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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이드 스토리]'저한테 왜 그랬어요' 금융위 겨냥한 금감원

  • 2018.12.04(화) 17:17

금감원 노조 "금융위 해체" 성명서
갈등 발단은 삼성바이오 감리?
"결국 예산 등 밥그릇 싸움" 지적도

▲ '달콤한 인생'의 한 장면[사진 = 네이버 영화]

 

선우 : 저한테 왜 그랬어요.
강 사장 : 넌 나에게 모욕감을 줬어.

영화 '달콤한 인생'의 한 장면이다. 조직의 '넘버2' 선우(이병헌)는 두목인 강 사장(김영철)에게 총구를 겨누며 울먹인다. "그거 말고 진짜 이유를 말해봐요. 저 진짜 생각 많이 해봤는데 정말 모르겠거든요. 우리 어쩌다 이리된 거죠. 저 진짜 죽이려고 그랬습니까. 7년 동안 당신 밑에서 개처럼 일해 온 나를."


# "이것은 명령이다"

기자 : 금융감독원이 재감리를 무조건 들어가야 되는 거죠?
김용범 : 이것은 외부감사법령상 감리의 권한을 가진 증권선물위원회의 명령입니다. 감리 집행기관인 금감원의 신속하고 성실한 집행을 기대합니다.

지난 7월12일 금융위원회 산하 증선위(위원장 김용범)는 금감원에 삼성바이오로직스 분식회계 의혹에 대해 재감리를 요구했다. 재감리는 사상 초유의 일이었다. 금감원이 1년 넘게 진행한 감리가 부실하니 다시 조사하라는 얘기인 셈이다. 금감원 입장에선 자존심이 구겨지는 일이었다.

김용범 증선위원장은 단호했다. "이것(재감리)은 명령이다. 현행 법령상 (금융위의) 권한이기 때문에 거부는 상상하기 어렵다."

3개월 뒤 증선위는 삼성바이오로직스가 고의 분식회계를 했다고 결론 내렸다. 금감원이 재감리 과정에서 스모킹건인 삼성 내부 문서를 확보한 것이 결정적이었다. 금감원에 재감리를 요구한 증선위 입장에서만 보면 '면이 안 서는 결과'였을지 모른다.

 

▲ 윤석헌 금융감독원장(왼쪽)이 작년 금융행정혁신위원장 시절 최종구 금융위원장과 함께 회의를 진행하고 있다.


# 사건의 발단

지난 3일 금감원 노조가 배포한 성명서는 삼성바이오로직스 감리 과정에서 금융위와 금감원의 갈등의 골이 얼마나 깊었는지 보여주는 대목이 있다. "금감원과 금융위의 갈등이 심상치 않다. 사건의 발단은 삼성바이오로직스 회계분식 사건이었다."

소신 강한 학자 출신인 윤석헌 금감원장이 지난 5월 취임한 이후 금융위와 금감원 사이가 불편하다는 '설(說)'은 파다했지만 금감원 내부에서 갈등을 공식적으로 인정한 것은 윤 원장 취임 이후 처음이다.

금감원 노조 서명서는 상급기관인 금융위를 거칠게 비난하고 있다. "김용범 부위원장은 재감리를 명령하며 삼성을 엄호하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삼성바이오로직스는 상장 당시부터 특혜의혹이 제기됐다. 3년 연속 적자기업으로 상장요건을 충족시키지 못했지만 금융위가 상장요건을 완화시켰기 때문이다. 김 부위원장이 '엄정한 요구이자 명령'을 운운한 이유도 자신들의 원죄를 덮기 위함이 아니었을까?"

결정타는 "금융위를 해체하자"는 주장이었다. 성명서는 "대통령은 금융위가 독점하고 있는 금융정책기능과 감독기능을 분리하겠다는 공약을 했다"며 "금융위 해체없는 금융감독기구 개편은 무의미하다"고 강조했다.

# '금융위 해체'의 추억

2012년 한국금융학회가 발표한 '금융감독체계 개편, 어떻게 할 것인가‘는 사실상 금융위 해체를 주장한 논문이다. 이 논문은 "금융감독 업무와 직접 연관되지 않는 금융정책 업무는 기획재정부로 이관해 더 이상 '액셀이 브레이크를 지배하는 상황'이 발생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파격적인 주장을 펼쳤다. 이 논문의 공동집필자 중 맨 위에 오른 이름은 '윤석헌'이었다.

윤 원장은 2016년 출간한 '비정상 경제회담'에서도 "금융위원회의 문제는 금융 관련 산업정책과 감독정책을 모두 관장한다는 데 있다"며 "금융위의 금융산업정책 업무는 기재부로 보내 국제금융정책 업무와 합치고, 감독정책 업무는 민간 공적기구 형태의 새 감독기구로 통합해서 브레이크가 제대로 작동하게 만들어야 한다"고 썼다.

금감원장에 취임한 뒤에도 그는 바뀌지 않았다. 올 5월 금감원장에 취임하자마자 그는 '브레이크 론'을 다시 꺼내들었다. 그는 "금융감독을 제대로 수행하기 위해선 독립성 유지가 필요하다"며 "법과 원칙에 따라 그리고 소신을 가지고 시의적절하게 '브레이크'를 밟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금융위 입장에선 불편할 수밖에 없었던 취임사였다.

# 결국은 밥그릇 싸움

금감원 노조가 "금융위를 해체하라"는 성명서까지 발표한 이유중 하나는 '돈'이다. 금융위가 내년 금감원 예산을 심의하는 과정에서 예산을 깎고 3급 이상 상위직급자를 대폭 축소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성명서는 "금융위는 금감원에 대한 예산심사권을 무기로 금감원 길들이기에 나서고 있다"며 "내년도 금감원 직원의 임금을 동결할 수 있다고 으르렁거리고 있다"고 주장했다. 반면 금융위는 국회와 감사원 등의 지적 사항에 따라 예산을 심의하고 있다고 반박하고 있다.  

금감원 노조는 "삼성바이오로직스 재감리를 명분으로 회계감독팀을 신설했고 박근혜 전 대통령의 '주가조작 엄정 조치' 한마디에 옥상옥 조직 자본시장조사단 인원을 계속 늘리고 있다"고 주장했다. 좀 거칠게 표현하면 '너희가 우리 밥그릇을 건드렸으니 우린 너희 밥그릇을 깨버리겠다'는 얘기다.

금융위와 금감원의 밥그릇 싸움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2011년 금융위가 금융소비자보호원 설치와 제재권 이관을 추진하자 금감원 노조는 '금융위를 박살내자'라는 플래카드를 내걸었다. 7년 만에 '박살'이 '해체'로 변했을 뿐이다. 

 

'달콤한 인생'은 선우(이병헌)의 내레이션으로 끝난다.

어느 깊은 가을밤 잠에서 깨어난 제자가 울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본 스승은 기이히 여겨 제자에게 물었다.

"무서운 꿈을 꾸었느냐?"
"아닙니다."
"슬픈 꿈을 꾸었느냐?"
"아닙니다. 달콤한 꿈을 꾸었습니다."
"그런데 왜 그리 슬피 우느냐?"
제자는 흐르는 눈물을 닦아내며 나지막히 말했다.
"그 꿈은 이루어질 수 없기 때문입니다."

금융산업 발전과 금융소비자 보호를 위해 금융위와 금감원이 힘을 합치는 '혼연일체'는 어쩌면 이룰 수 없는 '달콤한 꿈'일지도 모르겠다는 지적이 나온다.

 

▲ 2015년 임종룡(왼쪽) 전 금융위원장이 취임 직후 금감원을 방문해 진웅섭 전 금감원장에게 '금융개혁 혼연일체'가 적힌 액자를 전달하고 있다 /이명근 기자 qwe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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