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동형 상품이 주를 이루는 우리나라 주택담보대출 시장 구조는 10여년 전부터 리스크 관리 필요성이 제기됐다. 급격한 금리상승 등 외부충격시 가계부채 부실을 급속히 유발하는 까닭이다.
이에 정부는 2011년 고정금리·분할상환 대출 확대를 골자를 하는 '가계부채 연착륙 종합대책'을 발표하기도 했다. 이후 시중은행을 중심으로 일정 기간 고정금리를 유지한 후 변동으로 전환되는 혼합형, 정부가 공급하는 순수 고정형 주담대 상품 비중도 점차 확대됐다.
하지만 무게중심이 완전히 이동하지는 못했고 우려는 현실이 됐다. 코로나19 기간 초저금리 상황에서 변동형 주담대가 급증했고, 지난해부터 전세계적인 고물가 현상으로 국내에서도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가 기준금리를 가파르게 인상했다.
변동형 주담대 금리는 기준금리보다 더 큰 폭으로 뛰었고 차주들의 금융 부담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했다. 금융당국이 가계부채 질적 구조 개선을 위해 서둘러 고정형 주담대 확대 방안을 내놓은 이유다.
목표달성 못하면 '페널티'
금융위원회가 고정형 주담대 확대를 위해 설정한 기본 방향은 △은행 자체 고정금리 대출 공급 위한 유인체계 마련 △소비자 변동금리 위험인식 제고 및 고정금리 유인 강화 △정책금융기관 역할 다변화 통한 민간 고정금리 대출공급 지원 등이다.
그동안 금융위는 은행들에게 혼합형 상품 비중 확대를 권고해 왔다. 은행들이 순수 고정형 주담대를 취급하기 어려운 만큼 혼합형도 고정형으로 인정했고, 금융위가 제시한 목표치를 은행이 달성하면 인센티브를 제공했다. 목표치 달성 정도에 따라 주택금융신용보증기금(주신보) 출연 요율을 최대 0.06% 우대했다.
이를 바탕으로 혼합형 비중은 꾸준히 확대됐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2013년 주택담보대출 가운데 고정금리 비중은 21.3%에 불과했지만 2019년에는 47.3%까지 늘었다. 다만 이후에는 비중이 점차 줄어 지난해에는 36.1%를 기록했는데, 코로나19 기간 집값이 급등하면서 대출을 활용한 주택매입 수요가 늘어 변동형 비중이 증가했기 때문인 것으로 분석된다.
이같은 상황에서 가파른 금리 인상으로 차주들의 금융부담이 급증하고 금융 불안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자 이번에는 순수 고정형 상품 비중 확대에 초점을 맞췄다. 그 동안 순수 고정형은 정책금융상품이 주를 이뤘는데 시중은행에게도 고정형 상품 판매를 유도하겠다는 구상이다.
이를 위해 과거와는 달리 페널티를 부과하는 방식을 택했다. 우선 고정형 지표에 순수 고정금리와 5년 주기형 등으로 세분화한 핵심 지표를 신설한다. 특히 목표비중과 함께 최소수준 지표도 새로 만들어 최소수준을 달성하지 못하면 페널티(이행계획 징구 등 은행지도 실시)를 부과하기로 했다.
변동형 상품을 과도하게 취급할 경우 주신보 출연료를 추가로 부과한다. 또 변동형 대출실적을 예금보험료 차등 평가 보완지표로 반영한다. 변동형 상품 비중이 높으면 보험요율이 올라가는 것이다. 변동금리는 금리위험 관리 능력이 취약한 개인차주로 변동 위험이 온전히 전가돼 금리 상승기에 부실위험 증가 등 건전성 측면에서 문제를 초래하기 때문이라는 게 금융위 설명이다.
인센티브(혜택)로는 목표치 달성시 출연 요율 혜택을 달성 정도에 따라 기존 0.06%포인트에서 0.1%포인트까지 확대하기로 했다.
금융위 관계자는 "고정형을 늘리기 위해 과거부터 노력했지만 해외 사례와 비교하면 여전히 변동형 비중이 높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며 "현재 은행권 대출도 완전하지 못한 의미의 고정금리인 혼합형 등이라 고정형 관련 여러 제도를 재검토하고 다각도로 고민한 결과"라고 말했다.
선택은 차주 몫…실효성 있을까
금융당국이 페널티 부과를 통해 순수 고정형 확대를 제도화하는 방안을 내놓자 은행권은 당혹스러운 분위기다. 은행권과 협의를 거쳐 2024년부터 단계적으로 시행한다는 계획이지만 현실이 됐을 때 목표치를 달성하기 쉽지 않은 까닭이다.
은행들은 금리 구조를 선택하는 것은 전적으로 소비자 몫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그동안 일부 은행들은 당국이 제시한 목표치 달성을 위해 혼합형 금리를 하향 조정해 변동형과 차이를 좁히는 방식으로 운영했지만 결국은 역시 소비자 선택에 달렸다는 것이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대출 상품 판매시 과거 금리 데이터 등을 활용해 변동형과 혼합형의 장단점을 충분히 설명할 뿐, 혼합형 비중 목표 달성을 위해 특정 금리 상품을 권하지는 않는다"라고 말했다.
이어 "최근에는 다시 혼합형 비중이 높아지고 있는데 기준금리 상승으로 과거와 달리 변동형 보다 혼합형 금리가 낮기 때문"이라며 "은행이 더 팔려고 해서가 아니라 금리 상황을 보고 소비자들이 판단한 결과"라고 강조했다.
실제 한국은행에 따르면 올 4월 기준 가계대출 가운데 고정금리 비중은 56.3%로 변동금리보다 높았다.
또 다른 은행 관계자는 "은행에게 목표치를 제시하는 것은 구시대적 발상"이라며 "은행들이 인위적으로 소비자들을 고정금리로 유도할수는 없다"고 비판했다.
전문가들 사이에선 순수 고정형 등 특정 금리 형태를 확대하기보다 다양성을 유지하는 게 중요하다는 의견이 나온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는 "국내에는 혼합과 변동, 고정형 등 다양한 금리 형태 상품이 있는데 금리 변동에 따른 차주의 실질적 부담이 형태마다 다르다"라며 "우리나라의 경우 순수 고정형 비중이 낮긴 하지만 특정 방향으로 유도하기보다 다양한 형태를 갖추는 게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이어 "순수 고정형의 경우 금리 변화를 반영하지 못하기도 한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