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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이드 스토리]은행이 한전 콕 집어 대출하는 이유

  • 2022.11.24(목) 06:11

한전 올해 영업손실 30조원 전망…'역대급 적자'
채권발행 줄인 한전…대출로 '돌려막기'

이른바 레고랜드 사태로 국내 자금시장 경색에 빠지자 은행들이 구원투수로 나섰습니다. 당장 시장에 풀 수 있는 돈을 보유하고 있는 은행이 나서서 급한불은 끄자는 금융당국의 주문에 호응한 영향입니다.

그 와중에 은행들이 콕 집어 지원을 시작한 기업이 있습니다. 바로 '한국전력공사'입니다. 자금시장 경색으로 가장 우려가 되는 기업들은 부동산 기업, 건설사 등이 우선 거론되고 있는데요, 왜 은행들은 한국전력공사에 돈을 투입하기 시작했을까요.

한국전력 그 상황을 살펴보자

한국전력공사는 말 그대로 우리나라에 '전력'을 공급하는 회사입니다. 공공재인 '전기'를 전국민에게 공급하기 때문에 없어서는 안 될 기업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정확히 따지면 전기를 '만드는 것'은 한국전력에서 분사된 발전회사들이 하고 있고요 한국전력은 이 전기를 받아서 송전·변전·배전 등의 업무를 수행합니다. '원석'상태의 전기를 '가공'해 제공받아 전국 방방곡곡에 공급하는 '도매상' 역할을 한다고 보면 되겠네요. 

그런데요 사실상 우리나라 전 국민을 대상으로, 일간단위로 상품을 공급하는 이 회사의 사정이 썩 좋지는 못합니다. 특히 올해에는 더욱 심각해졌습니다.

올해 3분기말 기준 한전의 영업손실은 21조8342억원입니다. 연간 기준으로 30조에 달하는 적자를 달성할 것이란 관측이 나오고 있습니다. 도대체 무슨일이 있었길래 한 회사가 30조원이 달하는 적자가 예상되는 걸까요? 

일단 한전의 상품인 원천인 전기는 다양한 발전소에서 만들어냅니다. 그리고 각 발전소의 특징에 따라 다양한 형태의 에너지를 전기에너지로 바꾸겠죠. 그리고 이 전기에너지를 판매하는게 한전의 핵심영업분야입니다. 

그런데 이 전기라는게 앞서 말했듯 공공재다 보니까 함부로 가격을 건드릴 수 없습니다. 전기료 인상은 한전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게 아니라 기획재정부, 산업통상자원부 등 정부부처와의 협의가 필요한 사항이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최근 몇년새 코로나19, 글로벌 공급망 둔화, 우크라이나와 러시아간 전쟁 등 복합적인 원인으로 유가, 석탄, LNG 등 원자재 가격이 급격하게 상승한 것입니다. 관세청에 따르면 '전기'의 원자재인 LNG가스, 유연탄 등의 가격은 작년보다 2~3배 이상 높아진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원자재 가격이 오르면 이를 생산하는 생산자의 비용도 늘어나고 도매상이 받아오는 비용도 늘어나겠지요. 그런데 한전이 판매하는 이 전기는 공공재기 때문에 아무리 원자재 가격이 올라도 '소비자판매가'를 쉽사리 올릴 수 없습니다. 한전이 올해 역대급 '적자'를 기록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실제 올해 3분기 한전의 주요 매출액인 전기판매수익은 47조9568억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 42조5182억원과 비교해 12.8% 늘어났습니다. 이 역시도 원자재가격 부담에 결국 4월 전기세를 인상한 영향이 반영된 결과입니다.

반대로 핵심 영업비용인 전력구입비는 30조766억원으로 지난해 15조37억원보다 2배가까이 뛰었습니다. 이외 연료비도 지난해 3분기까지는 13조5232억원이던것이 올해 3분기에는 24조3335억원으로 79.9%나 늘어나면서 한전의 '역대급 적자'를 이끌게 됐습니다. 

한전은 '적자'에도 맘편한 회사였다

사실 한전은 안정적으로 이익을 내는 회사였다고는 보기 힘듭니다. 한전의 영업이익 추이만 봐도 들쑥날쑥 합니다. 2017년에는 4조9531억원의 영업이익을 냈다가 2018년에는 2080억원, 2019년에는 1조2765억원의 영업손실을 냈습니다. 

그리고 2020년에는 4조862억원의 영업이익을 내며 흑자전환에 성공했지만 2021년에는 5조8601억원의 영업손실을 내며 다시 적자로 돌아섰습니다. 

그런데 한전은 큰 적자를 기록한 해에도 큰 고민은 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자금조달이 '매우' 수월했기 때문입니다. 통상 한전은 채권을 발행해 자금을 조달해 왔습니다. 한전이 발행하는 이 채권이 시장에서는 인기가 좋았습니다.

바로 신용등급이 높기 때문입니다. 3분기말 기준 한국전력이 발행하는 전력채는 AAA등급, 전자단기사채는 A1등급, 기업어음은 A1등급의 신용등급으로 책정돼 있습니다. 모두 '매우 안정적으로 원금을 회수할 수 있으며 투자수익도 보장받는다'는 시장의 신뢰를 받는 최상위권 등급입니다. 최근 3년 이내에 한전채가 유찰된 적이 단 한차례도 없다는 것이 이를 방증합니다.

한전이 안정적으로 이익을 내는것도 아니고 심지어 적자를 냈다하면 수조원에 달하는데 왜이리 채권시장에서는 한전을 신뢰하는걸까요? 그건 바로 한전의 최대주주가 우리나라 정부와 국책은행인 산업은행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에 전기를 공급하는 회사이며 대주주가 대한민국 정부인데 이 회사가 부도가 날 가능성은 없다는 시장의 신뢰가 깔린 것입니다. 

레고랜드 사태…도화선에 불 붙이다

그간 한전은 자금이 필요한 일이 생기면 적극적으로 채권을 찍어서 자금을 조달했습니다. 한전이 찍어내는 채권은 시장의 인기가 높으니 자금조달도 수월했죠. 

올해는 더욱 적극적으로 채권을 찍어냈습니다. 적자규모가 워낙 크다보니 필요한 자금도 눈덩이처럼 불어나서였습니다. 당장 분기말마다 발전사에 전기 대금을 내야하기 때문에 팔면팔수록 손해보는 장사를 하더라도 돈은 계속 필요했습니다. 

이에 지난달 기준 한전이 올해에만 발행한 채권 규모는 23조5000억원에 달합니다. 지난해에는 연간 10조3200억원 가량 채권을 발행했다는 점을 고려하면 한전의 상황이 심상치 않다는 얘기입니다. 

그런데 레고랜드 사태이후 시장에 상황이 이상하게 흘러가기 시작했습니다. 신뢰도가 높아야 하는 지방채의 신뢰도가 추락하자 채권시장이 동요하면서 그나마 믿을 수 있는 회사채, 즉 한전이 발행한 채권에 자금이 쏠리기 시작한겁니다. 한전은 돈을 쉽게 구하는데 일반기업들은 돈을 구하지 못해 유동성 위기가 닥칠 것이란 우려가 생기기 시작한 겁니다. 그리고 이는 실제 숫자로도 증명됐습니다. ▷관련기사 : '빙하기' 10월 자금시장…녹여야 하는 은행의 고민

이에 정부는 한전에게 채권 발행을 최대한 자제하고 시중은행들에게 대출을 해주라는 부탁을 한 겁니다. 다른 기업들이 채권을 발행해 자금을 조달할 수 있게 신용등급이 높아 투자수요가 많은 한전은 '일단 빠져있으라'고 한 셈입니다. 이에 하나은행이 조만간 6000억원을 한전에 내어주고 KB국민, 우리 등 주요 은행들도 나서 총 2조원 가량을 대출해 줄 예정입니다. 

이 금액이 얼마나 큰 규모냐면요, 올들어 1월부터 10월까지 국내은행이 대기업, 중소기업 등에게 새롭게 내어준 대출총액이 103조5000억원입니다. 한달에 평균 10조씩 늘어났네요. 한달동안 늘어난 기업대출 평균의 20%를 하나의 회사에 대출해준다는 얘기입니다.

은행 트레이딩 부서 관계자는 "현재 한전이 적극적으로 채권을 찍어내면 다른 기업들의 자금경색을 해결할 수 없다"며 "하지만 한전은 막대한 자금이 지속해서 필요한 만큼 은행들이 대출에 나서는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금융권에서는 여전히 불안함을 감추지 못합니다. 빚을 빚으로 막는 형국은 마찬가지라는 겁니다. 게다가 한전에게 은행권이 나서 수조원의 대출을 해주면 그만큼 다른 기업들이 대출을 받지 못하는 점도 짚어야 한다는 분석도 있습니다.

은행 관계자는 "채권을 발행하건 은행으로부터 대출을 빌리건 한전의 부채가 늘어나는 것은 매한가지"라며 "게다가 현재 금리높은 편이라 한전의 금융비용도 치솟을 텐데 좀처럼 해결책을 찾기는 힘들어 보인다"라고 말했습니다.

이어 "그나마 현재 주요 시중은행들은 여력이 있기 때문에 한전에 대출을 해주고 부실이 나더라도 타격이 적은 편이라 적극적으로 나서줄 수 있다"라면서도 "하지만 언제까지나 빚덩이인 공공기관을 내버려 둘 수 없는 만큼 정부차원의 대책마련이 시급해보인다"라고 짚었습니다.

직접대출에 나서지는 않지만 최대주주인 산업은행의 입장도 곤란할 것으로 전망됩니다. 산업은행은 한전의 지분 32.9%를 보유한 최대주주인데 한전이 적자를 내면 이는 고스란히 산업은행의 손실로 반영이 되기 때문입니다. 이 경우 은행의 자본 건전성기준인 자기자본비율이 금융당국의 권고 수준에 겨우 맞추는 수준으로 줄어들어 쓸 수 있는 유동성규모가 줄어들게 됩니다.

이에 현재 금융권에서는 한전의 연간 적자규모가 30조원 가량으로 확정된다면 내년 다른 기업에게 내어줄 수 있는 금융지원 금액은 올해 40조원 가량 줄 것이란 관측을 내놓고 있습니다.

올해는 참 어렵습니다. 저금리의 달콤함은 과거가 됐고 국제정세는 한치앞을 예측하기 힘듭니다. 이같은 상황에서 한전의 현재 상황을 되짚어보고 한전에 돈을 빌려줘야 하는 은행들의 이야기를 듣다보면 새삼 '위기'라는 점을 다시 느낄 수 있습니다. 위기를 현명하게 해쳐나갈 수 있길 바랍니다. 영화 인터스텔라의 대사 한 구절이 떠오릅니다.

우리는 답을 찾을 거야, 늘 그랬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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