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은보 금융감독원장의 취임 후 첫 조직개편을 두고 금감원 내부에서 미묘한 기류가 흐르고 있습니다. 감사 아래 있던 감찰실을 원장 지휘계통인 수석부원장 직속으로 배치한 것에 뒷말이 무성합니다.
감사는 금감원내 독립기구 성격을 갖고 있고 감찰실은 임직원 일탈 행위, 재산등록 등을 감시하는 역할을 하죠. 그런 감찰실이 수석부원장 바로 밑으로 간 건 처음이거든요.
이를 놓고 금융경찰 금감원을 감시하는 감사직에 대한 무용론이 제기되는 한편, 사실상 정은보 금감원장이 그립(조직 장악력)을 더 강하게 하는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오고 있습니다. 무슨 얘기인지 속을 한번 들여다볼까요?
금감원 감사 '넘버2' 맞나?
금감원 감사는 직제상 금감원장 다음인 '넘버2'의 위치이자 금감원장 지휘체계와는 별도인 독립적인 기구입니다. 금감원장과 마찬가지로 금융위원장이 추천하고 대통령이 결정하죠. 금감원이 금융권을 검사·감독하는 감찰자 역할을 한다면 금감원의 감사는 그런 금감원 직원들을 감시하는 자리입니다.
지난 7일에는 김기영 전 감사원 공직감찰본부장이 신임 금감원 감사로 임명됐다는 소식이 알려졌죠. 그런데 그 직전 이뤄진 금감원 조직개편으로 신임 감사의 권한과 직무가 대폭 축소될 전망입니다. 감사 직속으로는 감사실 한 곳만 덩그러니 남겨졌거든요.
감사실은 내부통제 적정성을 평가하거나 감사원 등 외부감사 수감업무를 담당합니다. 금감원의 실 단위 조직은 보통 직원 25명이 소속되는 게 평균적인데 작은 부서라 13명밖엔 안 되고요.
일부에선 '감사 무용론'이 반영된 것이란 지적이 나옵니다. 김 신임 감사가 임명되기 전까지 10개월째 공백이 이어져 왔거든요. 2014년엔 1년간 공백이 있었죠. 그만큼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자리로 평가된 지 좀 오래된 자리라는 겁니다.
금감원 감사는 1999년 금감원 설립 이후 기획재정부나 금융위원회 출신의 이른바 '모피아(마피아+재무관료)'가 독식해왔습니다. 하지만 2010년 7월 문재우 전 감사(금융감독위원회 상임위원 출신)를 끝으로 감사원 출신이 맡아왔습니다. 금감원 내 불미스러운 일들이 종종 드러나면서 전문감사 시스템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아졌고 감사원 출신이 이를 차지하게 된 것입니다.
하지만 이후에도 제대로 된 기능을 했다고 보기 어렵습니다. 가깝게는 라임·옵티머스 등 사모펀드 사태로 드러난 임직원의 비위 행위를 사전에 막지 못했습니다. 술 접대까지 받은 직원에 솜방망이 처벌을 내려 '제 식구 감싸기'라는 지적을 받기도 했고요.
2018년엔 한 직원이 강남에서 고액 논술 강사로 이중생활을 하다 투서에 의해 적발되기도 했죠. 2017년 채용비리도 있었습니다. 수석부원장, 부원장보, 팀장 등이 줄줄이 옷을 벗었고 예산이 깎이는 수모를 겪었죠. 그래서 "(감사 자리가) 감사원 낙하산 인사를 챙겨주는 것 외에 의미가 있는지 모르겠다"는 말이 내부에서 나오기도 합니다.
수석부원장 권한은 점점 커져
금감원은 "감찰실은 수석부원장 직속으로 배치해 감사·감찰 간 견제를 도모했다"고 설명합니다. 지난해 12월 말 조직개편을 단행하며 낸 보도자료에서죠. 그런데 이에 대해 물음표를 다는 직원들이 적지 않습니다. 일단 감사와 감찰 기능을 따로 떼 놓는 기관이 드물다는 거죠.
또 정 원장 바로 아래인 이찬우 수석부원장 직속으로 감찰실을 두는 것도 의미심장해 보인다는 겁니다.
일단 정 원장과 이 수석부원장은 기획재정부에서 같이 근무하면서 오랫동안 가깝게 지내온 관계입니다. 정 원장이 기재부 차관보직을 역임했을 때 이 수석부원장은 기재부 경제정책국장을 맡았고요. 이후 정 원장의 후임으로 기재부 차관보를 지냈죠.
정 원장은 취임 초기부터 이 수석부원장에게 러브콜을 보냈다고 알려졌습니다. 금감원장과 수석부원장이 사실상 한 몸이나 다름없다는 얘기가 그래서 나오죠. 이런 상황에서 감찰실을 수석부원장 직속으로 두는 건 금감원장이 조직 장악력을 더 키우겠다는 의미로밖엔 해석이 안 된다는 거죠. 앞으로 정 원장의 기강 잡기가 한층 거세질 거란 의미입니다.
특히 이번 감찰실 이동 내용을 담은 개편은 감사가 공석일 때 시행됐죠. 지난해 금감원에서 대출금리 상승과 관련, 은행 여신담당 부행장들을 소집해 간담회를 열었는데요. 이 회의를 은행 담당 부원장이 아닌 수석부원장이 주재해 의아한 시선을 받기도 했죠. 금감원 한 관계자는 "수석부원장 권한은 점점 커지는데 그 조직에 대한 감시는 누가할지 의문"이라고 지적했습니다.
조직관리 규정 '뒤죽박죽'
이렇게 앞뒤를 살펴보면 그럭저럭 배경은 이해가 갑니다. 정 원장이 유명무실해진 감사의 역할을 대신해 감찰실을 '직접' 제대로 운영하기 위해 수석부원장 밑으로 재배치했다는 거죠. 하지만 이러한 조직개편이 규정 체계를 제대로 갖추기도 전에 급히 이뤄지다 보니 뒷말을 낳습니다.
가장 최근 공시된 조직관리 규정을 살펴보면요. 감찰실에 대한 업무 계획수립과 규정관리, 감찰에 관한 종합기획 입안, 특별감찰 등 주요사항의 결정권자는 여전히 감사입니다. 감찰실 소속의 선임 국장이나 부서장 등이 공석이 됐을 때도 감사가 권한 대행을 지정한다고 적혀있기도 하죠. 감찰실이 여전히 감사 지휘체계에 있다는 겁니다.
이에 대해 금감원은 "감찰실을 수석부원장 직속으로 둔 건 감사가 공석인 상태에서 감찰 기능이 약해지는 걸 방치해서는 안된다는 의도가 반영된 것"이라는 답변을 내놨습니다. 그러면서 "조직개편과 관련한 관리 규정은 아직 최종 확정되지 않았다"라고 덧붙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