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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계家 사람들]代에 代를 잇는 무한확장

  • 2013.06.03(월) 11:30

프롤로그-아메바식 분열의 빛과 그림자

우리나라 대기업들의 유래 없는 성공신화는 대단하다. 늦은 산업화로 인한 짧은 연혁에도 불구하고 압축 성장을 이끌어냈다. 몇차례 거센 풍랑을 몰고왔던 경제 위기를 단기간에 극복하는 견인차 역할도 했다. 오너 경영의 신속한 의사결정과 과감한 추진력이 큰 몫을 차지했다. 세계시장에서 약진하는 대기업들은 대한민국의 자랑거리다.


대기업들은 대부분 해방이후에 창업해 사사(社史)가 반세기를 넘어섰다. 이들 대기업들은 1960년대 수출드라이브 정책, 1970~80년대 중화학공업 육성 정책과 맞물려 재벌로 거듭났다. 이른바 ‘문어발식 다각화’를 통해 몸집을 불렸다. 그 중에는 사업 연관성이 없는데도 경쟁 그룹을 의식해 계열사를 늘리는 경우도 많을 만큼 확장 일변도 였다.

 

◇사연많은 질곡의 삶


우리나라 대기업들은 가족 승계에 집착한다. 경영 승계는 형제간의 재산분배와 직결될 수밖에 없다. 문어발처럼 늘린 계열사들은 창업 1세대들의 재산분할의 풍족한 자원이 됐다. 창업주는 경영승계 시기가 다가오자 재산분할의 첫걸음을 뗏다. 불어난 계열사들을 이리저리 쪼개 경영에 참여했던 형제들을 분가시켰다. 자신의 후계구도를 확실히 하기위해 다른 아들, 딸에게도 딴살림을 내줬다. 심지어 외척들에게도 몫을 떼줬다. 창업주 시대를 지나 2대, 3대, 4대로까지 이어지면서 수많은 방계기업이 탄생하게 된 것은 필연이었다.


대기업들이 가문의 세(勢)를 불리기까지 고비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1997년 외환위기는 상당수 재벌의 몰락을 가져왔다. 대우, 새한, 쌍용, 진로, 해태, 동아, 한일, 극동, 갑을, 삼미 등 영원할 것만 같던 기업들이 쓰러졌다. 급격한 경영 환경 변화에 적응하지 못한 채 사라졌고, 부모에게 물려받은 부를 잃고 말았다. 반면 꿋꿋하게 살아남은 대기업들은 오히려 끊임없이 커지고 강해졌다. 몇몇 재벌은 이미 수차례 세포분열을 통해 방대한 방계그룹을 탄생시켰다.


올해 공정거래위원회가 지정한 대기업집단만 보더라도 현대가(家)는 현대자동차, 현대중공업, 현대, 현대백화점, KCC, 한라, 현대산업개발 등 무려 7개그룹이 이름을 올렸다. 삼성가도 삼성 본가(本家)를 비롯해 CJ, 신세계, 한솔 등 4개그룹이나 된다. LG, GS, LS 등 3개그룹도 LG라는 한 뿌리에서 갈라져 나왔다. 


게다가 외환위기 이후 대기업의 분화 방정식은 A4용지 한 장에 다 그려넣지 못할 정도로 가지를 뻗은 가계도 만큼이나 복잡해졌다. 우선 경영 승계를 위한 계열 확장 방법이 진화하고 있다. 현대자동차그룹은 2001년 정몽구 회장과 ‘황태자’ 정의선 부회장이 세운 현대글로비스에 일감을 몰아줬다. 그 후 광고, 시스템통합(SI), 물류, 건설, 심지어 빵집 같은 계열사를 만들고, 그곳에 일감을 몰아주는 대기업들의 관행은 일상화됐다.

 



방계기업들에게도 어김없이 일감이 돌아갔다. 부품공급, 서비스업 등을 통해 모기업의 후광을 등에 업고 발판을 다지고 사업을 확장했다. 서한, 후성, 희성, 에이치플러스, 피플웍스, 이생 등 이름도 낯선 기업들이 바로 그런 기업들이다. 이들에게 본가는 벗어나고 싶은 그늘이 아니라 비바람을 확실하게 막아주는 우산이다. 본가는 양적으로 팽창하고 그곳에서 생겨나는 풍족한 일감은 수많은 방계기업들이 또다시 후대에 왕성한 세포분열을 할 수 있는 든든한 자양분이 되고 있다.

 

◇사나워진 세상 민심


아메바처럼 분화를 거듭하고 있는 대기업들의 양적 성장은 폐해를 수반하기 마련이다. 중소기업의 사업 기회를 앗아가는 것은 물론, 국가 경제 전체로 보더라도 경제력 집중 현상을 심화한다. 이러다간 자칫 기업 생태계의 교란 요인을 넘어 생태계 전체를 지배할 수도 있다. 요즘 세상 민심이 사나워질 대로 사나워진 것은 이 때문이다. 이로인해 일감몰아주기와 편법상속에는 촘촘한 그물망이 드리우고 있다. 순환출자에도 언제 칼을 들이댈지 모르는 살얼음판이다. 정치권도 더 이상 기댈 언덕이 아니다. 몇차례 선거를 반복하면 ‘대기업 때리기’에서 ‘대기업 빼앗기’로 넘어갈 기세다. 대기업들이 한데 뭉쳐 맞서고 있지만 그 약발은 예전같지 않다. 


‘열 손가락 깨물어 안아픈 손가락 없다’지만 자식들이 모두 부모 마음 같으리란 법은 없다. 형제간 우애가 모두 깊으리란 보장도 없다. 세월은 흘러가는 법이고, 모든 관계는 부식되기 마련이다. 분할 과정에서 자손들 대부분은 조상의 은덕을 입었지만 섭섭함을 토로하는 이들도 적지 않았다. 이 경우 자식간에 경영권 분쟁이 벌어질 개연성이 존재했고 실제로 그렇게 된 경우도 상당했다. 두산과 금호의 경영권을 둘러싼 형제간 분쟁, 현대의 왕자의 난 등이 대표적인 사례다. 재벌가의 숱한 상속·경영권 분쟁은 형제들을 일찌감치 ‘남남’으로 갈라서게 했다.


방계가 중에는 본가와 떨어져 자기 힘으로 일가를 일군 자손들도 적지 않다. 밑바닥에서 죽기살기로 자수성가한 이들을 들여다 보면 사연도 많고 곡절도 많다. 상당한 학력과 재능을 갖고 있으면서도 적자(適者)가 아니라는 이유로 비주류로 살아야 하는 이들에게 독립은 자연스런 행보였을지 모른다. 집안과 사회에서 인정 받으려는 성공에 대한 야심 또한 충만했을 터다. 소박해 보였던 기업을 부침의 세월을 뛰어넘어 거대한 모습으로 변모시킨 데는 ‘적자보다 못할 게 없다’는 방계 후손들의 자신감이 녹아있다.


그만큼 우리나라 방계기업이 걸어온 길과 일거수일투족은 그 자체로 흥미를 자아낸다. 대기업에서 분가해 방계가로 살아가는 그들을 따라가봤다. 일찌감치 재계 지도를 바꿔놓은 방계기업 보다는 세인들에게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낯선 방계 후손들에 초점을 맞췄다. 방계기업 안에서 꿈틀대는 또다른 분화 움직임도 들여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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