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8년 출발→2008년 중단→2013년 ?

  • 2013.06.10(월) 07:10

금강산 관광은 고(故)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이 지난 1989년 1월 기업인 최초로 북한을 방문해 체결한 '금강산 관광개발 의정서'에서부터 시작됐다.

 

기본 합의후 적지않은 시간이 흐른 1998년10월. 정주영 명예회장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면담하고 '금강산 관광사업에 관한 합의서'를 체결하고, 본격적인 금강산 관광을 시작한다.

 

바로 다음달인 11월 금강산을 향한 크루즈선 금강호가 출항했고, 이듬해인 1999년2월 현대그룹은 현대아산을 설립, 관광사업을 전담시킨다. 2000년9월에는 김정일 위원장이 직접 금강산을 방문하며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키기도 했다.

 

이전까지 바다 길로만 가능했던 금강산 관광은 2002년9월 도로 연결 착공식을 시작으로 육로 관광으로 확대된다.

 

북한은 그해 11월 금강산 관광지구법을 발표하고 50년간 토지이용증을 발급하기도 했다. 2003년2월 마침내 육로를 통한 관광이 시작되고, 다양한 형태의 관광상품이 개발되며 관광객들이 급증하기 시작했다.

 


[1998년 금강산 관광이 개시되며 금강호가 첫 출항을 하고 있는 모습]

 

2005년6월에는 금강산 관광객이 100만명을 돌파하고, 이를 기념해 금강산 현지에서 열린음악회를 개최하는 등 관광사업이 무르익게 된다.

 

이처럼 금강산 관광이 호조를 보이자 이에 고무된 현정은 회장은 같은해 7월 김정일 위원장과의 면담 자리에서 개성과 백두산 관광 합의까지 이끌어 냈다. 이날의 합의는 2007년11월 공식적인 합의서 체결까지 이어진다.

 

2007년12월 개성관광이 시작되며 무르익던 분위기는 2008년7월 돌연 냉각된다. 관광객 박양자씨가 북한군 초병의 총에 맞아 사망한 사건이 터진 것이다. 금강산 관광객이 200만명에 육박하던 시점이었다.

 

이명박 정부 출범 첫해에 발생한 이 사건으로 남북관계는 장기간 경색국면에 들어가게 된다. 2009년8월 현정은 회장이 김정일 위원장을 만나 관광 재개 등 5개항에 합의했지만 우리 정부의 인정을 받지 못했고, 이후 수차례 이어진 당국자 회담에서도 접점을 이끌어 내지 못했다.

 

북한은 금강산국제관광특구법을 발표한 2011년5월, 현대그룹에게 부여했던 독점사업권을 취소했다. 그해 8월에는 금강산에 상주하던 인력들이 전원 철수했다. 지난해 12월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사망하고, 현정은 회장 등 조문단이 방문했지만 정부 차원의 논의는 이뤄지지 않았다.

 

북한은 대립각을 세웠던 이명박 정부이후 박근혜 정부가 출범하는 만큼 금강산 관광을 둘러싼 관계를 정립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이번 회담에서 금강산 관광을 둘러싼 합의가 이뤄질 경우 올해안에 금강산 관광은 다시 재개될 전망이다.

 

<금강산 관광 주요일지>

▲1989.1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 북한 방문
▲1998.10 정주영 명예회장, 김정일 국방위원장 면담
▲1998.11 금강산 관광 개시
▲1999.2 현대아산 설립
▲2000.9 김정일 국방위원장 금강산 방문
▲2002.11 금강산 관광지구법 발표
▲2003.2 금강산 육로관광 개시
▲2005.6 금강산 관광객 100만명 돌파
▲2007.11 현정은 회장 개성·백두산 관광 합의서 체결
▲2008.7 금강산 관광 중단
▲2010.4 북, 금강산 자산 몰수 및 동결
▲2011.5 북, 금강산국제관광특구법 발표. 현대 독점사업권 취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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