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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드사 생사 키워드]③"문닫을 수 있다"…디지털의 경고

  • 2018.01.26(금) 11:01

시장포화·수익악화에 "디지털로 가야한다"
인공지능·블록체인 등 디지털기술 접목 나서
조직개편·ICT기업과 제휴 등 잰걸음.."규제완화 해달라"

카드 업계가 꽁꽁 얼어붙고 있다. 내수 시장이 차고 넘쳐 마케팅 비용 지출로 인한 제살 깎아먹기 전쟁이 한창이다. 정부는 카드사의 주 수입원인 수수료 체계를 손보겠다고 나섰다. 지난해 말에는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0.25%포인트 올려 조달금리도 올랐다. 엎친데 덮친격으로 법정최고금리도 내달부터 27.9%에서 24%로 떨어진다. 카드사는 비싸게 돈을 빌려와 싸게 돈을 내줘야 하는 상황이다. 상황을 타개하고자 카드업계는 해외시장진출과 디지털화를 고민하고 있다. 올해 카드업계를 쥐락펴락할 요소들을 키워드 중심으로 풀어본다. [편집자]

"요즘에는 모바일이나 웹으로 카드를 검색해보고 신청해주시는 분들이 더 많아요."

서울 을지로에 위치한 한 시중은행 영업지점.
영하 16도 추위에 볼이 빨개진 기자에게 창구직원은 "모바일 신청을 하면 혜택을 더 받는 경우도 있다"고 귀띔했다. 굳이 영업점을 찾지 않아도 된다는 얘기다. 직원은 "앞으로 카드사 영업소도 많이 줄어들것 같죠?"라고 되묻기도 했다.

실제 카드사를 비롯한 금융권 전반에서 모바일 중심의 비대면 채널 비중은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해 상반기 전체 입출금 거래중 비대면거래가 차지하는 비중은 90% 가량을 차지했다. 2016년 문닫은 금융 관련 점포수는 167개다. 특히 지난해엔 카카오뱅크와 K뱅크같은 인터넷 전문은행 출범을 계기로 비대면거래가 크게 증가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에 따라 금융사들은 무인상담 기능과 로보어드바이저 등 다양한 기술을 접목시켜 비대면 채널을 강화하고 있다. 이와 관련 삼성KPMG 경제연구원은 세계적으로 금융사와 ICT(정보통신기술)기업간 M&A(인수·합병) 건수가 2010년 223건에서 2016년 471건으로 두배 이상 증가했다고 전했다.

 

 

카드사들도 예외가 아니다. 카드업계에서 강조하는 키워드는 'ABCD'다. ABCD는 인공지능(AI)과 블록체인, 클라우드컴퓨팅, (빅)데이터의 앞글자를 딴 조어(造語)다. 업체마다 방점을 찍는 곳이 다를 수 있지만 대체적으로 이 기술들을 받아들이는 과정을 '디지털화(化)한다'고 한다.

 

지금까지는 매일 4000만건 이상씩 모이는 소비 데이터를 모아 고객별 맞춤형서비스를 제공하는데 초점을 맞춰왔다면 최근에는 AI기술을 탑재한 무인상담지원서비스 '챗봇(Chatbot)'도 선보이고 있다.

카드업계에서 3~4년 전부터 화두로 떠오른 디지털화 움직임은 올해도 식지 않을 전망이다. 정수진 하나카드 사장은 올해 신년사에서 "디지털은 선택이 아닌 필수"라며 "디지털에 더 많은 역량을 쏟겠다"고 공언했다. 정태영 현대카드 부회장은 "이익의 20%를 디지털 개발에 투자하겠다"고 밝혔고, 임영진 신한카드 사장은 "국내 금융시장은 디지털 방식이 아날로그를 추월할 것"이라며 디지털 전략에 힘을 실었다.

조직개편 움직임도 활발하다. 신한카드는 올해초 흩어져 있던 디지털 관련 부서를 플랫폼사업그룹으로 통합하고 산하에 인공지능, 페이테크 등을 전담하는 셀 조직을 만들었다. 현대카드는 2015년 디지털 전략 부서들을 신설한데 이어 미국 실리콘밸리에서도 사무실을 열었다. 하나, 삼성, 롯데카드 등 다른 카드사들도 디지털 관련 부서를 완비했다.

외부 업체와 손잡은 곳도 있다. 현대카드는 IT기업과 핀테크업체가 입주하는 공간인 '스튜디오블랙'을 운영하면서 외부 업체들과 협력하고 있다. KB국민카드는 지난해 빅데이터 분석에 주력하는 '빅디퍼'라는 스타트업 기업에 7억원을 투자하기도 했다. 권성은 빅디퍼 부사장은 "현재 국민카드에서 외주 형식으로 빅데이터 분석 업무를 받아 진행하고 있다"며 "일종의 기술협력관계를 맺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오정근 건국대 교수는 "새로운 금융시스템이 출연하면서 금융시장의 개념 자체가 바뀌고 있다"며 "금융산업이 맞닥뜨린 기술변화를 제대로 인지하지 않으면 문을 닫게 되는 상황이 올 수 있다"고 지적했다.

카드업계를 둘러싼 주변 환경이 디지털화를 추진하지 않으면 안되는 상황이라는 것이다. 현재 국내 카드시장은 포화상태이지만 카드사들은 점유율 경쟁때문에 판매관리비를 내리지 못하고 있다. 지난해 3분기까지 전체 카드사 판관비는 2조2400억원 규모로, 지난 10년간 매년 증가해왔다.

업계 관계자는 "영업 방식이 비대면 중심으로 이동하고 디지털 기술이 고도화되면 기존에 쓰던 인건비와 점포유지비 등을 줄일 수 있을 것"이라며 "관리 측면에서 효율성을 키우고 고객 편의성을 극대화하는 게 디지털화의 궁극적인 목표"라고 설명했다.

시장포화 문제뿐 아니라 카드사들의 경영환경은 호재보다 악재가 더 많다. 회사채금리가 꾸준히 오르면서 카드사의 자금조달비용은 증가하고 있지만 정부가 법정최고금리를 내리고 연체가산금리를 제한하는 등 수익성에 타격을 줄 악재가 줄을 잇고 있다. 카카오페이나 삼성페이, 알리페이와 같이 ICT기업들이 간편결제시장에서 덩치를 키우고 있는 상황도 디지털화를 촉진하는 요소다.

 

 

하지만 업계가 목표한 디지털화가 본궤도에 오르기까지는 시간이 걸릴 전망이다. 새로운 기술을 개발하고 실제 업무에 적용시키기 위해서는 규제가 완화돼야 하는데 정부가 규제 중심의 정책을 펴고 있는 탓이다.

정유신 서강대 교수는 "빅데이터와 블록체인 등의 기술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인프라 기술 발전이 중요하다"며 "용인할 수 있는 범위 내의 규제는 과감하게 완화해서 새 기술들을 빠르게 발전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관련 분야 인력 영입에도 힘을 쏟아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익명을 요구한 한 대학교수는 "적극적으로 활용되고 있다는 빅데이터 분야도 사실은 전문인력이 전부 해외로 빠져나가 알맹이가 없는 상황"이라며 "사람과 프로그래밍, 데이터 이 세 요소가 필요한데 모두 부재하다"고 지적했다. 이 교수는 이어 "필요에 따라서는 과감한 외부인사 영입도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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