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검색

[자살보험금, 그 후]①금감원과 보험사의 민낯

  • 2016.09.30(금) 17:15

잘못된 약관 한 줄…보험사도 금감원도 몰랐다
모호한 약관 보험사 멋대로 해석…소비자만 봉

자살보험금 논란이 마무리 국면에 접어들었다. 대법원은 지난 5월 약관에 따라 자살보험금을 지급하라고 판결했고, 이번엔 자살 후 2년이 지난 계약은 지급 의무가 없다고 판단했다. 논란거리가 사라진 듯하지만, 보험사들은 표정 관리를 하고 있고, 금융당국은 더 벼르고 있다. 왜 그럴까? 자살보험금 논란의 의미와 전망을 짚어봤다. [편집자]


자살보험금 논란의 핵심은 보험사의 약관이다. 이 문제가 불거진 것도 약관 때문이고, 금융당국과 보험사가 공방을 펼친 것도 약관을 두고서다.

보험사들은 지난 2001년부터 2010년까지 판 재해 특약에, 계약한 뒤 2년이 지난 자살에 보험금을 지급한다는 약관을 잘못 넣었다.

일반 생명보험 상품에선 계약한 뒤 2년이 지나면 자살에도 보험금을 지급하게 돼 있는데, 이 문구를 '재해' 사망 관련 약관에 그대로 배껴 넣은 것이다. 관련 기사 ☞ [포스트]자살이 재해가 된 씁쓸한 이야기

이 터무니없는 약관이 문제를 일으키자 두 가지 '상식'이 부닥쳤다.

하나는 잘못된 약관이라도 보험사가 이를 지켜야 한다는 논리고, 다른 하나는 실수를 했다고 해서 자살을 재해로 보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된다는 논리다. 이에 대해 대법원은 지난 5월 보험사가 '약속'을 지키라고 판결했다.

◇ 한 보험사의 실수…무작정 베낀 보험사들


대법원의 판결이 있었지만, 이 두 가지 상식 중 어느 것이 옳으냐에 대해선 전문가들 사이에서 아직도 의견이 엇갈린다. 지난 2년간의 논쟁이 소모적일 수밖에 없었던 것도 보는 시각에 따라 다른 해석이 나올 수 있어서다.

이 논란에서 어느 말이 맞느냐를 따지기보다는 오히려 문제가 불거진 원인과 이후 전개과정을 살펴보는 게 유익할 수 있다. 보험업계와 금융당국의 현실과 문제점이 고스란히 드러나기 때문이다.

먼저 재해사망 특약에 자살보험금 지급 문구가 들어간 과정이다. 일반 생명보험 상품에선 계약한 뒤 2년이 지나면 고의성이 없다고 판단해 자살에도 보험금을 지급한다.

그런데 한 보험사가 일반 생명보험 상품과 재해 특약의 약관은 어차피 유사하다고 판단하면서 그대로 가져다 써서 오류가 생겼다. 이 잘못된 문구를 다른 보험사들도 일제히 배껴 썼다. 이를 아무도 알지 못했고, 감독 책임이 있는 금융감독원도 파악하지 못했다. 

◇ 소비자는 뒷전인 보험사의 속성

문제는 보험사들이 이후 보험금을 지급하면서 자의적으로 판단해 일반 사망 보험금만 지급해왔다는 점이다. 이번 자살보험금 논란은 어찌 보면 '단순한 실수'로 볼 수 있지만, 여론이 보험사에 싸늘했던 이유가 바로 이 지점에 있다. 

우리나라 보험사들이 약관을 보험사에만 유리하게 해석하는 관행은 소비자 불만의 첫 번째 이유로 꼽힌다. 한 글로벌 컨설팅사가 발표한 '2016 세계보험보고서'에 따르면 보험소비자 만족도에서 한국은 지난해 25위에서 올해 최하위인 30위로 떨어졌다.

최근 불거졌던 암보험 논란도 유사하다. 보험사들은 갑상선암이 림프절로 전이될 경우 이를 갑상선암과 동일한 것으로 보고 보험금을 10~20%만 지급해왔다가 일부 소비자들이 소송했고, 금감원의 권고에 따라 뒤늦게 입장을 바꿨다. 보험사들은 갑상섬암을 소액 암으로 분류해 보험금을 일반 암 대비 10~20%만 지급한다.

◇ 늦장 대응에…뒤늦게 버럭 한 금감원


▲ 권순찬 금융감독원 부원장보가 지난 5월 23일 서울 여의도 금감원에서 자살보험금 지급 관련 브리핑을 하고 있다. 금감원은 보험사들이 소멸시효에 관계 없이 자살보험금을 지급하라고 압박했다. (사진=금융감독원)

지금은 보험금을 지급하라며 금감원이 보험사의 반대편에 서 있는 구도처럼 보이지만, 사실 금감원 역시 이 문제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금감원은 이런 잘못된 약관을 제대로 인지하지 못했다는 '책임론'과 관련, 재해사망 특약의 경우 사후 보고 상품이기 때문에 알지 못했다는 입장이다. 특히 이런 특약이 한 해 2000건에 육박해 모두 들여다보기도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보험업계 관계자들의 얘기는 다르다. 당시에도 특약에 대한 보고를 금감원에 했었고, 혹여 금감원이 몰랐더라도 이런 문제가 처음 불거졌던 2005년과 2008년에는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는 게 문제라는 지적이다.

보험업계의 한 관계자는 "금감원이 책임을 회피하려고 뒤늦게 부랴부랴 강경한 태도를 보이는 것 같다"고 꼬집었다.

논란이 불거진 뒤에도 금감원은 우왕좌왕했다. 일부 보험사들이 특약뿐 아니라 주계약에도 자살의 재해보장 문구를 포함한 상품을 판매했는데, 금감원은 이를 까마득히 몰랐다. 이에 따라 보험사들이 지급하지 않은 자살보험금 규모가 기존에 파악했던 것보다 훨씬 커지는 혼란을 초래했다.
naver daum
SNS 로그인
naver
facebook
goog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