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 경쟁 촉진을 위한 제도개선 방안이 추진 동력을 상실할 위기다. 미국 실리콘밸리은행(SVB) 사태가 나비효과를 일으켰다. 글로벌 금융시장의 시스템 리스크가 확산되는 상황에서 준비되지 않은 채 무리하게 제도개선을 추진할 경우 역효과가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은행권에선 스몰라이선스 도입이나 비은행 지급결제업무 허용 등의 방안을 검토한 것을 두고 섣불렀다는 게 공통된 지적이다. 다만 일각에선 전근대적인 사고에서 벗어나야 은행권에 변화를 불러올 수 있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SVB 파산 부메랑
은행권 경영·영업 관행·제도 개선 TF는 1차 회의에서 은행권 경쟁 촉진을 위해 은행권내 경쟁뿐 아니라 은행권과 비은행권 경쟁, 은행권 진입정책, 금융과 IT간 영업장벽을 허물어 실질적 경쟁 촉진 방안을 고민하겠다고 밝혔다.
이중 은행권이 주목한 부분은 스몰라이선스와 챌린저뱅크 도입 등 은행권 진입장벽을 낮추는 방안, 비은행권과의 경쟁을 위한 비은행 지급결제업무 허용 등이다.
스몰라이선스 등 특화은행은 금융당국이 직접 해외 성공사례 등을 거론하며 힘을 실었고, 비은행권의 지급결제허용은 오랜 시간 검토가 진행됐던 만큼 도입에 속도를 낼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하지만 불과 한달만에 상황이 뒤집혔다. 금융위원회가 특화은행 성공 사례로 제시했던 SVB 파산으로 전 세계적인 금융 시스템 리스크가 확산되고 있어서다. 이로 인해 2차 회의에선 지급결제전문은행이나 중소기업대출 전문은행 등 도입 검토가 필요한 은행들도 소비자 편익보다 리스크 증대 우려가 더 크다는 주장(금융연구원)이 제기됐다.
비은행권(보험·카드·증권사 등)에 지급결제업무를 허용하는 방안 역시 지급결제시스템을 실질적으로 운영하고 있는 한국은행이 반대 의사를 명확히 하면서 도입이 불투명해졌다. ▷관련기사: 'SVB 후폭풍' 은행 경쟁촉진 방안 사실상 '원점'(3월30일)
이같은 상황을 두고 은행권에선 경쟁 촉진에만 몰두하며 성급한 방안을 꺼내든 것이라는 비판의 목소리가 나온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인터넷전문은행 사례에서 보듯이 특화은행 도입 취지는 좋지만 기존 은행과 차별화된 서비스를 바탕으로 경쟁력을 갖는 게 쉽지 않다"며 "스몰라이선스 등이 국내 금융시장에서 필요한지 근본적인 고민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또 다은 은행 관계자는"은행을 향한 정부 비판 등으로 인해 금융당국이 궁여지책으로 급격히 추진한 부분이 없지 않다"며 "비은행 지급결제 허용 부분도 실제 금융 소비자들이 은행이 아닌 곳에 거래 계좌를 만들어 관리할지도 의문인데다 금융 안정을 위한 시스템 구축 등 체계도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공고한 은행 벽 넘을까
2차 TF 회의 후 금융위는 스몰라이선스와 비은행 지급결제업무 등과 관련해 중립적이라는 입장을 표했다. 소비자 편익이 크지 않다는 분석과 금융 안정성에 대한 문제제기로 도입이 무산되는 것 아니냐는 전망에 대해 선을 그은 것이다.
강영수 금융위 은행과장은 "판단 근거를 실무적으로 마련해 나갈 계획으로 도입 여부는 지금 판단할 시기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관건은 금융권의 부정적 시선에도 새로운 사고방식을 적용해 변화를 시도할 수 있느냐다. 실제 김소영 금융위원회 부위원장도 1차 TF 회의에서 "금융권 틀에 박힌 사고방식으로는 문제 해결에 한계가 있다"며 "새로운 사고방식으로 개선방안을 찾아야 한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일각에선 SVB 파산으로 시스템 리스크를 우려해 특화은행 도입 등 논의를 중단하는 것은 부적절하다는 주장도 제기한다.
서지용 상명대 경영학부 교수는 "소비자 입장에선 특화은행 도입으로 은행 간 경쟁이 치열해지면 다양한 상품을 선택할 수 있다는 점에서 유리하다"며 "은행 중에도 리스크에 취약한 은행은 도태되는 것인데 이에 대한 우려로 새로운 은행을 만들지 못한다는 것은 전근대적인 생각"이라고 꼬집었다.
지급결제업무 허용과 관련해서도 그는 "결제업무는 금융기관만의 수단이 아니고 다양한 플레이어가 참여하는 시장"이라며 "(시스템 안전성 저하)한국은행의 주장에는 동의할 수 없다"고 비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