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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포용적금융에 포위된 금융

  • 2018.06.05(화) 16:42

포용적·생산적금융 열중
"채용비리 수사 등 감안 코드 맞추기"우려도
금융산업 발전 위한 정책도 함께 이뤄져야

 

지난 4일 KB금융그룹은 한국성장금융과 '사회투자펀드 조성 업무협약(MOU)'을 맺었다. 사회투자펀드 1000억원을 조성하는 사업으로 KB는 '금융의 사회적 가치'와 '생산적금융' 두가지 목표를 동시에 달성할 것이라고 평가했다.

이날 신한금융그룹은 금융취약계층에게 300억원의 교육참여수당을 지원하기 위한 MOU를 체결했다. 신한금융 관계자는 "따뜻한 금융을 통해 모두의 꿈이 이뤄지는 희망사회를 만들겠다"고 말했다.

이날 또 하나금융그룹은 창업을 지원하는 '하나 파워 온 챌린지 앙트프러너 프로그램'을 진행한다고 밝혔다. 하나금융 관계자는 "혁신기업의 글로벌 진출 발판을 만들고 궁극적으로 청년 일자리가 만들어질 것"이라고 설명했다.

기업이 이익 일부를 사회와 나누는 일은 좋은 일이다. 더욱이 은행은 정부의 면허를 받아 운영되는 만큼 일반기업보다 사회적책임이 더 무겁다. 외환위기 시절 은행에 투입된 공적자금 수십조원을 생각한다면 은행은 아직 사회에 진 빚을 다 갚지 못했다. 그런데 요즘 금융권에서 벌어지는 '착한 일'의 수준을 보면 과하다는 생각이 떠나지 않는다.

이날 금융지주가 낸 보도자료에는 따뜻한, 희망 등 듣기 좋은 말들이 넘쳤다. 이 듣기 좋은 말들이 누구를 향해 있는지는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작년 7월 최종구 금융위원장은 "포용적금융과 생산적금융을 강화하겠다"는 말과 함께 취임했다. 은행이 금융에 취약한 약자를 포용하고 가계대출에 몰린 자금을 중소·벤처 등 생산적인 곳으로 흘려보내자는 정책이다. 이후 금융지주는 수조원에서 십조원대 포용적금융과 생산적금융 계획을 내놨다.

금융지주 관계자들은 "정부 코드 맞추기"라고 입을 모았다. 한 직원은 "정부가 누가누가 잘하는지 보겠다는데 알아서 기어야 되지 않겠느냐"며 "그런데 너무 기고 있다"고 푸념했다. 이어 "이명박 정부의 녹색성장, 박근혜 정부의 창조경제과 다른 것이 무엇이냐"며 "그때도 사회공헌하고 일자리 창출하자는 좋은 취지였다"고 꼬집었다.

또 다른 관계자는 "기업의 사회적책임은 어차피 해야 할 사업이라 정부에 정책에 따라 확대하고 있다"면서도 "이전 정부 미르재단처럼 말도 안되는 사업에 투자하라면 짜증이 나겠지만 지금은 그렇지는 않다"고 위안으로 삼았다.

문제는 금융지주가 포용적·생산적 금융에 포위된 동안 국내 금융산업은 제자리를 맴돌고 있다는 점이다. 여기에 최근 검찰의 채용비리 수사가 속도를 낼수록 금융지주는 생산적금융과 포용적금융에 몰두하고 있고, 최고경영자는 수사 결과만 기다리며 사실상 경영에서 손을 놓고 있다.

국내 은행은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높은 수익률을 내고 있지만 부동산 경기가 꺾이고 금리가 올라가면 이 실적잔치는 언제든 끝날 수 있다.

 

사상최대 실적을 낸 지금이 미래투자를 위한 적기다. 지금 준비하지 않으면 위기가 닥쳤을때 남는 것은 생존본능 뿐이다.

 

만약 정부가 금융권에 경쟁력 강화를 주문하고, 금융권이 코드 맞추기에 나섰다면 어땠을까. 그랬다면 진짜 '생산적금융'의 물꼬가 터졌을지 모른다.

한 금융당국 관계자는 "매 정권마다 초기엔 서민을 위해 금융산업을 통제하다가 중반부터는 경쟁력 강화를 외친다"며 "한번도 깨진 적 없는 공식"이라고 말했다.

 

그의 공식이 이번 정권에도 적용될지 판단하기 아직 이르지만 한가지 분명한 것은 이번 정부도 초기엔 이 공식대로 움직이고 있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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