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이드 스토리]곪아 터진 STX조선과 정부의 골든타임

  • 2016.05.26(목) 15:33

골든타임 강조하더니 곪아 터진 후에야 메스 드는 꼴
줄줄이 수술대 오른 조선·해운, 최악 시나리오 가정해야

'STX조선해양을 법정관리 보낸다고?' 

 

처음 소식을 들었을 땐 별의별 생각이 다 스쳐 지나갔습니다. 현대상선 용선료 인하 협상이 잘 안 되니 정부의 구조조정 의지를 보여주려 희생양 삼는 걸까. 아니면 정말 정부가 기업 구조조정을 하긴 하려는 건가. 대부분의 언론도 3년간 4조 5000억원을 쏟아부은 STX조선을 법정관리 보내기로 가닥을 잡았다니 정부의 기업 구조조정에 대한 의지가 강하다는 평가를 했습니다.

 

하지만 조금 이상했습니다. 재실사 결과가 애초 5월말 정도 나올 것으로 예상했는데 일주일 정도 빨리 나온 점도 그렇고요. 통상 실사를 하면 청산가치와 계속가치 등을 따져보기 마련인데요. 이번엔 그렇지 않다는 겁니다. 어제(25일) STX조선 채권단 실무자회의 직전 정부 한 관계자는 "이번엔 기업이 계속 유지되려면 신규자금이 얼마나 더 필요한지에 대해 실사를 했다"고 언급하더군요.

궁금증은 이내 풀렸습니다. 답은 엉뚱한 곳에 있었습니다. 

 

 


# 정부 의지와는 관계없는 STX조선 법정관리

산업은행은 채권단 회의 직후 보도자료를 통해 "5월말에 도래하는 결제자금의 정상 결제가 곤란한 상황"이라며 "5월말 부도 발생이 불가피하다"고 밝혔습니다. 이제야 모든 게 이해되더군요.

재실사 결과가 예상보다 일찍 나오고 긴급하게 채권단 실무자회의를 열어 법정관리 절차를 밟아야 했던 이유를요. 부도를 앞두고 더이상 뭉그적거릴 수 없는 상황이었던 겁니다.

곪을 대로 곪아서 터져버린 이상 더는 어쩌지 못하고 법정관리 수순을 밟게 된겁니다. 반대로 얘기하면 STX조선 법정관리를 두고 정부의 구조조정 칼날이 매섭다거나 조선사 퇴출 신호로 해석할 수 없다는 거죠. STX조선 법정관리가 향후 정부의 기업 구조조정에 대한 방향을 말해주는 건 아니라는 겁니다. 정부의 의지가 반영된 게 아니니까요. 

물론 작년 같은 분위기였으면 5월말에 돌아오는 결제자금을 또 지원해줬을지도 모르죠. 결제자금이 얼마인지는 정확히 밝히진 않았지만 수백억원대라고 합니다. 적지 않은 돈이죠. 국책은행 자본확충방안을 논의하는 상황에서 혈세가 투입될 수밖에 없는데, 그 돈을 또 지원해줄 수는 없었겠죠. 게다가 그 돈을 지원해준다고 해도 해외 선주사의 손해배상 청구와 가압류가 들어오기 시작했고, 내년까지 7000억~1조2000억원의 돈이 더 필요하다고 하니, 정부도 산업은행도 두 손을 들 수밖에 없게 된 겁니다.

# 골든타임 놓쳐버린 STX조선

유일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을 비롯해 임종룡 금융위원장까지 하나같이 총선이 지나자마자 기업 구조조정의 '골든타임'을 강조했죠. STX조선은 이미 골든타임을 놓쳐 버렸습니다. 곪아 터질때까지 말이죠.

STX조선의 골든타임은 지난 2013년 4월, 자율협약 신청 당시였습니다. 그때 부실수주한 배를 짓지 말고 선수금을 물어주더라도 채권단의 손실을 확정했어야 합니다. 그리고 다운사이징 등 과감하게 수술했더라면 지금의 상황은 오지 않았을지도 모릅니다.

불과 5개월 전인 지난해 말 4500억원을 지원했을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런 수술 없이 오히려 밑 빠진 독에 물붓기를 해온 셈입니다. STX조선의 금융권 빚은 무려 6조원에 달합니다. 자율협약 이후 신규 지원금액만 4조 5000억원 입니다. 결국 이 돈은 모두 떼이고, 회사도 날아갈 지경입니다.

 
# STX조선 구조조정 실패의 뼈아픈 교훈

골든타임을 놓친 것은 STX조선뿐이 아닙니다. 금융권 지원으로 연명해 온 성동조선도 비슷한 길을 가게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어쩌면 현재 구조조정 대상에 오른 대부분의 기업들이 해당될지도 모릅니다. 
 
조선 빅3에 해당하는 대우조선해양도 지난해 10월 4조 2000억원의 막대한 돈을 퍼부었지만, 현재 재실사 중입니다. 올해 들어 사실상 수주 제로의 상황에서 구조조정 방안을 새로 짜야 한다는 얘깁니다. 불과 몇 달 전에 만든 구조조정 방안과 자구안이 지나치게 낙관적인 상황만을 예측했던 것이죠.
 
최근 채권단 자율협약에 들어간 한진해운은 어떻습니까. 올해 초까지도 정부와 산업은행 등에선 현대상선과 비교하며 구조조정 성공사례로 언급하기도 했습니다. 138억원 가량의 용선료를 내지 못해 남아프리가공화국에 한진해운 소속 벌크선을 억류당한 상태입니다. 괜찮다고한지 불과 몇 개월 만에 유동성 부족에 시달리고 있는 상황이죠. 

다들 올해를 구조조정의 골든타임으로 지목했지만, 시간이 많지 않은지도 모릅니다. 이제는 최악의 상황을 염두에 두고 이들 기업을 수술대에 올려야 합니다. STX조선의 법정관리가 정부의 의지가 아니었다고 하면 이제 정말 정부의 의지와 매서운 칼이 필요한 때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STX조선의 전철을 밟게 될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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