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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은행원이 최부총리께 드리는 편지

  • 2015.10.12(월) 17:34

"4시에 문 닫는 나라 있습니다"

 

#오늘도 오전 8시까지 출근합니다. 출근하면 가장 먼저 하는 일은 시재(돈)를 담당 직원에게서 받는 겁니다. 보통 1인당 500만 원에서 1000만 원 정도 받는데요. 이 돈으로 오늘 하루 영업(?)을 시작합니다. 하루 동안 쓸 종이통장과 플라스틱 카드, 수표 등도 미리 준비해놓고요. 아! 영업점 내에 ATM기에 돈을 채워 넣는 것도 제 일입니다. 30분이 훌쩍 지났네요.

 

지점장님과 함께 회의나 간단한 티타임을 하면서 파이팅을 외치기도 합니다. 이제 자리로 돌아와 고객님을 맞을 준비를 해야겠죠. 셔터가 올라가네요.

#오후 4시입니다. 셔터가 내려갑니다. 오후 3시 50분에 오신 고객님 업무처리가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옆 창구도 마찬가지네요. 4시 반이 돼서야 고객님들은 모두 퇴장(?) 하셨습니다. 물론 그 시간에도 쪽문을 이용해 들어오는 분들이 계십니다. 기업체 고객님이십니다.

 


#이제 본격적으로 마감해야 하는데요. 각종 서류가 쌓여 있습니다. 예금 가입, 신용카드 장표(가입 서류)들을 정리하고 결재를 받습니다. 아침에 제가 받았던 돈에서 남은 돈과 전산상의 돈을 맞춰야 합니다. 시재 정산이라고 하죠. 여기서 10원이라도 모자르면 그땐 난리가 납니다. 처음부터 다시 계산해서 그 10원을 찾아내야 하니까요. 초짜 시절엔 이거 하다 집에 못 가기도 합니다. 이게 끝나면 전체 지점 직원들의 합과 ATM 잔액까지 맞춰야 합니다.

 


#큰 탈이 없다면 이 작업에 보통 2시간 정도 걸립니다. 시계를 보니 오후 6시 반이네요. 여기서 끝이냐고요? 오늘 방문한 고객님께 감사전화를 걸어야 합니다. 관리 고객에겐 만기 안내도 해야 하고, 수익률 관리 등 안내 전화도 해야겠지요? 아마 6시 넘은 시간에 이런 전화 받으신 분들 많으실 겁니다. "고객니임~! 0월 0일 예금 만기일입니당. 잊지 마시고, 찾아가세용. 꼭 다시 예치해주시고용~"

 


최경환 부총리님~ 예상하셨듯이 저는 은행 영업점에서 일하는 말단 은행원입니다. 어제 최 부총리님께서 페루에 가셔서 "오후 4시에 문 닫는 은행이 어디 있느냐"고 말씀하셨죠.

있습니다! 부총리님. 미쿡에서는 말이죠. 주마다, 요일마다 차이가 있지만 보통 4~5시에 문을 닫습니다. 씨티은행은요. 뉴욕의 경우 월요일엔 9시부터 5시까지, 화·수·목엔 9시부터 4시까지, 금요일엔 9시부터 5시까지 문을 엽니다. 샌프란시스코는 10시부터 5시까지고요. 오히려 어떤 은행은 2~3시에 문 닫는 은행도 있다고 들었습니다.

 


이렇게까지는 생각하고 싶진 않지만 설마, 은행 영업점이 4시에 문을 닫으면 은행원도 퇴근하는 것으로 생각하고 계셨던 것은 아니지요? 오늘 아침에 다른 직원들이 그러더군요. 그렇게 알 수도 있을 거라고요.

부총리님의 말 한 마디 한 마디에 참 많은 분이 주목하고 있습니다. 박근혜 대통령님이 우간다보다 못한 은행 평가를 언급하면서 금융 개혁을 주문하셨으니, 최 부총리님도 그런 연장 선상에서 말씀하셨겠지요.

 


하지만 만약 영업시간을 6시로 연장하면 은행원은 오후 8시에나 마감을 끝내겠지요. 그럼 늘어나는 시간만큼 생산성은 더 떨어지기 마련입니다. 가뜩이나 요즘 인터넷뱅킹, 스마트뱅킹이 확산하면서 비대면 거래 비중이 90%에 달하는 데 말이죠.

금융노조가 너무 세서 못한다고요? 대부분 은행이 소수이긴 하지만 거점 지역별로 탄력적인 시간으로 운영하는 점포가 있습니다. 국민은행을 보면요. 애프터 뱅크(After Bank)라는 이름으로 강남중앙, 야탑역, 우면동 등 오피스 밀집지역을 중심으로 5곳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12시부터 오후 7시까지 영업하는데요.

2012년 처음 시행할 때엔 더 늦은 시간까지도 영업했다고 하더군요. 그런데 생각만큼 고객들이 찾지를 않았다고 합니다. 그래서 절충점을 찾은 시간이 오후 7시고요.


인천공항에 있는 은행 영업점을 보세요. 그만큼 수요가 있으니까 24시간 운영하는 겁니다. 은행 입장에서도 수요가 있어야 할 수 있다는 거겠지요. 백이면 백 명의 고객의 수요를 다 맞추긴 현실적으로 어려우니까요. 자칫하면 직원은 직원대로 고생하고, 비용은 비용대로 드는 애물단지 점포가 될 수도 있다는 겁니다.

요즘 변화가 일고 있습니다. 디지털, 모바일 트렌드, 그리고 인터넷 전문은행까지 얘기되면서 은행 영업점에도 변화는 불가피해 보이긴 합니다.

SC은행이 신세계와 손잡고 백화점 운영시간(오후 8시까지, 주말근무까지)과 똑같이 운영하는 팝업 데스크를 냈고, 좀 더 광범위한 업무를 커버하는 스마트뱅크유닛도 준비하고 있지 않습니까.

 


10년 전의 일이라고 합니다. 은행 한 채널 담당자가 벤치마킹을 위해 유럽을 갔었는데요. 은행 한 점포 문에 요일별로 영업시간이 다 다르게 적혀 있는 것이 이상해 물었습니다. 일주일에 하루 정도는 평소 은행에 오기 힘든 직장인을 위해 늦게까지 문을 열고, 또 은행원도 하루 정도는 관공서 등 개인적인 업무 처리를 위해 일찍 끝난다고 하더라고요.

이런 유연한 전략은 필요할 테지요. 그런 점에선 우리도 부족했던 것은 사실입니다. 좀 더 적극적인 움직임도 필요해 보입니다. 그렇다고 4시에 문 닫는다고, 전 세계에 그런 은행이 어디 있느냐고, 너무 일찍 닫는다고 나무라는 건 좀……. 아실만한 최 부총리님 금융개혁, 하긴 해야겠죠. 하지만 이런 식으로 개혁될지는 모르겠습니다. 억울한 마음에 몇 자 적어 봅니다. (이 기사는 다양한 취재의 내용을 가상의 편지 형식으로 재구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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