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BK기업은행 벤처캐피탈(VC) 자회사인 IBK벤처투자가 공식 출범했습니다. 김성태 IBK기업은행장이 1년 전 벤처투자 전문 자회사 설립을 강조한 지 1년여 만인데요. 그래서인지 서울 강남에 위치한 '인터컨티넨탈 서울 코엑스'에서 화려한 출범식을 가졌습니다.
자회사 출범 행사치고는 이례적으로 성대하게 열린 듯한 분위기입니다. 일정 등의 사유로 막판에 참석하지 못했지만 애초 김주현 금융위원장이 참석하기로 하는 등 당국의 큰 관심을 받을 정도였는데요.
기업은행은 IBK벤처투자를 통해 모험자본을 공급, 데스밸리를 지나가는 기업들을 지원하는 등 금융공백을 해소한다는 구상인데요. 정부의 관심사안인 데다 경쟁사들과의 기업금융 경쟁이 심화하면서 새로운 돌파구로 벤처투자를 활용하기 위한 전략으로 보입니다. 여러모로 주목도를 높이기 위한 행사인 셈이죠.
정책 뒷배로 탄생한 벤처투자
김성태 기업은행장은 지난해 4월10일 취임 100일 기자간담회에서 벤처투자 자회사 설립 계획을 밝혔습니다. 미국 실리콘밸리은행(SVB) 파산 등 국내 벤처투자시장 위축이 우려되는 상황이었지만 벤처기업이 성장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했는데요.
당시 김성태 행장은 "기술력 있는 창업기업이 성장을 계속할 수 있도록 벤처 생태계 활성화를 이끄는 정책적 역할이 필요하다"며 "금융 접근성이 부족한 초기 기업이 성장할 수 있도록 투자하는 벤처 자회사 설립을 검토하겠다"라고 말했습니다.
자신의 임기 동안 모험자본 2조5000억원을 공급하고 기술기업 1000개를 발굴하겠다는 구체적인 숫자도 공개했는데요. 이는 전임인 윤종원 행장 재임 기간 공급한 1조6821억원보다 1조원 가량 많은 규모입니다. ▷관련기사: [인사이드 스토리]김성태 기업은행장 '벤처금융' 강조한 이유(23년 4월18일)
열흘 후 금융위원회는 '혁신 벤처‧스타트업 자금지원 및 경쟁력 강화 방안'를 발표했습니다. 총 10조5000억원을 기업 성장 단계별 정책 수요에 맞게 지원하는 내용이 골자입니다.
특히 초기 성장단계(Seed~시리즈A 투자유치) 기업에 6조1000억원을 지원해 가장 많은 자금을 투입하기로 했는데요. 이 계획 중 기업은행이 자회사(IBK벤처투자)를 설립해 스타트업 대상 컨설팅과 네트워킹 등 보육지원과 함께 1000억원 규모 펀드를 조성해 투자도 지원한다는 내용을 담았습니다.
실제 IBK벤처투자는 기업은행이 1000억원을 출자해 설립됐습니다. 김성태 행장이 운을 띄운 후 금융당국이 벤처기업에 대한 자금 지원 역할을 맡긴 결과물로 IBK벤처투자가 탄생하게 된 셈이죠.
그래서인지 금융당국의 관심도 남다른데요. 당초 이 행사에는 김주현 금융위원장이 참석할 예정이었지만 일정 등 사유로 불참하게 되자 이형주 금융위 상임위원 등이 참석했습니다.
치열해진 기업금융, 벤처 투자로 활로?
기업은행이 벤처투자 전문 자회사를 설립한 것은 기업금융 시장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새로운 활로를 뚫기 위한 전략이라는 해석도 있는데요.
코로나 팬데믹 기간 동안 시중은행들이 가계대출 중심으로 대출 자산을 크게 늘리는 동안 기업은행은 중소기업 대출에 집중했습니다. 중소기업 금융지원을 위한 정책금융기관인 만큼 이들에 대한 자금 지원에 주력했는데요. 기업은행이 시중은행과 마찬가지로 실적 성장을 이어간데는 중기 대출 확대에 따른 이자이익 증대 효과를 누렸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최근 가계대출 시장이 위축되면서 시중은행들이 기업대출에 열을 올리고 있는 상황입니다.
지난해 초부터 하나은행이 공격적으로 기업금융에 나서면서 대출 자산을 크게 늘렸는데요. 이를 바탕으로 시중은행 가운데 순이익 1위를 차지했습니다. 과거 대기업 대출을 중심으로 기업금융에 강점을 가졌던 우리은행 역시 '기업금융 명가 재건'을 내세우며 이 시장에 주력하겠다고 공언했죠.
은행권에선 기업금융 시장은 대표적인 '치킨게임' 시장으로 보고 있습니다. 우리 경제 규모가 급성장하거나 기업들이 빠르게 늘어나지 않는 이상 한정된 시장 안에서 은행들이 경쟁할 수밖에 없다는 의미인데요.
기업은행 입장에서도 현재 중소기업 대출 시장 점유율 1위를 차지하고는 있지만 이 시장에서 새로운 성장 동력을 찾기는 쉽지 않은 게 현실입니다.
이 같은 상황에서 대출이 아닌 투자로 눈을 돌렸다는 게 기업은행 설명입니다. 기업은행 관계자는 "(기업은행 설립 당시와 비교해) 대출받는데 어려움을 겪는 기업들이 크게 줄어든 만큼 대출보다 투자를 통한 금융지원에 나서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금융위는 IBK벤처투자를 통해 벤처기업이 벤처에서 벗어난 성장 기업이 될 수 있도록 육성한다는 전략인데요. IBK벤처투자에서 시작해 기업은행, IBK투자증권 등 전 주기적 금융지원이 가능한 구조를 만들겠다는 포부입니다.
이를 통해 벤처투자로 끝나는게 아니라 은행 캐피탈 등의 대출 성장으로 새 먹거리를 확보할 수 있게 되는 겁니다. 경쟁사들과의 치열한 기업금융 싸움에서도 유리한 고지를 점하는 것이죠. 벤처투자 마중물 역할을 통해 수년 후 기업도 은행도 정부도 화려한 축포를 터트릴 수 있을지 주목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