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의 예고된 지배구조 개편 작업이 이뤄졌다. 그룹 모태이자 주력 건설사인 삼성물산을 현재 지배구조 정점인 제일모직(옛 에버랜드)에 붙이는 방법을 택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등 오너 일가 지분이 많은 에버랜드는 제일모직과 합병 후 기업공개(IPO)를 통해 기업 가치를 키웠다. 반면 삼성물산은 최근 주력인 건설사업에서의 보수적인 수주 영업과 인원 감축 등으로 덩치를 줄이는 과정을 거쳤다. 합병을 위한 준비가 이뤄져 왔다고 해석할 수 있는 부분이다.
합병 후 존속법인은 제일모직이지만 합병법인의 이름은 삼성물산을 사용하기로 결정됐다. 삼성상회에서 삼성물산으로 이어진 그룹의 정통성을 잇는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삼성물산이라는 이름은 유지되지만 사업 구조는 복잡다단해진다. 종전에는 건설부문과 상사부문(C&T, Construction and Trading)을 양 축으로 삼았지만 제일모직 사업군이 들어오면 6개 영역으로 확대된다. 삼성이 밝힌 대로 '의 식 주 휴(衣 食 住 休) 및 바이오를 축으로 삼은 것에 더해, 상사부문을 유지해 각 사업을 지원 사격하는 형태가 될 것으로 관측된다.
특히 합병하는 기존의 두 회사에는 각각 2명씩 전문경영인 대표이사가 포진해 있다. 기존 삼성물산의 최치훈(건설·전사), 김신(상사) 사장과 제일모직의 윤주화(패션)과 김봉영(에버랜드) 사장 등 총 4명이다. 이들을 중심으로 향후 업무 분장이 어떻게 갈릴지도 관심이다.
삼성은 지배구조 개편 외에 사업적인 시너지 효과도 기대하고 있다. 삼성은 이번 합병을 발표하며 핵심사업인 건설, 상사, 패션, 리조트, 식음료 등의 글로벌 경쟁력과 시너지가 강화되면서 합병회사 매출이 2014년 34조원에서 2020년 60조원으로 늘어날 것으로 전망했다.
▲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사업부문별 작년 실적(*건설 = 삼성물산+제일모직, 바이오 = 삼성바이오로직스, 자료: 각 사) |
◇ 의(衣) = 지금처럼 제일모직 패션사업을 중심으로 이뤄질 전망이다. 제일모직에서 패션사업을 이끈 윤주화 사장과 이건희 회장 차녀인 이서현 제일모직 경영기획담당 사장이 호흡을 맞춰왔던 영역이다.
제일모직 패션사업은 작년 1조8510억원의 매출, 560억원의 영업이익을 올렸다. 캐주얼 브랜드 '빈폴'을 골프 등 서브 브랜드로 확대 중이며 신사복 브랜드 '갤럭시' 등도 견조한 실적을 내고 있다. 최근에는 시장 성장성이 큰 아웃도어와 SPA(Specialty retailer of Private label Apparel), 중국 시장에도 진출했다.
◇ 식(食) = 식음사업은 제일모직의 100% 자회사인 삼성웰스토리를 통해 이어가게 될 전망이다. 웰스토리의 김동환 대표이사가 세부적으로 사업을 이끄는 한편 종전에 에버랜드 사업 영역이었던 만큼 제일모직의 김봉영 사장이 전체적으로 총괄하는 식이 될 것으로 보인다.
작년 급식 및 식자재 유통 부문 매출은 1조5696억원 규모다. 제일모직 전체 매출의 30.6%를 차지한다. 특히 영업이익은 1179억원으로 마진율이 높다. 그룹 계열사 급식사업을 독점하는 만큼 알짜 사업이라는 평가다.
◇ 주(住) = 이번 합병으로 가장 큰 변화를 갖는 분야는 건설이다. 삼성물산의 주력인 건설부문에 제일모직의 건설사업부문이 더해지기 때문이다. 삼성물산은 토목과 건축, 주택(래미안) 등 넓은 분야에서 업계 수위를 차지하고 있다. 반면 제일모직은 에버랜드 시절에 쌓은 조경(경관) 분야 정도에만 강점이 있다.
삼성물산 건설부문은 작년 매출이 14조8735억원으로 제일모직(1조2881억원)의 10배를 넘는다. 삼성 관계자는 "두 계열사의 중복사업인 건설부문을 통합해 운영 효율을 제고할 것"이라고 기대효과를 설명했다. 지금 상태라면 최치훈 삼성물산 사장이 합병 법인의 건설사업을 총괄할 전망이다.
◇ 레저(休) = 에버랜드 중심의 레저 사업은 합병회사의 건설사업 역량을 통해 한층 업그레이드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특히 두 회사는 작년 에버랜드 인근의 레이크사이드 골프장을 공동 인수하는 등 레저 분야에서 호흡을 맞춰왔다. 이 골프장을 에버랜드와 연결하는 안도 내부적으로 검토된 것으로 알려졌다.
레저 사업부문의 작년 매출은 4296억원으로 제일모직 전체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8%에 그치지만 자산은 1조5841억원으로 전체의 16.6%를 차지한다. 레저분야는 현재 김봉영 사장이 맡고 있다. 다만 레저사업이 신라호텔 사업과도 연결되는 부분이 있는 만큼 이 회장 장녀 이부진 사장도 레저사업에 관여할 가능성이 있다.
◇ 바이오(生) = 삼성은 이번 합병을 설명하면서 "신수종 사업인 바이오 사업의 최대주주로 적극 참여할 수 있게 돼 안정성과 성장성을 동시에 추구할 수 있게 됐다"고 설명했다.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이 삼성바이오로직스 지분 46.3%, 4.9%를 각각 보유하고 있어서다.
바이오로직스는 작년 매출 1054억원에 영업손실 1052억원을 기록하는 등 아직은 투자금만 까먹고 있는 단계다. 지난 2월에도 1400억원 규모의 유상증자를 실시해 모회사에 자금 부담을 안겼다. 하지만 삼성이 신사업으로 육성중인 분야인 만큼 주요사업으로 키워갈 가능성은 여전하다.
◇ 상사(商) = 김신 사장이 이끄는 삼성물산 상사부문은 현재 세계 46개국에 96개의 네트워크를 확보하고 있지만 수익은 미미한 상황이다. 작년 매출은 13조5720억원에 달하지만 영업이익은 831억원에 그친다.
이런 배경 탓에 상사부문은 이번 합병 후 새 회사의 다른 사업부문을 지원하는 역할을 부여받았다. "글로벌 운영 경험과 인프라를 활용해 패션·식음 사업의 해외진출을 가속화 하고, 새로운 사업기회를 발굴하도록 하겠다"는 것이 삼성의 복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