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7일 잠실학생체육관에서 열린 국민은행 총파업 전야제 /사진=이명근 기자 qwe123@ |
최근 KB국민은행 사내 익명게시판은 '한 노조 간부가 지점장으로 승진했다'는 소식 탓에 시끄러웠다. 지난 18일 발표된 지점장 승진자 명단에 노조 간부 이름이 포함된 것이 알려지면서다. 이 간부는 노조를 탈퇴하고 지점장이 됐다.
개인의 능력 덕에 승진한 것이니 문제없다는 입장과 파업까지 강행하며 사측과 대립하는 가운데 노조 간부가 승진한 것이 바람직한가에 대한 의견이 엇갈렸다. 파업에 참여했던 일부 직원들은 허탈함을 감추지 못했다.
한 국민은행 직원은 "임단협이 진행되고 있고 간부 임기도 끝나지 않은 상황에서 지점장으로 승진했다"며 "노조 간부가 임단협 중간에 승진한 사례는 과거에도 없었다"고 말했다.
지난 21일 국민은행 노조는 1월30일부터 2월1일까지 예고한 '2차 파업'을 철회했다. 임금피크 도입 시기, L0(창구전담 직원) 처우 개선, 페이밴드 등 쟁점에 대해 노사가 어느정도 이견을 좁히면서다. 일의 순서만 본다면 노조 간부가 지점장으로 승진한 뒤 노조가 2차 파업 철회한 것이다.
이번 국민은행 파업은 안팎으로 공감을 얻지 못했다. 평균 연봉 9100만원(2017년 기준)을 받는 노조의 파업에 대해 국민들의 시선은 싸늘했다. 국민은행 노사가 '집안 문제'를 대화로 풀지 못했고 노조는 고객의 불편을 인질로 잡고 파업을 강행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은행업계에서 조차 국민은행의 나홀로 파업을 지지하지 않았다.
노조는 파업을 강행했지만 기대했던 성과는 내지 못했다. 입출금·자금 이체 거래 건수의 절반 가까이가 인터넷뱅킹을 통해 이뤄지는 '디지털 시대'에 한 은행의 하루짜리 파업 기사에는 '언제 파업했었나요?'라는 비아냥거리는 댓글이 달렸다.
이번 파업으로 국민은행 전 직원들이 하나로 뭉친 것 같지만 속으론 분열되고 있다. 각 직군별, 직급별 이해관계가 달라서다.
L0 직군의 처우 개선 문제도 직원들간 이견이 많다. L0는 2014년 영업점 입출금을 담당한 텔러 직군 4100명을 정규직으로 전환하며 만든 직급이다. 이번에 노조는 L0의 근무경력을 모두 인정하라고 요구했다. 하지만 일부 대졸 공채로 입사한 직원들은 업무 강도가 약한 L0의 처우 개선에 대해 공감하지 못하는 분위기도 감지되고 있다.
지난 11일 노사가 합의한 임금피크 직원 대상 희망퇴직에 대해서도 젊은 직원들의 박탈감은 컸다. 1965~1966년생 직원을 대상으로 21~39개월치의 특별퇴직금이 지급되는 조건이었다. 3억~4억원 가량의 특별퇴직금 외에도 자녀 학자금 지원금 등의 조건이 붙었다. 물론 퇴직금은 별도로 지급된다. 디지털 바람으로 은행의 미래가 불투명한 상황에서 젊은 직원들은 앞으로 이같은 조건으로 퇴직하긴 어려울 것이란 불안함을 표현하고 있다.
국민은행 집안 사정을 가장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문제는 페이밴드(Pay Band)다. 페이밴드 일정 기간 승진하지 못하면 임금이 동결되는 제도다. 문제는 페이밴드가 2014년 이후 입사한 신입직원들에게만 적용되고 있다는 점이다. 5년 전 '지금 나만 손해 보지 않으면 된다'는 이기주의적인 결정이 결국 이번 파업의 불씨가 됐다. 우리은행의 경우 차장급 직급만 페이밴드를 적용하고 있다는 점을 생각하면 문제는 페이밴드 제도 자체에 있다기 보다는 신입직원에만 페이밴드를 적용한 국민은행에 있는 셈이다.
지난 8일 파업 당시 사측은 전직원 1만6000명중 1만명이 정상적으로 출근했다고 밝혔다. 파업 참가인원은 6000명이란 얘기다. 파업에 참여하지 않은 본사 직원 등이 빈자리를 채우면서 파업 당시 전국 1058개 지점은 모두 정상 영업했다. 반면 노조 측은 9700명 가량이 파업에 참여했다고 집계했다. 파업에 참여하지 않은 직원이 6300명 정도 된다는 얘기다. 어느 쪽 숫자가 맞는지를 떠나 누구는 파업하고 누구는 출근하는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파업에 참가한 직원과 파업 대신 출근을 택한 직원들이 파업 그 다음날 다시 만났을 장면을 상상해보면 이번 파업이 무엇을 남겼을까하는 의문이 남는다. 주요 쟁점이었던 L0 직군의 처우 개선 문제는 태스크포스(TF)를 꾸리고 개선방안을 찾기로 했다. 결국 이번에도 뾰족한 답을 찾지 못했다는 얘기다. 페이밴드는 여전히 입장차를 좁히지 못하고 있다. 노조 측은 폐지를, 사측은 유보를 요구하고 있다. 반면 하나은행, 신한은행 등 노사는 파업 없이도 임단협에서 서로가 원하는 것을 얻어갔다.
한 국민은행 직원은 "이번 파업으로 남은 것은 파업을 했다는 사실 뿐"이라고 했다. 이번 파국이 어떻게 끝나던 승자가 없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