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적완화는 구제금융'…부실 책임자가 없다

  • 2016.05.02(월) 09:30

오랜 경고등 무시하다 급하다며 한은 나서라는 정부
경제 살리는 양적완화? 개별 지원 구제금융? 논란도

정부가 갑자기 구조조정에 드라이브를 걸고 있다. 총선 전까지 말만 앞세우더니 이젠 하루라도 늦었다간 큰일이 날 것처럼 호들갑을 떨고 있다.

 

물론 기업 구조조정은 우리 경제에 있어 가장 다급한 현안 가운데 하나다. 하지만 그동안 오랜 경고등을 무시하면서 잠자코있던 정부가 갑자기 구조조정 이슈를 몰아부치면서 진정성마저 의심받고 있다.

 

특히 양적완화를 비롯한 불명확한 용어로 본질을 흐리거나 상황을 교묘히 왜곡하면서 책임을 회피하는 모습이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겉으로는 전면에 나서는 자세지만, 뒤로는 서로 책임을 떠넘기는 '보신주의'가 여전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 이주열 한은 총재, 3일 만에 입장 번복(?)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는 2일 간부회의에서 "기업 구조조정 과정에서 한은의 역할을 적극 수행하겠다"고 강조했다. 기업 구조조정 과정에서 한국은행이 총대를 매달라는 정부의 주문을 받아들이는 모양새다.

정부는 그동안 한국은행의 발권력을 동원해 기업 구조조정을 지원해야 한다는 견해를 내놨다. 반면 한은은 개별 사안에 중앙은행이 나서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으며, 독립성을 훼손할 여지도 있다면서 손사래를 쳤다.

 

윤면식 한은 통화정책 담당 부총재보는 지난달 29일 "중앙은행이 발권력을 동원하려면 국민적 합의와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돼야 한다"면서 전제조건을 제시하기도 했다. 

반면 이 총재의 이날 발언은 3일 전 윤 부총재보의 견해와는 완전히 상반된다. 한국은행이 책임 회피에 급급하다는 비판 여론에다 박근혜 대통령에 이어 유일호 경제부총리와 임종룡 금융위원장이 전방위적으로 압박을 가면서 입장을 번복한 것으로 풀이된다. 관련기사 ☞ 낙하산 앉히더니…국책은행 혈세 투입 공식화

◇ 구조조정 시급성만 강조…책임자는?

대놓고 중앙은행을 압박하는 정부도, 이 장단에 따라 춤을 추는 중앙은행도 책임 떠넘기기에 급급한 모양새다. 조선·해운업종의 부실을 해소하려면 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의 자본확충은 불가피할 전망이다. 문제는 상황을 이 지경으로 만든 책임을 그 누구도 지려 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정부와 한국은행 모두 각각 '시기'와 '절차'를 내세우며 책임을 떠넘기고 있다. 기획재정부와 금융위원회는 기업 구조조정의 시급성을 이유로 국회의 동의 없이 한국은행이 나서 주길 원한다. '정공법'이자 국회 동의가 필요한 추가경정예산 편성을 하려면 구조조정의 적기를 놓칠 수 있다는 주장이다.

▲ 임종룡 금융위원장이 지난달 26일 서울 중구 금융위원회에서 기업구조조정 방안을 발표하고 있다. (사진=금융위원회)

그러나 구조조정의 시기가 왜 급해졌는지에 대해선 언급하지 않는다. STX조선과 대우조선, 현대상선, 한진해운의 부실화는 이미 수년 전부터 예견됐던 일이다. 게다가 금융위와 기재부는 자본확충이 '시급한' 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의 관리자다. 그런데 구조조정에 실패한 책임론에 대해선 한 마디 언급도 없이 오로지 국책은행 탓만 하고 있다.

금융권의 한 관계자는 "구조조정 본격화를 공언하자마자 시간이 급박하다며 한은을 압박하는 모양새"라며 "벼락치기 공부를 시작하면서 시간이 없으니 옆 친구에게 도와달라 손을 내밀고, 되레 친구에게 화를 내는 것과 다르지 않다"고 꼬집었다.

◇ 양적완화 용어로 물타기도중앙은행은 눈치만

한국은행 역시 해결책을 내놓기보다는 정부와 국회가 자리를 깔아주길 바라면서 눈치만 보고 있다. '정부의 재정 투입이 먼저'라며 기껏 각을 세웠다가 금세 꼬리를 내렸다. 두 경제사령탑이 일사불란한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고 오히려 우왕좌왕하며 시장에 혼란만 초래하는 모양새다.

'한국판 양적완화', '선별적 양적완화'라는 불명확한 용어도 문제다. 양적완화란 통상적으로 시중 전반에 자금을 공급하는 의미로 쓰인다. 특정 산업의 구조조정과 이를 수행하는 국책은행을 지원하기 위한 이번 방안과는 뉘앙스가 조금 다르다. 임종룡 금융위원장이 이번 방안을 설명하며 '유동성 문제가 아닌 (국책은행의) 건전성 문제'라고 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한국은행 노동조합은 "한국판 양적완화는 구제금융의 꼼수에 불과하다"며 "국채발행을 통해 순리대로 구조조정을 진행하라"고 지적했다.

야권 역시 이런 점들을 꼬집는다. 국민의당은 논평에서 "경제정책은 무엇보다 책임성과 투명성이 중요한데 불쑥 던지듯이 양적완화를 꺼내는 것은 무책임한 일"고 지적했다. 더불어민주당도 "구제금융이란 표현을 쓰면 비난을 받으니, 양적완화라고 하는 것"이라고 비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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