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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 인쇄만 한달 걸리는 '5만원'…"돈 아닌 예술품"

  • 2019.06.19(수) 16:47

한국조폐공사 경산 화폐본부
5만원, 5번 인쇄·건조 반복…보안↑ 불량↓
감소하는 화폐사용률…"상품권 등 신시장 개척"

"화폐는 단순한 '제품'과 '돈'이 아닌 세계 최고 수준의 보안기술이 집약된 인쇄물이자 예술품이다."

지난 18일 경산시 한국조폐공사 화폐본부에서 만난 김기동 본부장의 말이다. 그는 "특히 22개의 모든 위조방지장치가 도입된 5만원권은 위조가 더 어렵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지난해 국내 위조지폐 발생 사례는 100만 장당 0.12장으로 영국 129.1장, 유로존 34장, 호주 19.7장 등과 비교하면 세계 최저 수준이다.

18일 경북 경산 조폐공사 화폐본부 인쇄국에서 5만원권 용지에 인쇄가 진행되고 있다. 사진=한국조폐공사 제공

◇ 5만원, 인쇄부터 포장까지 40일 걸려 

한국조폐공사가 5만원권 발행 10주년을 기념해 경산시 한국조폐공사 화폐본부 내부를 언론에 공개했다. 이곳은 '가급' 국가중요보안시설로 철저한 보안에 가려진 장소다. 보안 서약서에 서명하고 '사진 촬영 금지' 씰을 핸드폰 카메라에 붙여야 입장이 가능했다.

이날 30도를 훌쩍 넘은 경북 경산의 날씨와 달리 은행권이 제조되는 화폐본부 인쇄국에 들어서니 내부는 선선했다. 제품(돈)의 불량률을 최소화 하기 위해 온도와 습도를 적정 수준에서 유지하기 위해서였다. 박상현 조폐공사 화폐본부 생산관리과장은 "은행권이 인쇄되는 곳은 항상 온도 23도, 습도 55%를 유지해야 한다"고 말했다.

조폐공사 화폐본부는 2개의 제조 라인으로 운영되는데 이날은 1개의 라인에서 5만원권이 생산되고 있었다. 요란한 소리를 내는 기계가 하루종일 돌아가기에 직원들은 모두 귀마개를 착용 후 작업하고 있었다.

돈을 발주하는 곳은 한국은행이다. 통화의 특성상 일반적인 수요와 공급의 법칙이 아닌 한국은행의 통화 발행 계획에 따라 생산되기 때문이다.

한은이 돈을 발주하면 충남 부여에 있는 제지본부는 섬유 등 특수 용지를 활용해 지폐 용지를 제조한다. 경산 화폐본부는 이 용지로 본격적으로 지폐를 생산한다.

5만원권의 생산은 인쇄, 절단, 포장 등 총 8번의 과정을 거쳐 이뤄진다.

이날 생산공정에선 671mm X 515mm 크기의 전지가 기계로 이동하며 신사임당 인물화의 윤곽을 인쇄하고 있었다. 하나에 전지에는 총 28장의 5만원권이 인쇄된다. 평판인쇄 과정이다.

이후 인쇄에만 ▲스크린인쇄 ▲홀로그램 부착 ▲요판인쇄(뒷면) ▲요판인쇄(앞면) 등 4번의 과정이 소요된다. 5번의 인쇄과정에서는 각각 다른 주요보안요소가 인쇄된다.

각각의 인쇄 과정은 특수 잉크 등으로 진행되기 때문에 각 인쇄 이후 4~5일 가량의 건조시간이 필요하다. 잉크 번짐 등으로 인한 불량을 최소화 하기 위해서다.

인쇄가 마무리 되면 절단 이전에 기계를 통해 불량이 있는지 검사한다.

불량이 된 은행권의 견본을 기자가 확인했지만 불량여부는 자세히 확인하지 않으면 확신하기 어려울 정도였다. 박상현 과장은 "예전에는 사람의 육안으로 하나하나 확인했지만, 지금은 최신식 기계를 통해 불량을 확인한다"며 "작은 불량이라도 발견하면 즉시 파기된다. 불량 화폐는 화폐의 신뢰성을 떨어뜨리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조폐공사에 따르면 연간 불량률은 약 3%다. 이는 한국은행, 조폐공사, 조폐공사 화폐본부 관리자의 참석하에 소각한다.

기계를 통해 불량 여부를 확인한 뒤 화폐의 주민등록번호인 고유번호가 인쇄된다. 이 번호를 통해 언제, 누가 만든 화폐인지를 추적할 수 있다.

이후 전지에 인쇄된 화폐를 절단하고 포장하는 과정이 지나면 마침내 '5만원'이 완성된다. 여기 까지 걸리는 시간이 약 40일 가량이다. 완성된 화폐는 한국은행을 거쳐 시중은행 그리고 시장에 풀린다.

18일 경북 경산 조폐공사 화폐본부 직원이 인쇄된 화폐를 절단하고 있다. 사진=한국조폐공사 제공

◇ 세계 최고 품질 화폐…"위조 방지가 최우선"

화폐 제조에 40일이나 투입하는 이유는 품질을 높이기 위해서다. 화폐의 품질은 불량이 없으면서 동시에 위조가 불가능 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5만원 권에는 총 22개의 위조방지장치가 들어가 있다. 이 중 12개는 일반인이 쉽게 식별이 가능한 장치이고 4개는 전문가들이 식별할 수 있는 장치다. 나머지 6개는 비공개장치다.

대표적인 위변조 기술은 은행권을 상하좌우로 기울였을 때 은선속 태극무늬가 움직이는 부분노출은선, 보는 각도에 따라 우리나라 지도, 태극 등의 무늬가 나타나는 띠형 홀로그램 등이 있다.

실제 기자가 5만원권 지폐를 꼼꼼히 살펴봤을때 홀로그램, 각도에 따라 달라지는 50000원 표기 등은 쉽게 찾을 수 찾을 수 있었지만 공개된장치 16개의 모든 위조방지장치를 찾을 수는 없었다. 보기를 보며 숨은그림 찾기를 해봐도 쉽지 않았다.

18일 경북 경산 조폐공사 화폐본부에서 조용만 조폐공사 사장(사진)이 기관현황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사진=한국조폐공사 제공

◇ 떨어지는 화폐사용률…새먹거리 찾는 조폐공사 

앞으로 '공장'의 생산라인이 멈출 수 있다는 걱정도 있다. 신용·체크카드와 간편결제 등이 화폐를 대체하는 결제수단으로 자리잡으면서 화폐의 사용률도 떨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조폐공사 입장에서는 주력사업의 영역이 줄어들 수 있다는 의미다.

이에 조폐공사는 위변조 기술을 다양한 분야에 활용해 나간다는 계획이다.

조용만 사장은 "화폐 사용률이 줄면서 전통적인 주력사업의 영역이 줄어들고 있지만 공공사업을 중심으로 새로운 사업을 개척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실제 조폐공사는 화폐 뿐만 아니라 ▲주민등록증 ▲전자여권 ▲전자공무원증 ▲기념주화 ▲홍보메달 ▲수표용지 ▲시험성적서 ▲채권용지 ▲상품권 등도 제조하고 있다. 이 외 태국과 리비아 등에는 동전을 만들어 수출 중이다.

특히 일부 기업의 경우 제품의 정품임을 인증하는 '정품 씰' 제조를 조폐공사에 위탁하는 등 조폐공사가 민간에도 기여하고 있다는 것이 조용만 사장의 설명이다.

조용만 사장은 "지폐 뿐만 아니라 주민증, 전자여권 등 조폐공사가 만드는 제품은 절대 불량이 있어서는 안된다"며 "위변조 기술을 활용한 신성장 사업 육성, 해외 시장 개척 등을 통해 올해 매출 4910억원을 달성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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