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분일초가 아까운 출근길. 직장이 있는 여의도역 한 정거장 전이다. A 씨는 스마트폰을 꺼내 S커피전문점 앱에 들어가 사이렌 오더 기능을 이용한다. 앱을 이용해 미리 직장 인근 매장에 커피를 주문한다. 매장에 들어가 따로 주문이나 결제 혹은 기다릴 필요 없이 바로 커피를 들고나온다.
#A 씨는 이번엔 스마트폰으로 은행 계좌를 열어 본다. 어젯밤에 미리 신청해 놓은 대출이 잘 들어왔는지 확인한다. 갑자기 오늘 아침 급하게 1000만 원을 빌려야 하는데 은행이 문을 열려면 9시 반이나 돼야 하고, 또 실제 대출을 받으려면 며칠이 걸릴지 모른다. 그래서 어젯밤에 평소 자주 이용하는 인터넷 전문은행에 미리 대출 신청을 해놨다. SNS 기반의 은행이다. SNS의 내 정보를 활용(신용평가)해도 되느냐는 문자가 와서 동의를 눌렀다. 밤이었지만 대출승인은 10분 안에 끝났다. 그제야 편히 잠이 들었다.

인터넷 전문은행 시대엔 커피를 주문하듯 손쉽게 대출을 받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커피 주문 방식과 크게 다르지 않다. 개인들은 더는 은행을 찾지 않는다. 굳이 은행 점포에 가지 않아도 24시간 손쉽게 은행을 이용할 방법들이 생겼다. 국내 은행들도 스마트폰이나 인터넷 환경에 친숙한 이런 고객들을 앞으로 생길 인터넷 전문은행에 뺏기지 않으려면 그에 못지않은 서비스를 내놔야 한다.
인터넷 전문은행을 낙관하는 쪽에선 인터넷 전문은행이 생기면 혁신적인 서비스로 기존 은행들에 신선한 바람을 일으키고 변화를 이끌 것으로 예상한다. 메기론이다. 덧붙여 해외 사례를 보면 메기를 뛰어넘어 기존 은행을 위협하거나 시장을 잠식할 황소개구리가 될 가능성도 조심스레 나오고 있다.
◇ 인터넷 은행, 황소개구리 될까
최근 KB금융지주경영연구소가 보고서에서 인용한 미국의 밀레니얼 세대 1만 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밀레니얼 디스럽션 인덱스(Millennial Disruption Index)'는 놀라운 결과를 보여줬다. 미국 청년층(밀레니얼세대)의 핀테크 기업과 은행에 대한 인식조사로 밀레니얼 세대의 33%는 향후 5년 내 은행이 필요 없을 것으로 예상했고, 절반은 은행보다 IT 기업이 제공하는 금융서비스를 더 신뢰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 자료: KB금융지주 경영연구소 |
골드만삭스는 또 은행들이 대출을 통해 얻는 연간 수익의 7%인 약 110억 달러가 향후 5~10년 내 온라인 대출업체들에 흡수될 가능성이 큰 것으로 전망했다. 실제 미국 최대 P2P 대출 업체인 랜딩클럽은 올해 상반기에만 약 35억 달러의 대출을 중개하며 영향력을 높이고 있다.
이들 통계는 기존 은행에 대한 시장 잠식이 빠르게 진행될 것이라는 전망을 뒷받침한다. 일각에선 특정산업을 구성하는 일부를 별개의 사업으로 분리하는 '언번들링(Unbundling)' 가능성을 제기하기도 한다. 은행업에선 기존의 대금결제, 신용평가, 해외송금 기능을 핀테크 업체들이 대체하는 현상을 뜻한다.
황석규 교보증권 은행 담당 애널리스트는 "해외에서는 이미 이런 현상이 발생하고 있다"며 "국내에서도 중장기적으로 ICT 기업들이 주도하는 인터넷 전문은행이 활성화되면 기존 은행의 기능을 대체할 여지는 있다"고 분석했다.
물론 미국에선 서브프라임사태 이후 은행 문턱이 더욱 높아진 점 등이 영향을 미쳤다는 점을 고려해 국내에서 단기간에 은행산업에 영향을 미치긴 쉽지 않을 것이라는 분석이 더 힘을 얻는 것도 사실이다.
◇ 메기가 될 가능성은?
국내에선 스마트뱅킹 이용률이 외국보다 높고 인터넷 환경 등에 친숙한 점을 생각하면 인터넷 전문은행의 경쟁력과 가능성을 엿볼 수 있다.
우리은행 한 관계자는 "최근 3개월 은행 방문을 조사해보니 CD를 포함한 비대면 거래가 90%로 외국보다 현저히 높다"며 "인터넷 전문은행에서 이러한 점을 잘 활용하면 오히려 외국보다 유리할 수 있다"고 말했다. 국내 은행권에 대한 잠식까지는 아니더라도 경쟁구도가 형성되면서 기존 은행에도 변화를 일으키는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내다봤다.
게다가 인터넷 전문은행 사업자 신청을 하게 될 KT-우리은행 컨소시엄과 인터파크-기업은행 컨소시엄 등 대부분이 중금리 대출시장을 겨냥하고 있다. 국내에선 우리은행의 위비대출을 통해 모바일을 통한 중금리대출의 가능성을 일부 확인했다. 7등급까지의 중·저등급 신용자를 대상으로 했지만, 실제 70% 이상은 1~5등급까지의 우량신용등급의 소비자들이 이용했다. 소액대출이어서 편리하고 신속하게 이용할 수 있는 점이 성공 요인으로 꼽힌다.
이는 인터넷 전문은행의 중금리 대출이 반드시 중등급 신용을 가진 고객뿐 아니라 좋은 신용등급을 가진 사람들도 관심을 가질 수 있다는 얘기다. 물론 편리성이나 가격 등 무언가의 메리트가 있을 것이고, 이 경우 기존 은행 고객의 점진적인 이탈 가능성도 예상할 수 있는 대목이다.

▲ 투자은행 골드만삭스는 기존 사업모델에서 벗어나 온라인을 활용한 소매금융 사업에 진출한다. 지난 8월엔 'GE캐피탈뱅크'의 온라인 예금 플랫폼을 인수했다. IT 기업의 사고방식, 문화를 배우기 위해 다양한 노력을 하고 있는데, 경영진과 직원이 IT 기업 특유의 후드티 차림으로 출근해 IT 기업과의 문화 장벽을 해소하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 (자료 : KB금융지주 경영연구소) |
◇ 새로운 신용평가툴, 틈새시장 공략에 대응해야
인터넷 전문은행에 참여하는 ICT 기업과 유통회사가 가진 고객 데이터를 활용해 기존 은행과 다른 신용평가 모델을 개발하고 틈새시장 등을 공략할 수도 있다. 그동안 중금리 대출 상품 등 틈새시장 공략에 소극적이었던 은행들도 적극적으로 상품을 내놓거나 이들 고객의 이탈을 막기 위한 경쟁력 있는 상품으로 대응해야 한다.
은행 한 관계자는 "외국 사례를 보면 인터넷 은행이 초기 고객 확보를 위해 1인당 225달러를 쓸 정도로 공격적으로 영업한다"며 "대출금리는 기존 은행보다 낮고 수신금리는 높게 주는 식인데 기존 은행들도 경쟁 모델을 개발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런 경쟁 과정에서 다양한 신용평가 툴이 만들어지고, 혁신적인 상품들이 나오면 은행산업의 발전으로 이어지게 된다. 금융소비자 입장에선 선택의 폭이 넓어지고, 보다 경쟁력 있는 금융상품을 제공받게 된다. 물론 이것은 어디까지나 낙관적으로 봤을 때의 얘기다.
무엇보다 핀테크 기업에 대한 정부 차원의 육성 등 정치·제도적인 뒷받침이 꾸준히 이어졌을 됐을 때 가능한 일이다. 그렇지 않고 정권이 바뀌고 정책 방향이 틀어지거나 금융당국 혹은 금융소비자가 혁신성을 받아들일 준비가 돼 있지 않고, 또 ICT 기업이 철저한 리스크관리 모델이나 신용평가 모델 없이 무작정 이 시장에 뛰어든다면 반대로 참혹한 결과를 맞을 수도 있다는 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