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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수의 보험 인사이트]꽃이 피기 위해 필요한 것

  • 2020.11.23(월) 09:30

할부 계약이라 자주 망각하지만 보험료는 아주 비싸다. 장기보험에서 20년은 일반적인 납입기간이다. 매월 20만원씩 240개월을 납부하면, 총 납입보험료는 4800만원이다. 이처럼 비싼 보험료를 내는 이유는 사고 후 보험금을 위해서다. 만약 사고 후 보험금이 지급되지 않는다면 보험료를 낼 이유가 없다. 이 때문에 자주 '보험의 꽃은 보상'이란 말을 듣는다. 하지만 꽃은 아무 곳에서나 피지 않는다. 콘크리트 바닥이나 철판 위에서는 생명이 자랄 수 없다. 꽃이 피기 위한 전제조건은 좋은 토양이다.

보험금이 보험의 꽃이라면 토양은 설계다. 주택화재보험에만 가입한 사람은 암에 걸려도 보험금을 청구할 수 없다. 상품 선택이 잘못되었기 때문이다. 상품을 올바르게 선택하더라도 설계가 잘못되면 쓸모없는 보험이다. 자주 자동차보험의 법적 의무가입 한도만 가입하는 사람을 본다. 흔히 알려진 '책임보험'만 가입하는 것이다. 이름과 달리 무책임한 이런 행동은 대인배상Ⅰ과 대물배상 2000만원만 사용할 수 있다. 타인의 신체 및 재산 피해를 제대로 처리할 수 없으며, 운전자가 중앙분리대를 단독으로 충돌한 사고로 사망하더라도 보험금을 한 푼도 받을 수 없다.

보험은 만들어진 제품을 구매하는 것이 아니다. 설계과정을 통해 조합된 담보구성을 구매하는 것이다. 전통적으로 설계과정은 설계사의 도움을 받았다. 의무보험인 자동차보험을 제외하면 다이렉트 채널에서 장기보험의 성장률이 미비한 이유 중 하나는 설계 과정을 사용자에게 이해시키기 어렵기 때문이다. 다이렉트 채널은 어려운 설계 과정을 여러 방식으로 우회한다. 우선 자동차보험처럼 타 사용자가 많이 가입하는 값을 추천해주는 방법이다. 다른 예로 장기보험처럼 특약이 많을 경우 실속, 기본, 고급형으로 특정 담보 조합을 미리 구성하여 소비자가 선택하게 만든다. 향후 빅데이터와 인공지능을 활용하면 소비자 개별 맞춤 설계도 가능할 것이다. 이미 기술은 가능하지만 여러 이유로 소비자에게 구현되지 않은 상태다.

기술의 힘을 빌리든 사람을 통하든 가입이 되어야 보험금 지급 여부를 판단할 수 있다. 내용을 살펴봤을 때 개별 약관의 보장 범위가 사고 시 보험금이 지급되도록 설계되어야 한다. 보험금이 나왔을 때 사고를 처리할 만큼 충분한지 여부도 중요하다. 이런 내용을 점검하기 위해서는 약관과 증권을 면밀하게 읽어야 한다. 문제는 약관이 너무 어렵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감독기관은 오래 전부터 약관을 쉽게 쓸 것을 권유했다. 하지만 무형의 계약인 보험에서 엄밀하지 않은 용어의 사용은 혼란을 가중시킬 우려가 있다. 약관이 어려운 진짜 이유는 너무 두껍기 때문이다.

보험사 간 경쟁이 치열한 제3보험의 약관을 보면 특별약관만 100개가 넘는다. 자녀보험의 경우 산모와 태아관련 특약까지 더해진다. 이는 포화된 시장을 두고 판매 경쟁이 치열해진 결과다. 하지만 소비자 입장에서는 계속 두꺼워지는 약관으로 인해 읽는 것을 포기해 버린다. 보험 설계의 전문가로 인식되는 설계사도 약관의 내용을 모두 검토하는데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결국 상품의 복잡한 구조는 상품설명 부실로 이어진다. 오랜 시간 금융 민원 1위라는 오명에는 두꺼운 약관의 지분이 상당부분 존재한다.

특별약관이 많고 복잡할수록 대면채널 이외 타 채널의 발전이 저해된다. 현재 다이렉트 채널의 상품 구성을 보면 대면채널에서 모집중인 상품을 그대로 옮겨 놓은 것이다. 수많은 특약을 품은 복잡한 상품을 비대면으로 모집하기에는 구조적 난관이 존재할 수밖에 없다. 최근 보험사와 협업을 통해 비대면 거래에 알맞은 새로운 상품을 선보이는 움직임이 있다. 이는 소비자의 채널 선택권 보장을 위해 중요하다. 보험 계약을 체결할 수 있는 여러 경로가 존재해야지만 적절한 경쟁을 통해 소비자 효용이 증가한다. 생태계만 보아도 종의 다양성은 생존에 있어 핵심이다. 동일한 상품 구조 및 모집 방법 속에서 혁신 없는 파괴적 경쟁만 존재할 경우 보험 산업에 연관된 모두가 불행해진다.

보험금이라는 본질적 꽃이 만개하기 위해서는 상품 구조의 단순화를 통해 소비자가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 우선이다. 이름을 불러주어야 꽃이 되듯 복잡함에 숨어 의도적인 정보비대칭을 일으키는 행위로는 소비자의 관심을 가져올 수 없다. 보험 계약이 담보해야 할 것은 발생 빈도가 적지만 발생 시 큰 손해가 예상되는 위험이다. 본질에 집중한다면 사용자가 이해하지도 못하는 특별약관 중 상당수는 줄일 수 있을 것이다. 수요층과 소통하지 못하는 산업은 발전할 수 없다. 꽃이 아름답다고 느낄 수 있도록 단순하고 핵심을 전달하는 새로운 보험 상품이 등장하여 소비자와 소통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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