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이드 스토리]임종룡의 대통령 보고용 '날림공사'

  • 2016.05.27(금) 09:56

대통령 주재 성과주의 점검회의 앞두고 잇단 무리수
성과주의 정착, 확대 과정에서 되레 걸림돌 될 수도

"성과주의 도입을 결정하긴 했는데 평가 기준을 어떻게 만들어야 할지 모르겠어요. 앞으로가 더 걱정이네요."

지난달 비교적 무난하게 성과주의를 도입하기로 결정한 한 공기업 직원의 하소연입니다. 금융권에서 성과주의를 둘러싸고 정부와 노조의 갈등이 극단적으로 치닫고 있는 데 반해, 이 공기업은 큰 충돌없이 대다수 직원이 찬성하면서 성과주의 도입안을 통과시켰다고 합니다. 그런데 막상 성과주의 평가 기준을 마련하려니 막막하다는 겁니다.

 

그러면서 임종룡 금융위원장이 내달 초로 예정된 대통령 주재 성과주의 도입 점검회의를 앞두고 지나치게 무리수를 둔 게 아니냐는 평가를 낳고 있습니다. 일방적으로 성과주의 도입을 밀어부치면서 되레 성과주의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만 커지고 있고, 이미 성과주의 도입을 확정한 공기업들 역시 실제 적용 과정에선 난항이 예상되기 때문입니다.

 

임 위원장의 무리수가 오히려 민간 금융회사를 비롯한 성과주의 확대에 걸림돌이 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커지고 있습니다.

 

 


◇ 도입부터 하려니 불법·강요 논란


최근 금융 공기업들이 성과주의 도입을 결정했다는 소식이 속속 들리고 있습니다. 며칠 새 산업은행과 기업은행, 신용보증기금, 예탁결제원 등이 가세하면서 9개 중 8개 금융 공공기관이 성과주의 도입을 확정했습니다. 수출입은행도 조만간 '대세'에 따를 듯합니다. 이달 초까지만 해도 예금보험공사만 도입을 결정한 점을 생각하면 놀라운 속도네요.

그런데 이 공기업들의 성과주의 도입 과정에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습니다. 노조와의 합의 없이 긴급하게 이사회를 열어 재빨리 의결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노조의 반발이 워낙 심해 우회로를 선택한 것 같긴 한데, 이렇게 줄줄이 같은 방법으로 결정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더불어민주당까지 나서서 진상 조사를 하는 '민감한' 시기에 말이죠.

공기업 직원들은 바로 내달 초에 열리는 박근혜 대통령 주재 성과주의 점검회의를 지목합니다. 올해 초 공기업 성과주의 도입에 총대를 멨지만 정작 '성과'를 내지 못한 금융위원회가 대통령을 만나기 전에 서두르고 있다는 지적입니다. 임종룡 금융위원장도 연일 금융 공기업들을 압박하고 있습니다. 26일엔 성과연봉제 도입을 확정하지 않은 수출입은행 등을 콕 집어 빨리 도입하라고 언급하기도 했습니다.

▲ 임종룡(가운데)금융위원장이 26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금융개혁 추진위원회에 앞서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하고 있다. (사진=금융위원회)

◇ 더 멀어진 민간 금융사 성과주의 확산

결국 금융위는 대통령 점검회의에서 질책을 받는 일은 없을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문제는 그다음입니다. 당장 해당 공기업 노조들은 이사회나 경영진을 고소·고발하는 사례가 줄줄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더불어민주당도 진상조사단을 꾸려 공기업들을 방문하고 있으니, 불법 논란 등에 대한 견해를 내놓을 것으로 보입니다. 일단 도입에는 성공했지만, 앞으로도 오랜 기간 지루한 공방이 있을 것으로 예상합니다.

신의 직장이라고 불리는 금융 공기업에 성과주의를 도입하자는 취지에는 대부분이 공감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사회 의결 강행이라는 '무리수' 탓에 여론은 점점 안 좋아지고 있습니다. 한 금융사 직원은 "이런 식이라면 임금피크제도 이사회서 승인하면 다 되는 거 아니냐"며 고개를 저었습니다.

애초 금융위는 공기업에 성과주의 문화를 도입한 뒤 이를 모범 사례로 민간 금융사들에도 확산하겠다는 계획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여론 분위기라면 오히려 민간 기업 확산에 방해가 될 것 같습니다. 금융위의 의지와는 다르게 성과주의에 대한 반감이 금융권에서 더 커지고 있으니까요. 민간 금융사들도 공기업들 따라서 이사회 의결을 강행한다면 문제가 심각해지겠죠.

◇ 도입 뒤 평가 기준 마련이 더 난관

금융공기업들은 직무 분석과 평가체계 개편 등을 위한 컨설팅 업체를 선정하는 등 평가 기준 마련에 분주한 모습입니다. 일단 도입을 결정해놓고, 구체적인 방안은 인제야 만들려는 겁니다. 정부는 직원 간 연봉 차를 20~30% 이상으로 만들라는 등의 큰 틀만 제시했습니다.

문제는 평가 기준을 만드는 게 쉽지 않다는 겁니다. 오히려 이 기준을 만드는 데에 직원들의 반발이 더 커질 수 있습니다. 성과주의에 반대하는 이들은 마이크로소프트나 제너럴일렉트릭 등의 사례를 듭니다. 이 기업들은 직원 평가체계를 도입했다가 오히려 부작용이 크다는 판단에 이를 폐지했다는 겁니다.

다른 금융 공기업 관계자는 "성과연봉제가 정착하려며 평가 방식에 직원들이 동의할 수 있어야 한다"며 "평가 기준에 대부분이 동의하지 않거나, 협업보다는 개인 성과 위주로 일하는 분위기 등 부작용이 나타나면 그때는 누가 책임질 거냐"고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국회입법조사처도 이런 의견을 내놨습니다. 지난 3월 내놓은 '공공기관 성과연봉제 확대의 주요쟁점과 과제'란 보고서에서 "성과연봉제가 도입·정착되기 위해서는 공정한 평가시스템 구축과 함께 직원들의 충분한 의견수렴이 필요하다"고 조언했습니다.

임종룡 위원장은 현장의 목소리를 듣는 게 중요하다고 항상 강조해왔습니다. 그런데 성과주의 도입에는 예외인가 봅니다. 요즘 금융권에선 "임종룡 위원장이 너무 대통령만 바라보는 것 아니냐"는 얘기가 돌고 있습니다. 아무리 취지가 좋아도 과정이 거칠면 공감대 형성은커녕 반감만 더 커지는 게 당연한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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