 여우를 피하려다 범을 만난 셈이 됐다.

번역자인 홍영만 자산관리공사 사장은 “제2의 대공황이 될 수도 있었던 2008년 금융위기를 성공적으로 극복한 경험을 담은 스트레스 테스트는 매우 가치 있는 역사적인 기록”이라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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