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업승계에 관한 한, 만반의 준비를 했다고 해서 대(代)물림이 막힘없이 술술 풀리라는 법은 없다. 180도 딴판이다. 국내 전기밥솥의 양대 산맥을 이뤄온 ‘쿠쿠’(CUCKOO)와 ‘쿠첸’(CUCHEN) 얘기다.
주방·생활가전 중견그룹 쿠쿠가 20여년에 걸친 밥솥 쿠쿠의 흔들림 없는 독주체제로 인해 ‘장자 승계’는 물론 2세 분가(分家) 퍼즐까지 완벽하게 꿰맞췄다면 만년 2위 쿠첸은 부방의 후계구도를 뒤엎은 도화선이 됐다.
장남의 퇴진, 차남의 부상
부방은 1934년 설립된 ‘부산방직공업’에 뿌리를 둔 중견그룹이다. 지금은 주방·생활가전, 유통, 선박·수(水)처리 환경 등 3개 분야를 주력으로 한다. 계열사는 국내 17개, 해외 4개 등 총 21개사다. 총자산 1조3000억원(2021년 계열 합산)에 매출은 1조원 규모다. 모직물 사업의 성공을 기반으로 쉼 없이 사세를 키운 데서 비롯됐다.
1976년 가전시장에 뛰어들었다. 2000년에는 OEM(주문자상표부착방식)에서 벗어나 밥솥 자체 브랜드를 출시했다. 부방하면 쿠첸을 떠올릴 정도로 캐시카우이자 간판 계열사로 각인돼 온 지금의 쿠첸이다. 이마트 안양점 운영에 나선 것도 이 무렵인 1997년이다. 부방유통이 사업 주체다.
2010년에는 세계 1위 선박평형수 처리설비업체 테크로스를 인수했다. 2019년에는 LG로부터 수처리 2개 계열사 LG히타치워터솔루션(현 테크로스워터앤에너지), 하이엔텍(현 테크로스환경서비스)을 2500억원을 주고 사왔다.
주역은 고(故) 이원갑 창업주의 장남인 이동건(83) 회장이다. 이 회장이 부산방직공업 대표에 선임되며 경영 전면에 등장, 가업을 물려받은 게 1981년 8월이다. 43살 때다. 1989년 창업주 별세 뒤에는 회장에 올라 오롯이 부방 경영을 주도해왔다.
이 회장이 어느덧 팔순을 훌쩍 넘긴 나이, 부방은 3세 체제가 뿌리내릴 채비를 하고 있다. 한데, 당초 이 회장이 2000년대 초반부터 공을 들여왔던 형제 분할 승계구도가 불과 2년 전에 깨졌다. 장남의 퇴진, 차남의 부상(浮上)으로 요약된다.
형제 분할 승계 깬 도화선 ‘쿠첸’
부방은 2019년까지만 해도 오너 일가가 2015년 8월 지주회사로 출범한 ㈜부방 중심의 주방·생활가전 및 유통 계열과 테크로스를 위시한 선박·수처리 환경 계열을 분할 소유한 이원화 구조였다.
정점에는 이 회장의 2남2녀 중 장남 이대희(50) 전 ㈜부방 부회장과 차남 이중희(48) 현 ㈜부방 사장이 위치했다. 각각 ㈜부방 지분 30.04%, 테크로스 37.59%를 소유한 1대주주였다. 경영도 나눠서 했다.
지금은 사실상 죄다 차남 몫이 됐다. 원인은 전기밥솥을 주력으로 하는 쿠첸의 경영 악화에 있다. 쿠쿠에 이어 2위 자리를 지키고 있지만 2017년부터는 부쩍 흔들렸다. 수치가 증명한다. 2016년 2730억원을 찍었던 매출은 작년 1630억원으로 매년 예외 없이 뒷걸음질치고 있다. 100억원에 육박했던 영업이익은 2017년 이후 5년간 흑자를 낸 해가 단 한 번뿐이다.
지주 체제로 전환할 당시 리홈쿠첸(현 ㈜부방)에서 쿠첸이 떨어져 나온 이래 대표를 맡아 경영을 주도했던 이가 이 전 부회장이다. 하지만 쿠첸이 침체일로를 가고 있던 와중 2020년 1월 물러났다. ㈜부방 부회장으로 옮겼지만 이사회 명단에는 없었다. 이 명함마저도 같은 해 9월에 버리고 부방 경영에서 완전히 손을 뗐다.
거의 절연이나 다름없었다. 이 전 부회장은 지주 지분 30.04% 마저도 단 한 주도 남김없이 정리했다. 2008년 12월 부친이 후계 승계를 위해 39.94%를 두 아들과 계열사에 전량 매각할 당시 26.2%를 인수, 1대주주로 올라선 지 12년만이다.
㈜부방 지분을 매각한 대상이 동생이 최대주주로 있는 테크로스다. 현재 동생이 최상위지주회사 테크로스홀딩스(작년 7월 테크로스 물적분할)→중간지주회사 ㈜부방 및 선박·수처리 환경 계열사로 연결되는 계열 지배구조의 최상단에 자리 잡고 있는 이유다.
이중희 사장은 3세 경영자로서의 위상도 압도적이다. 테크로스홀딩스, ㈜부방을 비롯해 8개 계열사의 이사진에 포진하고 있을 정도다. 현재로서는 자타공인 단독 후계자다. 이래저래 드라마틱한 부방 후계구도 붕괴, 그 후를 따라가 봤다. (▶ [거버넌스워치] 부방 ②편으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