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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보험업 제판분리 "껍데기는 가라"

  • 2020.12.30(수) 09:00

제판분리 본격화…보험사 전속조직 분리 시작
'보험판매전문회사' 설립…전문인력 확보 관건

보험 제판분리 보험판매전문회사, 보험사 전속채널분리

보험 제판분리.

보험사는 보험상품을 만들고 관리하는 데 역량을 집중하고, 전문성 있는 판매조직이 소비자에게 더 유리한 맞춤형 상품을 제공할 수 있도록 '제조''판매'를 분리하는 것을 말한다. 보험상품을 만드는 곳과 보험상품을 판매하는 곳이 독립된 형태로 존재한다.

현재도 보험판매회사인 GA(독립 법인보험대리점)가 존재하며 크기를 키워나가고 있지만 보험사와 분리된, 완전히 독립된 형태로 보기는 어렵다. 1차적인 판매책임을 GA가 아닌 보험사가 지며 권한도 그만큼 작다. 보험사와 독립된 위치에서 소비자를 위한 판매가 이뤄지기 어려운 구조란 얘기다.

때문에 제판분리가 이뤄지려면 독립된 '보험판매전문회사'의 설립이 전제돼야 한다. 이는 곧 판매조직의 성장과 독립뿐 아니라 제조를 담당하는 보험사 역시 기존에 쥐고 있던 판매 조직권한을 내려놓는 선택을 해야 한다는 얘기다. 조직이 거대하고 안정화된 회사일수록 이는 쉽지 않은 선택이다.

제판분리는 10년도 전부터 도입 이야기가 나왔었다. 선진화된 보험시장의 모습이라는 멋진 꼬리표도 붙었다. 그럼에도 번번이 도입은 좌절됐다. 보험사는 매출을 좌우하는 큰 힘을 놓지 못했고, 판매조직은 책임과 권한이 부족하다며 '전문성' 같은 필요조건을 갖추는 것을 등한시했다.

GA가 거대해지며 주식시장에 상장하는 등 보험판매전문회사를 표방하고 있음에도 제판분리가 여전히 먼 이야기처럼 인식됐던 것은 이 같은 이유에서다.

그렇게 오랜 기간 신기루처럼 떠돌던 제판분리라는 말이 갑자기 형체를 가지고 눈앞에 번쩍 나타났다. 내년 대대적인 보험상품 판매수수료 개편을 앞두고 보험사가 조직을 떼어낸다며 앞장서 제판분리를 부르짖고 나선 것이다.

'어…? 이게 이렇게 갑자기?'

빨간불이 켜진 꽉 막힌 도로에 멈춰 서있는데 파란불이 켜지기도 전에 뒤차가 급발진해 들이 받은 느낌이랄까. 어안이 벙벙하지만 보험사는 제판분리를 선언했다. 일단 '껍데기'는 갖춘 셈이다.

그런데… 알맹이는?

제조와 판매의 분리는 단순히 물리적 분리를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독립적인 형태로 존재하며 각각이 제 역할을 해야 한다. 보험사가 가지고 있던 판매조직을 떼어낸다고 해서 갑자기 전문성을 갖춘 보험판매전문회사가 되는 것은 아니다.

기존의 보험설계사나 판매조직이 전문성을 갖추지 못했다기보다 그동안은 '판매 스킬'의 전문성만을 갈고닦아왔다. '보험사에 속한 지위'를 가지고 '보험사 입장'에서 보험상품을 판매해온 탓이다.

독립적 판매자가 아닌 보험사의 판매대리인 신분인 만큼 이는 당연한 일이었지만 앞으로는 달라져야 한다. 보험사와 '독립적인 지위'로 보험사가 아닌 '고객의 입장'에 서서 보험상품을 판매해야 한다. 산골총각의 어촌 강제 이주만큼이나 그동안 경험하지 못한 일을 해야 하는 것이다. 

때문에 갑자기 보험사에서 분리된 조직은 기존에 익숙했던 대로 보험상품을 판매할 수도 있다. 가장 쉬운 방법이 이전처럼 회사에서 판매 포인트를 정확히 알려주는, 혹은 가장 많은 수수료를 내건 상품을 판매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보험사가 조직을 분리하며 원하는 방향도 이것일 수 있다.

그러나 이는 보험판매전문회사의 모습이 아니다. 중요한 건 보험판매전문회사라는 껍데기가 아니라 그 안을 채우는 알맹이다. 보험판매 전문가가 그 안을 채워야 비로소 보험판매전문회사가 된다. 껍데기를 바꿔 새로이 채우는 것이 아니라 이미 채워져 있던 알맹이를 모두 바꿔야 하는 만큼 쉽지는 않은 일일 터다.

수수료 경쟁에 매몰돼 보험상품이나 소비자는 뒷전이던 영업환경이나 시장부터 바꿔야 한다. 보험에 대한 소비자의 시각을 바꾸고 보험이 신뢰를 얻는 데는 소비자와 최접점에 있는 판매조직의 역할이 가장 크기 때문이다.

10년, 20년 혹은 전 생애에 걸쳐 소비자가 맞닥뜨릴 위험을 예상하고 이에 필요한 '보험을 설계하는' 보험설계사 본연의 의미를 찾아야 한다. 지금처럼 고객정보만 가져다 나르고 정작 보험 설계는 '설계매니저'에게 맡기면서 스스로 역량을 떨어뜨리는 상태가 유지되면 머지않아 온라인 플랫폼 툴(tool)이나 AI(인공지능) 설계사에게 그 자리를 내어줘야 할지도 모른다.

내년에는 지금까지 겪어보지 못한 폭풍처럼 몰아치는 변화가 시작된다. 든든한 무게로 이 폭풍을 견뎌내려면 '껍데기는 가라'라고 외친 한 시인의 말처럼 보험판매전문회사라는 허울 좋은 껍데기는 벗어던지고 전문성을 갖추고 고객에게 다가갈 수 있는 알맹이로 가득한 판매조직 구성 노력이 무엇보다 중요한 때다.

교통사고처럼 다가온 제판분리가 단순 급발진에 따른 후방추돌로 끝날지, 막힌 도로를 뚫을 정도로 밀어붙이는 불도저가 될지는 지켜봐야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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