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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감원 '키코 분쟁조정' 그 후…은행 온도차 크다

  • 2020.03.10(화) 16:25

금감원, '은행이 배상' 결정했지만 수용 여부 달라
우리 '배상완료'-산업·씨티 '거부'-나머지 '유보'
배임에 투자상품 손실책임 전례될까 걱정..산은 행보 주목

금융감독원이 '키코 사태'에 대해 피해기업과 은행 간 분쟁조정절차를 완료했지만, 분쟁조정을 받아들일 것인가를 놓고 은행별로 온도차가 크게 벌어지고 있다.

'키코 사태'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로 은행이 기업에 판매한 환헷지 통화옵션상품에서 대규모 손실이 발생하자 피해기업들이 은행이 손해배상 할것을 요구하며 소송을 진행하는 등 갈등을 겪고 있는 사안이다.

금감원 분쟁조정을 수용해 배상절차를 완료한 은행도 있지만, 많은 은행이 받아들일 수 없다며 거부하거나 회사 이사회와 금융당국의 눈치를 보며 결정을 하지 못하고 있다.

이같은 온도차는 대법원이 일부 소송건에 대해 은행의 배상의무가 없다고 판결한 상황에서 일정 손해배상을 전제로 한 금융당국의 분쟁조정이 나오자 고민에 빠진 때문이다.

일부 은행을 제외하고는 분쟁조정에 따라 배상해야 하는 금액이 부담스러운 정도는 아니지만, 이번 배상 여부가 향후 금융상품 판매 후 제기되는 민원해결의 '전례'로 남게 되거나 배임 소송에 엮일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 키코 분쟁조정도 쉽지 않았다

금융감독원은 2018년 키코로 피해를 본 기업들의 분쟁조정을 받아들여 분쟁조정위원회를 가동했다. 하지만 분조위는 계속 연기되다가 지난해 12월에서야 겨우 매듭지었다.

분조위가 1년이 넘는 기간 동안 열리지 않았던 이유는 2013년 대법원이 일부 기업이 제기한 소송에 대해 사실상 은행의 손을 들어줬기 때문이다.

당시 대법원은 삼코, 세신정밀이 제기한 소송과 관련해 상품을 판매한 은행에 손해액의 35%, 30%를 배상하라고 판결했고, 모나미와 수산중공업이 제기한 소송에서는 은행에 책임이 없다는 판결을 내렸다.

대법원의 판례뿐 아니라 민사소송 상으로도 현재 소멸시효가 완성된 상황에서 금감원이 분쟁조정을 연다는 것 자체가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었을 것이란 관측이다.

금융업계 관계자는 "금감원 분조위의 결과는 강제성이 없기 때문에 법률적 리스크를 따져볼 필요가 있었기 때문에 분조위 개최가 늦어진 것으로 안다"며 "이 역시 윤석헌 원장이 2017년 금융권 적폐청산을 위한 금융행정혁신위원회 위원장을 지내며 이에 대해 재점검 해야한다고 밝혔고, 금감원장으로 임명돼 겨우 진행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에 따라 이번 분조위는 사법적 판단이 내려지지 않은 기업들만을 대상으로 했다. 또 키코로 피해를 본 기업들이 피해보상의 근거로 삼고 있는 불공정성, 사기성 여부 등은 심의대상에서 제외하고 대법원 판례에서 인정된 불완전판매 책임에 대해서만 심의했다.

◇ 은행, '배상완료·수용불가·결정유보' 온도차 

분조위는 4개 기업이 제기한 분쟁조정을 심의한 결과 키코 판매과정 중 불완전판매가 있었다는 판단 아래 ▲신한은행 150억원 ▲우리은행 42억원 ▲산업은행 28억원 ▲하나은행 18억원 ▲대구은행 11억원 ▲씨티은행 6억원 등을 배상하라고 권고했다. 평균 배상비율은 23%다.

하지만 은행별로 시각 차는 뚜렷하다. 우리은행은 지난달 분조위 결과룰 수용해 해당기업에 42억원을 모두 배상했다.

반면 산업은행은 해당 사안이 법리적 다툼의 여지가 남아있기 때문에 이를 수용할 수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씨티은행 역시 이번 분조위에 상정되지 않은 일부 기업에 대해서는 사실관계 검토 후 배상에 나서겠다면서도 분조위에 올라온 일성하이스코에 대한 배상 권고는 수락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일성하이스코의 경우 이미 회생절차 과정에서 분조위가 권고한 금액 이상의 채권을 감면해줬다는 이유에서다.

이 외 신한은행, 하나은행, 대구은행은 금감원에 '해당 권고안 수용여부를 논의하기 위한 시간을 달라'고 금감원에 요청한 상태다. 지난해 12월 분조위 결과 이후 내부 의사결정 시한 연장만 3번째다.

◇ 은행별 행보가 다른 이유

우리은행이 가장 앞서 배상한 것은 키코사태와 무관하게 이미지 쇄신을 위한 것이라는 분석이다.

우리은행은 지난해 DLF(파생결합증권)사태 영향으로 고객신뢰를 회복하는 것이 시급한 상황이다. 이에따라 DLF에 대해서도 빠르게 배상절차를 완료했고 조직 역시 불완전판매를 근절하기 위해 쇄신 중이다. 이 과정에서 키코배상 역시 불완전판매와 엮여 있기 때문에 빠르게 해결했다는 분석이다.

반면 다른 은행의 경우 표면적으로는 배임에 관한 우려로 배상을 거부하거나 결정을 미루고 있다.

키코와 관련해 민사소송을 제기할 수 있는 기간, 즉 소멸시효(10년)가 지난 상황에서 이를 배상할 경우 일부 주주들로부터 배임으로 소송을 당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게다가 금감원은 2010년 키코사태를 조사하면서 10개 은행과 72명 임직원에 대한 제재를 한 상태다.

조금 더 들어가보면, 은행들이 더 우려하는 것은 이번 분조위 결과를 받아들이면 앞으로 키코 피해기업이나 나아가 금융상품 판매 후 민원이 발생하면 '선례'가 될 수 있다는 판단 때문이다.

이와 관련 이번 분쟁조정은 4개 기업에 대해서만 이뤄졌고, 이 기업에 대한 분조위 결과를 수용하면 나머지 피해기업 145곳에 대한 자율조정 방식의 분쟁조정이 추진된다. 자율조정 방식의 분쟁조정은 키코를 판매한 11개 은행이 참여하게 될 예정이다.

은행 관계자는 "각 은행이 부담해야 하는 금액은 큰 수준이 아니지만 앞으로 다른 기업들과 협의로 이어진다는 점이 관건"이라며 "건별로 봐야 겠지만 은행이 이제와서 모든 기업에 대한 피해보상을 해야하는지는 의사결정 기구인 이사회에서 쉽게 결론을 내리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뿐만 아니라 금융투자상품을 판매할때 고객의 투자책임보다는 은행의 책임이 더욱 무거워 질 수 있다는 점도 고려사항이다. 모든 투자실패책임을 불완전판매라는 프레임 아래 은행에 책임을 묻게 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

9일 조붕구 키코공동대책위원장(왼쪽 세번째)등 위원회원들이 신한은행과 면담 이후 신한은행 앞에서 금융감독원의 배상 권고안을 받아들일 것을 촉구하고 있다. 사진=키코공대위 제공

◇ 국책은행인 산업은행도 '거부' 주목

은행업계에서는 국책은행인 산업은행과 가장 많은 금액인 150억원을 배상해야 하는 신한은행을 주목하고 있다.

배상금액이 큰 신한은행이 먼저 나서 분조위의 권고안을 받아들인다면 상대적으로 배상금액이 적은 은행들이 버티기가 쉽지 않다. 키코공동대책위원회도 박현준 신한은행 소비자보호그룹 부행장을 비롯한 소비자보호 관련부서와 만나 면담을 진행했다.

이날 면담 이후 기자들과 만난 조붕구 키코공동대책위원회 위원장은 "신한은행이 고객소비자 보호에 대해 역할을 충분히 알고 있었지만 기한 연장을 또다시 신청하는 듯 눈치를 본다면 강력하게 항의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신한은행보다 더 주목받는 것은 산업은행이다. 국책은행이기 때문이다. 기업 금융지원을 위해 설립된 산업은행이 기업이 제기한 분쟁조정안을 받아들이지 않는데, 민간은행이 나설 경우 주주들의 반발을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고 있기 때문이다.

산업은행의 거부로 DLF 분쟁조정을 진행한 금융감독원도 난감한 처지다.

업계 고위 관계자는 "민간은행의 경우 결정권을 쥐고 있는 이사회가 가장 추구하는 것은 주주가치 제고다. 강제성이 없는 권고안을 받아들이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며 "결국 감독원이 소멸시효도 지난 사건을 끄집어 내는 바람에 금융위와 관계도 한때 흐트러졌고 감독당국의 면도 세우지 못한 형국이 됐다"고 짚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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