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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우중 회고록]④대우의 유동성 악화

  • 2014.08.22(금) 17:37

김우중 “정부가 대우의 돈줄을 조였다”

다음은 신장섭 싱가포르대학교 경제학과 교수가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과 대화를 통해 구성한 저서 '김우중과의 대화, 아직도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중 대우의 유동성 악화 관련 부분 발췌.

 

신장섭
경제팀과 관계를 개선하기 위한 노력은 없었습니까?

 

김우중
개선할 여지가 없었지요. 그쪽은 (내가 DJ의 판단에 영향을 미치고 자신들의 의견을 불신하게 만든다는) 확증을 잡았으니까… 우리를 어떻게 제거하느냐는 것이 목표가 됐겠지요. 우리 약점을 잡아서 어떻게 공격하느냐를 생각했을 거예요.

 

신장섭
구체적으로 무엇을 얘기하는 겁니까?

 

김우중
우리 돈줄을 죈 거지요. 그때는 (국내)은행에서도 돈을 빌릴 수 없고 해외에서도 안 되니 유동성이 제일 문제였어요.

 

(중략)

 

신장섭
그러면 대우는 그동안 유동성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고 있었습니까?

 

김우중
당시 유동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남은 것은 단자(CP, commercial paper, 기업어음)와 회사채뿐이었어요. 그런데 (정부에서) 처음에는 그룹별 한도액을 만들었어요.(1998년 7월 22일 ‘CP 발행 한도 제한조치’) 이 조치가 나오고 보니 우리만 한도를 오버(Over, 초과)해 있어요.

 

그걸 6개월 안에 줄이라는 거예요. 그럴 방법이 어디 있어요? 그래서 할 수 없어서 회사채에 들어왔어요. 그런데 회사채도 한도를 딱 정하는 거예요.(1998년 10월 27일 ‘회사채 발행 한도 제한조치’) 또 우리는 이미 오버했지요. 그래서 유동성 문제에서 꼼짝을 못하게 된 겁니다.

 

(중략)

 

신장섭
정부에서는 대우의 유동성 문제가 해외에서 먼저 불거지고, 대우가 이를 해결하기 위해 국내에서 자금을 조달했다고 얘기합니다. 국내 자금시장 상황이 좋지 않은데 대우가 국내에서 돈을 빌려 해외로 갖고 가니 금융위기 극복에 부정적이어서 제한조치를 만들었다고 합니다.

 

김우중
우리가 해외에서 이미 갖고 있던 대출은 별로 문제 되지 않았습니다. IMF사태가 난 후에도 빌려주는 데가 있었어요. 우리는 해외에 갖고 있는 것이 다 신용대출이었어요. 큰 은행들은 우리에게 빌려준 돈을 그렇게 마구 상환 요구를 할 수 없었지요. 그렇지만 일부 연장 안 되는 원금을 마련해야 하니까 한국에서 조달하게 됐어요. 그건 그렇게 크지 않았어요.

 

그런데 자동차에 투자가 계속 들어가야 하는데, 이 돈줄이 막혔어요. 신규 대출이 된다는 전제에서 투자를 진행한 건데 그게 안 되니까…. 폴란드 기존 공장, 루마니아와 우즈베키스탄, 인도 공장은 이미 잘 돌아가고 있었어요. (중략)


제일 문제가 된 것은 수출 관련 금융이 막혔던 거예요. 은행들이 D/A(documents against acceptance, 수출환어음)를 받아도 돈을 지급해주지 않고, LC(Letter of credit, 신용장)를 개설해주지도 않으니까…. 우리는 할 수 없이 단자에서 융통하고, 그게 막히니까 그 다음에 회사채로 간 거지요. 나중에 우리가 워크아웃 들어간 다음에야 정부가 (수출금융) 막힌 것을 풀어줬어요. 이것만 일찍 풀렸으면 단자, 회사채를 그렇게 많이 끌어 쓸 필요가 없었지요. 고금리 때문에 자금 수요가 더 커진 것도 많았어요.

 

(중략)


그 당시 우리가 수출금융을 풀어달라고 요청하던 것에 대해 정부나 언론에서는 대우가 무슨 큰 특혜를 요구하는 듯이 얘기했는데, 그게 절대 아닙니다. 통상적인 금융을 정상화해달라는 것이었을 뿐이지요. 기업은 정부나 금융기관에서 만들어놓은 시스템에 따라서 활동을 합니다. 그 시스템이 작동하지 않는 것이 왜 기업 잘못인가요? 시스템 고장난 걸 고쳐달라는 것이 왜 특혜를 요구하는 겁니까?

 

신장섭
1998년 상반기에는 금융권이 BIS비율 맞추기 등 자기들 구조조정 한다면서 기업으로부터 자금을 회수했습니다. 그것까지 합치면 대우 측에 추가 자금수요가 훨씬 더 컸을 것으로 생각되는데요.

 

김우중
은행대출이 늘어난 것처럼 보이는 건 쌍용자동차 때문입니다. 우리가 정부 요청을 받아 쌍용차 인수를 1997년 말에 결정했고 1998년 3월에 공식 인수했어요. 그때 쌍용차가 갖고 있던 차입금 1조9000억원이 우리 차입금으로 계상됐어요. 그것 빼고 나면 1,2금융권 합쳐서 3조1000억원을 회수당한 거지요.

 

우리 입장에서는 수출금융이 막혀서 자금 조달해야 했던 것(15조9000억원)까지 합치면 19조원가량의 추가 자금이 갑자기 필요하게 됐습니다. 우리가 그 기간에 단자(12조3000억원)와 회사채(7조9000억원)로 조달한 전체 20조2000억원 대부분이 우리 잘잘못과 관계없이 불가항력적으로 늘어난 거예요. 우리 매출이 증가하면서 운영 및 시설자금 조달로 차입금이 늘어난 건 1조2000억원 정도입니다.

 

신장섭
금액을 따져보면 수출금융이 막혔던 데에서 부채가 갑자기 늘어난 가장 큰 원인을 찾을 수 있을 것 같네요. 그런데 정부는 대우가 수출을 많이 해서 자금 수요를 높인 것 자체에 대해서도 굉장히 비판적입니다. 당장 팔리지 않는데 수출 실적으로 잡기 위해 밀어내기식 수출로 했다는 지적입니다.

 

김우중
그러면 현지법인에 과잉재고가 있어야 할 것 아니에요? 워크아웃 하고 삼일회계법인 실사 나왔을 때 그런 것 잡아냈어야 하는 것 아닙니까? 지금까지도 그런 재고에 대해서 아무 얘기 없잖아요? 실적 올리기 위해 내보냈다는 건 말이 안돼요.

 

대우 자동차가 전부 신차종이에요. 우리가 3차종(라노스, 누비라, 레간자)을 동시에 개발하고 본격적으로 수출하기 시작한 것이 1998년입니다. 그동안 없던 걸 수출하니까 수출이 갑자기 늘어나는 게 당연한 일이지요. 우리 마켓셰어가 30%를 넘었으니까요. 기아는 우리한테 이미 졌고, 현대차가 굉장히 긴장할 때였지요. GM은 우리 마켓셰어가 10%를 넘지 못할 걸로 봤어요. 그래서 우리와 더 적극적으로 협상했는지도 몰라요.

 

(중략)

 

신장섭
결국 회장님의 ‘수출확대를 통한 IMF체제 극복론’과 경제관료들의 ‘구조조정을 통한 금융위기 극복론’이 충돌한 것이라고 볼 수 있지 않겠습니까?

 

김우중
수출해서 돈을 벌 수 있는데 왜 자산을 팝니까? 수출해서 계속 벌면 되는 거지…. 그리고 왜 축소경영을 해야 합니까? 한국 금융위기는 금융이 잘못해서 온 것이지, 기업이 잘못해서 온 것이 아니에요. 이것이 금융위기 초기부터 나와 경제관료들 간에 차이였어요. (중략)

 

리고 당시 우리는 GM과 합작해서 50~70억 불을 국내에 들여오는 협상을 진행하고 있었어요. 우리는 그게 곧 성사될 거라고 봤고 그것만 되면 우리가 제일 모범적으로 구조조정을 하는 셈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어요. 정부에서 하라는 것은 그 이상으로 하고, 떳떳하게 정부정책에 문제 있는 것들을 지적한다고 생각하고 있었지요.

 

정부는 사실 우리에게 자산 팔아서 구조조정 하라고 말할 자격이 없었어요. 우리가 대우조선 정상화 하는데 넣은 돈만 7200억원이예요. 팔 수 있는 자산들은 그때 다 팔았어요. 정부가 요구하는 구조조정, 그때 다 한 거지요. 우리는 원래 부동산도 별로 없었고…. 정부에서는 나중에 우리 보고 대우조선을 6개월 내에 팔아서 외자유치 실적을 쌓으라고까지 했어요. 대우조선이 처음 만들어질 때부터 정상화할 때까지 우리가 했던 걸 아는 사람들이라면 어떻게 그런 얘기를 할 수 있겠습니까?

 

(이하 생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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