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식과 부동산에 쏠렸던 유동성이 갈 곳을 잃고 있다. 특히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전쟁으로 지정학적 리스크가 커지면서 자산시장 변동성이 확대되고 있는 상황이다. 안전자산으로의 쏠림 현상이 심화될 것이란 전망이 나오는 배경이다.
다만 금융 소비자들이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금융상품은 금리 인상 기조에도 여전히 수신(예‧적금)금리는 기대보다 낮은 수준이어서 목돈 마련이 필요한 금융 소비자들의 선택지가 많지 않다.
혼란한 금융시장, 안전자산 선호
올들어 금융시장은 다양한 변수가 혼재되면서 불확실성이 커지고 있다. 한국은행의 기준금리 인상 기조에 '빚투'(빚내서 투자)와 '영끌'(영혼까지 끌어온 대출) 등이 힘들어졌고, 자산시장에 몰렸던 자금들이 줄어들기 시작했다.
물가상승에 대한 압박도 커졌고, 오미크론 확산세가 정점을 향해 가면서 코로나19 금융지원 종료시점이 한 차례 연기됐다, 이로 인해 금융시장에선 소상공인 등 대출 차주들의 부실 가능성이 높아질 수 있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여기에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전쟁 등 지정학적 리스크가 금융시장을 뒤덮었다. 국제유가 등 원자재 가격 상승과 글로벌 교역 둔화, 러시아에 대한 금융 제재 등이 대표적이다. 두 나라의 전쟁이 장기화되면 글로벌 물가상승과 성장둔화를 동시에 유발할 가능성이 높아지는 등 글로벌 경제는 안갯속에 빠지게 된다.
이로 인해 금융시장에선 위험자산에 대한 투자가 급격히 위축되고 안전자산으로 선회하고 있다. 채권 수요가 늘어나면서 채권금리는 하락세고 대표적 안전자산인 금 가격은 크게 상승했다.
지난 1일(현지시간) 뉴욕상품거래소에서 4월 인도분 금은 온스 당 2.3%(43.1달러) 오른 1943.8달러를 기록하기도 했다.
윤여삼 메리츠증권 애널리스트는 "전쟁 공포로 안전자산 선호가 강화되고 있다"며 "추세전환까지 인정할 수준은 아니지만 점검할 필요가 있다"고 분석했다.
홍춘욱 리치고인베스트먼트 대표는 "최근 물가 상승 압력이 부각되는 시기에 전쟁 공포까지 더해졌다"며 "이런 상황에서 투자자들이 가장 선호하는 것은 금 등 안전자산으로 전쟁 불확실성이 커질수록 안전자산 선호 현상은 강화될 것"이라고 말했다.
은행으로 가자니…
이처럼 채권과 금 등 안전자산이 주목받는 상황에서 일반 금융 소비자들은 안정적으로 목돈을 마련할 수 있는 예‧적금 등 금융상품에 관심을 갖고 있다.
주식과 가상화폐 등 자산시장 투자에 적극 나섰던 2030 젊은 세대들도 지난달 21일부터 가입이 시작된 청년희망적금에 대거 몰린 것이 대표적이다. ▷관련기사: 자산시장 불안…'빚투' 대신 청년희망적금에 '시선집중'(2월22일)
하지만 금리 인상기에도 은행 예‧적금 상품 금리는 소비자가 만족할만한 수준은 아니라는 평가다. 청년희망적금 등 정부 지원 상품과 각 은행들의 특판 상품 등이 아니면 기대할 수 있는 실질금리가 낮은 까닭이다.
현재 시중 은행에서 판매하는 상품들의 경우 카드제휴 등 우대금리 조건을 갖추지 않으면 금리 3%를 맞추기도 쉽지 않고, 매달 불입액에도 제한이 있어 목돈 만들기 수단으로는 한계가 있다.
특히 한국은행이 예측한 올해 물가상승률 전망치인 3.1%를 감안하면 실질금리(금융상품의 액면금액에 대한 이자율인 명목금리에서 물가상승률을 뺀 것)는 마이너스에 가깝다.
홍춘욱 대표는 "안전자산 수요가 늘어나긴 하지만 은행으로의 자금 회귀가 시작되기에는 아직 실질금리 수준이 너무 낮다"고 설명했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기준금리 인상 시점에 맞춰 은행들도 기준금리 인상 폭보다 더 크게 수신금리를 인상하고 있다"면서도 "최근 금융시장 변동성이 워낙 심한 상황이라 특판 등 이벤트가 아니라면 소비자 눈높이에 맞는 수준의 금리조건을 갖춘 수신 상품을 만들기는 쉽지 않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