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식적인 자리에서 항상 차분함을 유지하던 임종룡 금융위원장이 6일 기자간담회에선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전혀' 이해가 되지 않는다면서 답답함을 표시했다. 특히 금융 공기업들이 금융노조와 산별 교섭 테이블에서 빠진 것이 금융위원회의 사주에 따른 것이며, 이는 불법적 행위인 만큼 금융위원장은 사퇴해야 한다는 노조의 주장에 대해선 한껏 목소리를 높였다.
임 위원장은 특히 금융노조가 정부 개입설을 들고나오는 것이 본질을 호도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성과주의를 왜 도입해야 하고, 과연 필요한 것이냐 하는 논의와 고민이 '본질'이라는 주장이다.
금융위는 금융권에 만연한 '고임금 저생산성'의 구조를 바꿔보자는 취지에서 성과주의를 추진하고 있다. 단순히 임금을 깎자는 게 아니라, 일을 열심히 하는 사람에겐 인센티브를 주고 안 하는 사람에겐 페널티를 주자는 게 임 위원장의 설명이다. 임금뿐 아니라 교육훈련, 영업방식 개선 등 종합적인 개선을 이루겠다는 의지다. 임 위원장은 이런 '내용'을 본질이라고 보는 듯하다.
정말 그럴까? 임 위원장이 강조하는 성과주의의 내용과 취지는 현실에 적용되기 전엔 하나의 '구호'일 뿐이다. '도입'이라는 과정을 거쳐야 성과주의가 빛을 볼 수 있다. 공무원의 책상에선 성과주의 자체가 본질일지 몰라도, 현장에선 오히려 성과주의의 '도입'이 본질일 수 있다.
게다가 성과주의 자체의 내용과 취지는 이미 국민도, 노조도, 경영진도 모두 알고 있다. 정부는 이제 성과주의 연내 도입을 목표로 이를 추진하는 과정에 있으며, 노조와의 협상이 이제 막 시작하는 참이다. 타이밍 측면에서 봐도 성과주의의 적용과 도입이 '핵심'인 셈이다. 인제 와서 다시 공청회 식의 형식적이고 원론적인 논의를 하자는 것은 아닐 테니 말이다.
금융노조가 지적하는 것은 바로 이런 '도입' 절차의 문제다. 금융공기업들이 갑자기 협상 테이블에서 떠났고, 이는 정부의 개입에서 비롯했다는 '의혹'이 금융권 안팎에서 제기됐다. 임 위원장은 이런 의혹을 노조의 여론몰이용 선전쯤으로 여기는 듯하지만, 사실 이는 성과주의 도입 과정에선 중요한 문제다.
법적으로도 현실적으로도 그렇다. 공기업들의 의도처럼 산별노조가 아닌 각 노조와 협의하는 것은 법적으로 가능하다. 그러나 각 노조의 자발적인 산별 노조 탈퇴 결정이 전제돼야 한다. 만약 사용자 측이 탈퇴를 강요하면 부당노동행위나 불법행위가 될 가능성이 크다. 여기에 정부가 개입했는지 안 했는지를 따지는 것은 법적으로 의미가 있다.
현실적으로도 금융공기업들의 선택이 오히려 성과주의 도입을 지체시킬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실제 금융 공기업 노조는 산별 노조 협상 테이블에서 빠져나오지 않을 기세다. 7일 예정됐던 금융권의 노사 교섭의 첫 만남은 결국 이 문제 탓에 불발했다. 앞으로도 금융공기업 탈퇴 문제를 놓고 양측의 기 싸움만 계속될 것이 뻔하다.
임 위원장은 이날 '금융 공기업은 우리가 주인'이라는 표현을 썼다. 민간 기업엔 관여하지 않고, 공기업에만 관여하고 있다는 설명을 하면서다. 어쩌면 이런 생각이 이번 논란의 '본질'일지 모르겠다. 오너(주인)의 입장에선 연봉체계 개선을 강하게 밀어붙일 수 있다는 생각 말이다. 정부와 공기업의 관계를 오너와 계열사 정도로 생각하는 발상은 차치하더라도, 오너라면 노사협의 과정을 무시해도 된다는 판단이라면 비판받아야 마땅하다.
성과주의라는 구호를 정해놓고 이를 무작정 연내에 도입하겠다는 집착을 버려야 한다. 성과주의 연봉제 문제를 협상 테이블에도 올리지 않겠다는 노조의 고집도 비판받아야 하지만,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식으로 대응하는 것 역시 보는 이의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