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딜, 빅뱅!]⑥'패전처리' 방식 안된다

  • 2015.11.11(수) 11:16

정부 주도 구조조정 우려..지원역할 그쳐야
원샷법, 국회 통과 불투명..한계론도 대두

한국 경제는 이미 저성장 국면에 접어들었다. 내수 부진과 함께 수출도 감소하고 있다. 한국 경제를 지탱하는 두 축이 흔들리면서 위기감이 고조되고 있다. 내년 경제에 대해서도 비관적인 전망이 많다. 대기업들은 한계사업을 재편하고, 인수합병에 나서는 등 생존을 위해 몸부림치고 있다. 주요 기업들이 처해있는 상황과 변화의 움직임, 정부의 대응 등을 짚어본다. [편집자]

 

 

최근 대기업을 둘러싼 변화는 크게 두가지 방향으로 나타나고 있다. 삼성을 중심으로 한 자율적인 사업재편, 그리고 해운·철강·중공업 등 위기에 처해있는 업종들을 대상으로 한 정부 주도의 구조조정이다. 특히 어려움에 처해 있는 해운업의 경우 현대상선과 한진해운 합병 가능성이 제기되는 등 혼란스러운 상황이 계속되고 있다.

 

정부는 정부대로, 기업은 기업대로 볼멘소리들이 나온다. 한계기업의 선제적 구조조정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는 정부를 압박하고 있고, 그 과정에서 제기되는 갖가지 시나리오들은 기업들을 당혹스럽게 만드는 모습이다. 기업들의 사업재편이 원활히 이뤄질 수 있도록 지원하겠다던 특별법은 국회에서 시간만 보내고 있다.

 

전문가들은 현재 한국 제조업이 대전환기를 맞고 있는 만큼 과거와 같은 획일적이고, 단순한 구조조정으로는 위기를 돌파하기 어렵다는 지적을 하고 있다. 특히 정부 주도의 무리한 구조조정은 오히려 역효과를 불러올 수 있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 난무하는 시나리오..정부가 개입하면 안돼

 

인수&합병, 특수목적회사(SPC) 설립. 최근 해운업 구조조정과 관련해 제기되는 일련의 시나리오는 당사자인 기업들을 당혹스럽게 하고 있다. 장기 불황으로 인해 현대상선과 한진해운 등 대표적인 해운업체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설익은 구조조정 방안들이 제기되면서 혼란스러운 상황이 계속되고 있다.

 

재계 관계자는 "최근 나오고 있는 구조조정 방안은 해당 산업의 회생보다는 패전처리에 초점이 맞춰져 있는 것 같다"며 "해운이나 조선, 철강 등이 어려운 상황이지만 이들을 단순히 부실기업으로 평가절하해서는 곤란하다"고 지적했다. 이어 "정부는 당장 눈앞에 보이는 성과보다 큰 틀에서 이들 산업의 경쟁력을 높일 수 있는 방향으로 이끌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 지난 2008년 금융위기이후 해운업계는 장기불황에 시달리고 있다. 최근 제기되고 있는 구조조정 시나리오 역시 향후 해운업 전망이 여전히 불투명한 것에서 출발하고 있다.

 

전문가들도 정부가 나서서 구조조정을 주도하는 시대는 지났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자발적으로 인수합병이 이뤄지거나 사업재편을 할 수 있는 인프라를 만드는데 주력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김동환 한국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구조조정은 기업들의 동의를 전제로 하며, 자발적 필요에 의해 이뤄져야 한다”며 “하지만 아직까지 기업들이 자율적으로 M&A나 사업재편 등을 할 수 있는 시장 여건이 갖춰지지 않았다는 것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이어 “정부의 역할은 기업들이 구조조정을 할 수 있는 인프라를 조성하는 것이 우선”이라며 “다만 정부가 개입해야하는 경우, 기업이 구조조정을 할 수 있도록 인센티브 등을 주는 것으로 역할이 한정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익명을 요구한 민간연구소 관계자 역시 "지금은 과거처럼 정부가 이른바 빅딜을 밀어붙여서 해결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라며 "정부는 지원하는 역할에 머물러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지금 정부는 마치 '손을 놓고 있었다'는 사후 평가를 두려워하는 듯 하다"며 "정부가 주도하는 무리한 구조조정은 결국 역효과를 부를 수 있다"고 덧붙였다.

 

정부도 이같은 비판들을 의식하는 모습이다. 김용범 금융위원회 사무처장은 지난 10일 "기업구조조정과 관련해 범정부협의체에서는 주무부서의 산업정책적 판단 등을 통해 구조조정의 큰 방향만을 제시한다"며 "정부는 개별기업의 구조조정에 관여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 잠자고 있는 원샷법..한계론도 대두

 

어려움에 처해있는 기업들의 구조조정과 함께 기존 사업의 재편 필요성도 제기되고 있다. 최근 삼성의 화학사업 매각 등이 대표적이다. 김윤경 한국경제연구원 부연구위원은 “기업 입장에선 생산효율성이 떨어진 사업의 규모를 키우는 것보다 사업성이 있는 신성장동력을 육성하기 위한 사업재편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정부도 이른바 원샷법으로 불리는 사업재편지원특별법 제정을 통해 이를 지원하겠다는 계획이다. 이 법은 기업들의 사업재편 과정에서 요구되는 각종 절차와 규제 들을 간소화하는 것을 골자로 하고 있다. 금융과 세제지원도 이뤄진다. 일본이 산업경쟁력 강화법 제정을 통해 기업들의 사업재편을 지원하고 있는 것에서 착안됐다.

 

정부는 빠른 입법을 위해 의원 입법으로 방향을 바꿨고, 지난 7월 기업 활력제고를 위한 특별법이 발의된 상태다. 하지만 일부 대기업들에게 특혜를 주는 것이라는 야당의 반발로 인해 여전히 국회에 계류된 상태다. 연내 통과가 불투명하다는 전망도 나온다.

 

 
원샷법이 통과된다고 해도 그 효과가 불확실하다는 견해들도 나오고 있다. 원샷법의 적용대상이 한정적인 만큼 모든 기업에 적용되는 만병통치약이 아니라는 의미다.

 

박양진 대륙아주 변호사는 “원샷법과 세제지원 등에 대한 예산부수법안은 이미 시행중인 다른 법률과 충돌하거나 모순된 부분이 많다”며 “또 이 법안은 수혜자인 기업에게만 초점을 맞추고 있을 뿐, 구조조정으로 인해 발생될 고용문제 등에 대해선 고려가 없어 보완해야 할 부분이 많다”고 평가했다.

 

김동환 선임연구위원도 "원샷법은 사업재편을 하는 국내기업에 한하고, 기업구조조정촉진법이나 도산법 등 회생절차를 밟고 있는 기업에 대해서는 적용되지 않아 한계기업이나 좀비기업 구조조정 수단으로 사용되기는 어렵다"고 설명했다.

 

한국기업지배구조원도 최근 보고서를 통해 "입법을 통해 부실기업이 아닌 정상적 한계기업의 선제적 구조조정을 지원한 나라는 일본이 유일하다"며 "공급과잉 해소를 위한 사업재편은 사업전략과 연계된 만큼 기업 스스로 시장창출을 통해 이를 해결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밝혔다.

 

이어 "법률로 사업재편을 지원하는 것은 분명한 한계가 있다"며 "정부 개입을 최소화하고, 시장중심으로 각 기업 특성에 따라 자발적인 사업재편이 이뤄지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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