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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이드 스토리]산업은행은 한국GM 채권자가 아니다

  • 2018.04.18(수) 16:29

산업은행, 한국GM 채권자 아닌 소수주주일 뿐
산은 "채권없이 구조조정 협상하는 드문 사례"
대주주·채권자 GM, 법정관리로 산은 압박 '아이러니'

 

한국GM 채권자는 어디일까?

①GM ②산업은행


정답은 GM이다. 현재 한국GM 채권자는 본사인 GM이다. 2017년 한국GM 감사보고서를 보면 한국GM의 원화차입금 1조1068만원, 외화차입금 3911억원 등을 모두 본사(GM Holdings)에서 빌렸다. GM은 채권자이자 최대주주다. GM은 계열사 3곳을 통해 한국GM 지분 76.96%를 보유하고 있다.

 

산업은행은 한국GM 지분 17.02%를 가진 소수주주일 뿐이다. 산업은행은 2002년부터 한국GM 상환우선주를 보유한 채권자였지만 2013년 원리금을 모두 상환 받았다. 현재 한국GM이 산업은행에 갚아야 할 빚은 없다. 하지만 언론 등에선 '산업은행을 한국GM의 채권단'이라고 표현해 놓은 것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주주와 채권자 차이는 크다. 주주는 경영에 참여하고 성과에 따라 배당 받는다. 반면 채권자는 정해진 기간에 따라 원금과 이자를 받을 뿐이다. 회사가 위험에 빠지면 주주와 채권자 입장이 뒤바뀐다. 채권자는 채권 만기를 연장하지 않고 돈을 갚으라고 주주나 경영진을 압박한다. 이 경우 '오너'보다 '채권자' 목소리가 더 커진다. 기업이 파산하면 주식은 자칫 휴짓조각이 될 수 있지만 채권자는 회사 자산을 팔아 투자원금과 이자를 받을 수 있다.

한국GM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최대주주이자 채권자인 GM이 구조조정의 실질적인 칼자루를 쥐고 있다. 지난 2월 GM은 오는 5월 한국GM 군산공장 문을 닫기로 결정했고, 최근 배리 엥글 GM 총괄 부사장 겸 해외사업부문 사장은 이달 20일까지 노사가 자구안에 합의하지 않으면 법정관리를 신청하겠다고 경고했다. 주주와 채권자 목소리를 동시에 내고 있는 것이다.

소수주주 산업은행은 할 수 있는 일이 그리 많지 않다. 지분 15% 이상의 주주가 행사할 수 있는 주주총회 특별결의사항 비토권(거부)이 산업은행이 가진 유일한 '카드'다. 하지만 이 '카드'로 한국GM의 철수를 막을 수는 없다. 지난해 산업은행은 '한국GM 사후관리 현황' 보고서를 통해 "GM이 지분매각이나 공장폐쇄 등으로 철수를 하면 이를 저지할 수단이 없다"고 분석했다. 이 시나리오는 현실이 되고 있다.

엄밀히 말하면 산업은행은 '한국GM 협상 테이블'에 앉을 이유가 없다. 채권단도 아닐뿐더러 산업은행 회계장부에서 한국GM 지분을 모두 털어낸 상황이다. 산업은행 감사보고서를 보면 한국GM 지분가치는 2015년 2695억원에서 2016년 0원이 됐다. 평가손실과 손상차손 등으로 한국GM 주식은 이미 휴짓조각이 됐다.

 

▲ 배리 앵글 GM 사장(오른쪽 두번째)이 지난 2월 국회를 방문 한국GM 대책 TF위원장 등 의원들과 인사를 나누고 있다.


그런데도 산업은행은 한국GM 협상테이블에 앉아있다. 채권자가 아닌 한국정부를 대표해서다. 정부는 일자리를 지키고 싶어 한다. 한국GM이 법정관리에 들어가면 임직원 1만명과 함께 협력업체 등 최대 30만명의 일자리가 위협받게 된다.

상대의 수를 뻔히 보고 있는 GM은 무리한 요구를 하고 있다. GM은 한국GM에 대한 대출금 3조원을 출자전환할 조건으로 산업은행에도 유상증자 참여를 요구했다. 이 경우 산업은행의 한국GM 지분은 17%대에서 1%대로 떨어져 비토권도 사라지게 된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 산업은행은 차등감자를 요구했지만 GM은 이 요구를 거부하고 있다.

GM은 다른 쪽에선 한국GM 노사를 법정관리 카드로 압박하고 있다. STX조선해양, 금호타이어 구조조정 과정에서 주채권은행인 산업은행이 썼던 카드를 GM이 고스란히 활용하고 있는 것이다. 산업은행이 법정관리 카드에 압박을 받고 있는 아이러니한 상황에 직면한 셈이다. 이동걸 산업은행 회장은 한 외신과 인터뷰에서 "산업은행과 협의없이 GM이 일방적으로 한국GM 법정관리를 신청한다면 법적 대응 외에 선택의 여지가 없다"고 말했다. 뒤집어 보면 산업은행이 법정관리를 막을 방법이 없다는 이야기다.

전문가들은 장기적으로 한국GM이 한국을 떠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노동자운동연구소가 지난 2월 발표한 '철수론 이후 한국지엠의 대안' 보고서를 보면 GM이 지난 100년간 세계에서 폐쇄한 공장은 90여개에 이른다. 이 보고서는 "GM은 2013년에도 한국에 8조원 투자를 약속했지만 투자는 고사하고 한국GM은 빈털터리가 됐다"며 "GM이 몇년내 철수할 것을 염두에 두고 한국GM의 미래를 고민해야 한다"고 분석했다.

이 보고서를 쓴 한지원 연구원은 18일 "GM은 20일 밤까지 타협을 본다는 벼랑끝 전술을 펼칠 것으로 보인다"며 "협상이 되지 않으면 법정관리를 신청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GM은 산업은행에는 좋은 조건으로 지원금을 달라고 하고 노조에는 연 1000억원의 복리후생비를 양보하라고 요구있다"며 "(정부나 노조가 이 조건을 받아들여도) 한국GM은 2~5년 밖에 더 갈수 없고 그 다음은 또 철수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반면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한국GM을 살려내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대우자동차 하나 못 살리는 나라'를 쓴 김대호 사회디자인연구소장은 "GM이 노조나 산업은행에 요구하는 것이 무리한 수준은 아니다"며 "먹튀에 대한 우려도 있지만 매출 10조원짜리 회사가 인건비 등으로 한국에 5조원의 부가가치를 창출하고 있는 만큼 먹튀를 하더라도 남는 장사"라고 설명했다. 이어 "먹튀 때문에 지금 지원을 끊자는 논리는 '언젠간 인간이 죽을것이니 지금 죽자'는 논리와 다를 바 없다"고 강조했다.

법정관리 데드라인이 다가올수록 초조해지는 쪽은 산업은행이다. 법정관리를 막지 못하면 수십만개 일자리를 잃게 되고 극적으로 협상에 성공해도 'GM에 유리한 계약서'에 서명해 혈세를 낭비했다는 비난을 피하기 어렵게 된다. 산업은행 관계자는 "채권도 없는 은행이 한국GM 협상 주체로 나서는 것은 산업은행 구조조정 역사에서도 쉽게 찾아 볼 수 없는 경우"라며 "산업은행이 할 수 있는 일이 거의 없는 것이 현실"이라고 토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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