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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딜, 빅뱅!]⑦대우그룹 해체에서 배우자

  • 2015.11.12(목) 08:27

대우그룹 해체, 정부 주도 폐해 사례
구조조정, 기업 회생에 초점 맞춰야

한국 경제는 이미 저성장 국면에 접어들었다. 내수 부진과 함께 수출도 감소하고 있다. 한국 경제를 지탱하는 두 축이 흔들리면서 위기감이 고조되고 있다. 내년 경제에 대해서도 비관적인 전망이 많다. 대기업들은 한계사업을 재편하고, 인수합병에 나서는 등 생존을 위해 몸부림치고 있다. 주요 기업들이 처해있는 상황과 변화의 움직임, 정부의 대응 등을 짚어본다. [편집자]
 
 
지난 99년 대우그룹 해체는 한국 경제사에 가장 큰 규모의 파산 기록으로 남아있다. 정부 주도 구조조정의 대표적인 예로도 꼽힌다. 대우그룹 해체 원인에 대해서는 의견들이 엇갈린다. 무차별 차입 경영, 방만 경영으로 무너졌다는 게 일반적인 견해다. 반면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은 금융자본을 중시한 신흥 관료에 의한 기획 해체라고 주장한다.
 
최근 정부 주도의 구조조정 움직임에 대해 재계는 걱정스런 시선을 보낸다. 제2의 대우그룹 사태가 일어나지 않을까 하는 우려다. 정부가 산업과 기업의 특성을 무시한 채 '프로크루테스의 침대' (침대 크기에 맞춰 큰 사람은 자르고 작은 사람은 늘리는)식 구조조정에 나선다면 향후 경기 회복기에 막대한 손실을 입게 된다는 의견이 많다.

◇ 관제 빅딜의 그늘

대우그룹은 지난 90년대 재계 서열 2위의 대기업이었다. 김우중 회장의 '세계 경영'을 모토로 
당시 내수에만 치중했던 다른 기업과 달리 일찍 해외로 눈을 돌렸다. 그 덕에 대우그룹은 당시 한국 기업 중 보기 드물게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었다.

하지만 97년 외환위기로 한국 경제가 변화의 소용돌이에 휘말리면서 한순간 몰락했다.
당시 정부는 문어발 기업 정리를 통한 산업 경쟁력 강화라는 명목하에 기업 구조조정에 나섰다. 이헌재 초대 금융감독위원장의 지휘 아래 '부채비율 200%'라는 침대를 만들어두고 그 기준에 맞춰 기업들을 재단하기 시작했다. 5대 그룹을 비롯한 대다수 기업들이 정부의 강제 구조조정 대상에 포함됐다.

새로운 정권이 탄생하던 시기였던 데다 외환위기를 맞은 만큼 새 정부의 경제팀은 과거 정권과는 다른 모습을 보여줘야한다는 부담감이 있었다. 정부는 부실을 털어내는 데 주력했다.
기업들에게 부실한 사업을 정리하도록 강제했다. '빅딜'이 대표적인 예다. LG그룹의 반도체는 현대그룹으로 넘어갔고, 삼성은 자동차사업을 포기했다.
 
▲ 이헌재 금융감독위원회 위원장을 중심으로 당시 정부는 고강도 기업 구조조정에 들어갔다. 부채비율 200%를 기준으로 이를 충족하지 못하는 기업들에 대해서는 정부가 직접 나서 구조조정을 단행했다.
 
재계는 강제 구조조정에 동의할 수 없었다. 정부가 주도하는 구조조정의 내용이 산업의 특성을 무시한 처사라는 비판의 목소리가 높았다. 하지만 기업들은 돈 줄을 쥐고 있는 정부의 구조조정 방침을 거역할 수 없었다. 
 
대우그룹은 정부 구조조정의 핵심 타깃이었다. 당시 정부의 경제팀은 수출 비중이 커 부채비율이 높은데다 문어발식 확장으로 계열사가 많은 대우그룹을 부실 덩어리로 여겼다.
 
정부의 대우그룹 정리작업은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결국 대우그룹은 지난 99년 공중분해됐다. 대우그룹 해체는 정부 주도 구조조정의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 아울러 정부 주도 구조조정의 폐해를 가장 극명히 보여주는 사례로도 거론된다. 일각에서는 대우그룹이 해체되지 않았다면 오히려 한국 경제에 이득이 됐을 것이란 시각도 있다.
 
◇ 부채비율 200%의 그늘

정부가 대우그룹을 몰아 붙인 가장 큰 근거는 부채비율이었다. 당시 정부는 기업들에게 부채비율 200%를 가이드라인으로 제시했다.
정부가 내세운 부채비율 200%는 미국과 일본 기업들의 평균 부채비율을 참고해 세운 잣대다. 당시 미국 기업들의 부채비율은 100% 안팎, 일본 기업들은 150~200% 였다.

기업들은 정부의 주문대로 부채비율 맞추기에 열을 올렸다. 하지만 부채비율 200%는 당시 상황으로서는 맞추기 어려운 기준이었다.
 
외환위기로 경제가 고꾸라진 상황에서 은행을 통한 자금 조달에는 한계가 있었다. 결국 자산 매각을 통해 자금을 확보하는 수밖에 없었다. 정부의 노림수도 여기에 있었다. 당시 해운업체들은 부채비율 200%를 맞추기 위해 110여척의 선박을 헐값에 매각했다. 이 때문에 훗날 해운업 호황기가 왔을때 비싼 값에 선박을 매입하거나 빌려야 했다.
 
대우그룹은 수출로 성장한 기업이다. 해외 사업을 많이 하다보니 외화 부채가 많았다. 환율이 2배 가까이 오르자 부채비율도 그만큼 치솟았다.
 
정부의 압박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자금이 필요했지만 은행에서는 자금을 구할 수 없었다. 은행에 대해서도 BIS비율(국제결제은행 자기자본비율)을 도입하는 등 금융 구조조정이 함께 진행돼 대출 여력이 없었던 것이다.
 
대우그룹은 돈을 구하기 위해 CP(기업 어음)와 회사채 시장을 노크했지만 이마저도 여의치 않았다. 정부가 그룹별로 CP 한도액을 설정한 데다 회사채에 대해서도 발행 한도 제한 조치를 내렸기 때문이다.
 
회사채 발행 한도 제한 조치가 나왔을 당시 노무라 증권은 '대우그룹에 비상벨이 울리고 있다'는 보고서는 내놨다. 그만큼 정부의 조치는 대우그룹을 겨냥한 것이라는 의혹이 많았다.

◇ 업황 회복기 생각해야 

업계에서는 정부 주도 구조조정의 폐해를 우려하고 있다. 현재는 업황이 좋지 않아 고전하고 있지만 
업황 회복기에 들어섰을 때 정부가 구조조정의 칼을 댄 산업들이 고전할 수도 있어서다. 특히 무리한 구조조정으로 알짜 자산이 해외 기업에게 넘어갈 경우 구조조정의 과실을 이들이 따먹을 수도 있다. GM의 대우자동차 인수가 대표적인 예다.

당시 대우차는 중형과 소형 라인업을 앞세워 국내 시장에서 인기 몰이를 하고 있었다. 한때 내수시장 1위였던 현대차를 턱 밑까지 쫓아갈 정도로 탄탄대로를 달렸다. 협력관계에 있던 GM도 대우차의 질주를 눈여겨봤다. 당시 GM은 글로벌 시장에서 도요타에 밀리고 있는 상황이었다. 중형과 소형에 이렇다 할 모델을 내놓지 못해서였다. 따라서 GM은 대우차에 대한 투자를 통해 중소형 라인업 강화를 노렸다.

GM은 대우차 지분 절반가량을 매입하는 협상을 진행했다. 대우차로서도 자금이 유입될 수 있어 긍정적이었다.
 
하지만 협상 막바지에 정부의 구조조정 압력이 거세지자 GM이 협상 결렬을 선언했다. 이후 GM은 부도난 대우차 인수를 타진했고 마침내 지난 2002년 대우차를 헐값에 인수했다. 그리고 대우차의 모델들을 바탕으로 중국 시장에서 큰 성공을 거뒀다. 현재 GM은 중국 시장에서 폭스바겐과 함께 1, 2위를 다투고 있다.
 
▲ 업계는 최근 삼성과 한화·롯데, SK와 CJ간의 빅딜과 같이 기업 자율에 의한 구조조정이 바람직한 방향이라고 보고 있다.

재계에서는 최근 삼성과 한화·롯데의 빅딜, SK와 CJ의 빅딜에 주목하고 있다. 이들 빅딜은 정부 주도가 아닌 민간 자율로 이뤄졌기 때문이다. 기업들이 각자의 필요에 의해 자율적인 사업 재편에 나서 시너지를 내는 좋은 사례다.
 
전문가들은 정부는 기업들이 자발적으로 구조조정에 나설 수 있도록 유도하고 구조조정 이후 산업 경쟁력 강화 방안을 마련하는 데 힘을 써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윤석헌 숭실대 금융학부 교수는 "구조조정 시장에 정부가 개입하면 앞으로도 시장 발전은 어렵다"고 말했다. 최준선 성균관대 법학과 교수도 "시장 스스로 기업을 재편할 수 있도록 해야한다"고 강조했다.

한 대기업 고위 관계자는 "현재의 경제상황은 과거 정부가 칼자루를 쥐고 흔들던 때와는 많이 달라졌다"며 "정부는 큰 틀을 짜고 그 안에서 각 기업들이 스스로의 문제를 풀어갈 수 있도록 정책적 도움을 주는 것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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